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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1주간 월요일]백인대장의 믿음 (마태 8,5-11)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02 조회수1,44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2일 월요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백인대장의 믿음 (마태 8,5-11)

 

이사야 예언자는 주님의 싹, 곧 다가올 메시아를 통하여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모든 이가 정화되고 주님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한다. (제1독서 이사 4,2-6)
2 그날에 주님께서 돋게 하신 싹이 영화롭고 영광스럽게 되리라. 그리고 그 땅의 열매는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에게 자랑과 영예가 되리라.
3 또한 시온에 남은 이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이들  곧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이 모두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리라.
4 주님께서는 심판의 영과 불의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오물을 씻어 내시고  예루살렘의 피를 닦아 내신 뒤에
5 시온산의 모든 지역과 그 회중 위에  낮에는 구름을, 밤에는 타오르는 불길로 연기와 광채를 만들어 주시리라. 정녕 주님의 영광이 모든 것을 덮어 주는 지붕과 6 초막이 되어, 낮의 더위를 피하는 그늘이 되어 주고  폭우와 비를 피하는 피신처와 은신처가 되어 주리라.

 

화답송 시편 122(121),1-2.3-4ㄱㄴ.(4ㄷㄹ-5.6-7.)8-9(◎ 1 참조)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 예루살렘의 평화를 빌어라. “너를 사랑하는 이들은 평안하리라. 너의 성안에 평화가 있으리라. 너의 궁 안에 평안이 있으리라.”◎)
○ 나의 형제와 벗들을 위하여 비노라. “너에게 평화가 있기를!” 주 우리 하느님의 집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나는 기원하리라. ◎

 

백인대장은 자신의 종이 예수님의 한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에 감탄하신다. (마태복음 8,5-11)
5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 들어가셨을 때에  한 백인대장이 다가와 도움을 청하였다.
6 그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7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하시자,

8 백인대장이 대답하였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9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10 이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는 감탄하시며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11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와,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제1독서 (이사4,2-6)

 

"또한 시온에 남은 이들, 예루살렘에 남은 이들, 곧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이 모두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리라.  주님께서는 심판의 영과 불의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오물을 씻어 내시고, 예루살렘의 피를 닦아 내신 뒤에, 시온산의 모든 지역과 그 회중 위에 낮에는 구름을, 밤에는 타오르는 불길로 연기와 광채를 만들어 주시리라. 정녕 주님의 영광이 모든 것을 덮어주는 지붕과 초막이 되어~"(3-6)

 

이사야서 4장 2절이스라엘 땅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사야서 4장 3절과 4절그 땅에 남은 자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거룩함이 회복될 것을 예언한다.

 

그 가운데 이사야서 4장 3절에 나오는 '시온에 남은 이들'이나 '예루살렘에 남은 이들'은  앞의 4장 2절의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들)과 동일한 의미를 전달하는 표현이다.

 

그런데 주목할 사실은 이사야서 4장 2절과 3절에 사용된 이 두표현이 모두 수동형 분사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주님에 의해 남겨진 자들이며, 머무르도록 허용된 자들임을 수동형의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남아 있거나 머물러 있는 자들이 아니라 주 하느님의 은총으로 재앙 중에서도 남겨지고, 황량함 가운데서도 머무르도록 허락된 자들이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메시야의 구원사업으로 말미암아 주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교회 안에 남겨지게 될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다.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

 

앞의 '시온에 남은 이들', '예루살렘에 남은 이들'이 여기서는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로 달리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예루살렘에 살도록 기록된 이들'로 번역된 '학카투브 라하이임'(hakkathub lahaiim)'살아있는 자로 기록된' 이라는 의미로 다르게 번역할 수 있다.

 

구약은 생명의 책, 즉 '셰페르 하아임'(seper haiim)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시편69,29), 다니엘 예언자'그때에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다니12,1)고 예언한다.

 

여기 본문과 더불어 성경의 이런 구절들을 보면,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 혹은 그 책에서 그 이름이 제거되는 자는 생명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약의 사도 바오로필리피서 4장 3절에서 '생명의 책'에 대해 언급하며, 사도 요한 역시 이것을 언급함으로써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할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묵시20,15; 21,27).

 

그리고 여기서 '기록된'에 해당하는 '학카투브'(hakkathub)수동 분사형으로서, 그 책에 들어갈 이름을 당사자가 직접 기입해 넣는 것이 아니라 그 권한을 가진 자가 기록해 넣는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구원이 외부로부터 오는 것, 즉 메시야의 구원 사업으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거룩하다고 일컬어지리라'

 

여기서는 시온에 남은 이들이 거룩하다고 여김을 받는 은혜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 본문 역시 수동태로서 거룩하다고 일컫는 자는 남은 이들 당사자가 아닌, 주님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여기서 '거룩하다'에 해당하는 '카도쉬'(qadosh)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카도쉬'구약에서 약 175회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동일 어근의 단어가 페니키아어, 아람어, 이디오피아어에서도 사용된다.

