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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빈첸시오 신부의 여행묵상 6 - 내 안의 성지 (바라나시/인도)
작성자양상윤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30 조회수1,398 추천수0 반대(0) 신고

 

내안의 성지

 

 

"바라나시"는 인도 사람들의 거룩한 강 갠지스가 흐르는 곳으로

 

여행 가기 전 이것 저것 들은 것은 많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힌두교의 성지”라는 이유만으로 내게 신비감을 줬다.

 

내가 힌두교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여행 가기 전 가이드북에서 읽은게 전부로

 

누구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환상을 가지게 되듯이

 

그러한 나의 무지가 신비감을 더 했는지도 모른다.

 

정확히 말하면 힌두교에 대해 전혀 몰라던 건 아니고 

 

“소”를 신성이 여기는 종교라는 소리를 중,고등학교 시절에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이 달나라를 오 가는 세상에 살아있는 소를 신성이 여기는 종교라니! 얼마나 가소롭고 한심하지!

 

그 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땅의 역사와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뿌리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바라나시처럼 “성지”이면서도 평가가 극과 극인 곳도 흔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에 한번이라도 그곳에 가는 것이 소원인 힌두교인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여행자 중에도 그 곳에서 인생을 깨달았다는 사람들이 있고

 

너무 맘에 들어 장기 투숙하는 사람들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너무나 더러운데다 볼 것도 없어서

 

도망치듯 빠져나 왔다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내가 가져 간 가이드북에는

 

가끔씩 여행자들이 실종 되기도 한다는 험악한 소리가 나와 있다,

 

다른 곳도 아닌 성지에서 말이다.

 

 

 

여행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다른 사람들이 다 좋다고 하는데도 내게는 별로인 곳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이 다 별로라고 하는데도 내게는 너무나 좋은 곳이 있다.

 

개인의 취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고

 

현지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는 내게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 올는지?

 

 

 

숙소에다 짐을 풀자 마자 갠지스강으로 향했다.

 

갠지스강에는 가트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하면 잘 만들어진 강둑혹은 선착장이라고 표현 할 수 있는데

 

계단 같은 형태여서 앉아서 쉬기도 하고 명상도 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가트로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입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과연 저들을 다 먹여 살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다,

 

아무리 없이 산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게 있을 텐데…

 

하루의 세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얼마 정도가 필요할까?

 

그럼 최저 생계비는 얼마나 될까?

 

책임 질 것도 아니면서 이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 갠지스강의 가트 풍경

 

 

 

가트에 들어서니 좌정을 하고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우두커니 시간을 때우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열심히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람들도 있다.

 

가트를 어슬렁 거리며 걷고 있자니 안마를 받으라며 끈질기게 쫓아 오는 사람도 있고

 

보트를 타지 않겠냐고 물어오는 사람들도 한두 명이 아니다.

 

강물 속에는 거룩하게 두 손을 합장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물에 조심스럽게 몸을 담그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경건한 모습과는 상관없이

 

바로 옆에서는 꼬마들과 청년들이

 

수영복도 아닌 속옷만 걸친 체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자기들끼리 치고 받으며 까불고 있는 것이

 

내 어린 시절 동네 개천에서 물장난 하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이들은 아예 몸에 비누칠까지 해가며 열심히 씻고 있다,

 

누가 순례자인지 동네사람인지 구분이 확실히 된다.

 

 

 

밑 쪽으로 내려가니 빨래하는 남자들이 눈에 띈다,

 

빨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인 듯

 

강둑에는 한집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옷가지들이 햇빛을 받으며 널려있다.

 

더 밑으로 내려가 가트가 거의 끝나가는 곳에 이르니

 

소들이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가끔씩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려고 하는 소가 있으면

 

지키고 있던 사람이 작대기로 얼르기도하고 달래기도 해서 제자리를 찾아준다.

 

그리 크지 않은 강에 정말로 여러 모습의 사람들이 있다.

 

바라나시가 힌두교인들에게는 성스러운 장소일지 몰라도

 

나 같이 힌두교에 무지한 여행자에게는 특이한 볼거리에 불과하다.

 

성지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건 그 장소가 지닌 지리적 의미 그 이상의 것이 있기 때문 일 텐데

 

아마도 그건 각자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모양으로 있고 그런게 바로 믿음이고 신앙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머리로 공부 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순례자들은 오랜 시간이 걸려 찾아온 거룩한 곳이지만

 

가트의 상인들에게는 거룩한 곳 이전에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있는 삶의 수단이 있는 곳이다.

 

멀리서 갠지스강을 찾아와 그 물에 몸을 담그는 사람은 “성스러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지만 

 

한낮 더위를 피해 물놀이를 하러 온 사람들에게는 그냥 집 근처에 있는 강물일 게다.

 

순례자들은 가트에 앉아 거룩한 강물을 보며 인생과 철학에 대해 얘기를 주고 받겠지만

 

마실 나온 동네 아낙들은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그저 남편얘기나 자식 얘기들처럼

 

하루 하루 살아가는 소소한 얘기들을 주고 받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주검을 화장해서 갠지스에 뿌리는 사람은

 

성스러운 강물의 힘을 믿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빨래는 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스러운 강물의 힘보다는

 

그저 물이 좀더 깨끗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것이다,

 

설사 강물의 거룩한 힘을 믿는다 할지라도

 

그 힘으로 빨래가 더 깨끗해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갠지스에 기대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구에겐 성지인 곳이 누구에겐 그저 삶의 터전인 것이다.

 

“그저”라는 말이 하찮다는 뜻이 아니라 아주 일상이 되어버려서 특별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어쩌면 그것이 특별한 것보다 더 소중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공기나 물처럼 말이다.

 

각자의 "삶의 터전"은 "성지" 그 이상의 의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바라나시는 내게 성지이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어 살아가가고 있는 삶의 터전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내가 바라나시를 열 번 스므 번 다시 찾는다 해도

 

나는 성지 바라나시를 느끼지 못 할지도 모른다.

 

나는 인도인도, 힌두교인도 아니고

 

그래서 바라니시의 지리적 의미 그 이상을 깨닫지 못 할 테니까.

 

 

 

이 여행이 끝나면 나는 다시 나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야 하고

 

멀리서 찾아온 순례객들도 결국은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엔, 또 그들의 마음속엔

 

각자가 깨달은 갠지스강이 늘 흐를 것이다.

 

 

 

- 10, 20, 30일에 업데이트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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