 

이 모든 언어에서 이 단어는 신적 존재에게 바치기 위해 따로 구별해 놓은 행위나 상태를 나타낸다. 여기서도 하느님을 위하여 거룩하게 구별되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거룩하다 일컬어짐을 받은 무리는 주 하느님에 의해 선택되어 선택받지 못한 속된 무리들로부터 구별된 무리라는 의미이다.

구약에는 히브리 민족들이 이러한 지위를 누렸지만(탈출19,5-6),  메시야 왕국이 도래하게 되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 지위를 누리게 된다(1베드2,9).

 

둘째는, 그 삶에 있어서 신실하고 거룩한 순결의 모습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거룩한 것을 가리킨다. 하느님께서 거룩하게 세우신 백성의 삶의 특징은 세속의 더러움으로부터 구별된 거룩함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거룩한 삶, 거룩한 순결의 삶을 살기로 원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과는 거리가 먼 불의하고 세속적인 삶, 부패하고 타락한 삶을 살았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상실한 하느님 백성의 거룩한 삶의 면모를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구현하시고자 하셨다.

이러한 거룩한 삶은 거룩한 순결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 구현되며, 궁극적으로는 교회의 완전한 형태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 완전한 모습이 구현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 오물을 씻어 내시고'

 

여기 이사야서 4장 4절은 이사야서 4장 3절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시점을 나타내 준다.

본절 서두에 나오는 불변사 '임'(Im)은 시점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바로 주님께서 시온의 딸들의 오물을 씻어 내시는 때(when)이다.

 

여기서 '오물'에 해당하는 '초아트'(tsoath; the filth)사람이나 동물의 배설물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인간이 상상하기에 가장 더러운 것, 불결하고 역겨운 것을 대표하는 표현이다.

 

이사야서 4장 1-3절에서 이사야 예언자가 지적했던 남부 유다와 예루살렘의 온갖 죄악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더러운 것인지를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주님께서 그것을 씻어 내실 것이라고 언급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라하츠'(rahats; shall have washed away)는 물로 깨끗이 씻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완료 시제는 과거에 이미 그렇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비록 미래의 일이 될 것이지만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강조하는 기능을 가진 예언적 완료형이다.

즉 본문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의 공로로 죄사함이 이루어질 대속(代贖)을 예언하는 것으로 확장시켜 이해할 수 있다(즈카13,1; 1코린6,11; 에페5,26; 티토3,5참조).

 

'심판의 영과 불의 영으로'

 

여기서 제시되는 두 가지 영은 시온의 딸들이 오물을 씻어 내는데 필요한 수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여기서 '심판의 영'악행을 단죄하고 그에 합당한 심판을 집행한다는 영을 뜻하며, '불의 영'은 모든 더러운 것들을 다 불태워 버리는 영을 뜻한다.

'불살라 없앰'이라는 의미의 '소멸'을 말한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 이후에 오실 메시야를 가리켜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선포하였다(마태3,11). 여기서 '불'은 태움으로써 깨끗하게 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예루살렘의 피를 닦아 내신'

 

'예루살렘의 피'에 해당하는 '떼메 예루살라임'(deme yerushallaim)에서 '떼메'(deme)복수형으로서 예루살렘 사람들이 흘린 많은 양의 피, 그들이 저지른 폭력과 잔인함의 흔적이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 피들은 그들이 무죄한 자들을 죽인 죄악과 자녀를 이방의 신에게 드리기 위해 불태워 죽인 죄악, 살인 죄 등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2역대28,3; 33,6).

 

주님께서는 심판의 영과 불의 영으로 그 피들을 닦아 내실 것인데, '닦아 내신'에 해당하는 '야디아흐'(yadiah)의 원형 '뚜아흐'(duah)구약에서 4번밖에 사용되지 않으며 그 쓰임새가 특이한 단어이다.

번제를 드리기 전에 큰 물 웅덩이에서 번제물을, 혹은 제사드리는 당사자가 씻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2역대4,6; 에제40,38). 

제사가 하느님께 상달되기 위해서는 제물과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씻겨져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씻겨진다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예루살렘의 피가 씻겨진 후에 다시 그 예루살렘을 주님께서 받아들이신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여기서 깨끗하게 되어 주님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예루살렘은 메시야의 대속(代贖)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깨끗해진 교회를 가리킨다.

 

'시온 산의 모든 지역과 그 회중 위에'

 

여기서 '시온 산'은 일차적으로 하느님 임재의 상징적인 처소인 성전이 있는 산을 가리킨다. 이 산은 이사야서 2장 1-4절에도 나오는데, 거기서는 종말에 주님의 산이 모든 산보다 높아져 만국이 그리로 몰려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산은 메시야 왕국의 교회를 상징하며, 본절도 교회와 그 안에 거주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한다.

 

'낮에는 구름을, 밤에는 타오르는 불길로 연기와 광채를 만들어 주시리라'

 

이스라엘의 광야 시대에 주님께서 그들을 낮이면 구름 기둥으로, 밤이면 불기둥으로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그들을 더위와 추위로부터 보호해 주셨던 사실을 연상하게 하는 표현으로서 이것은 주님께서 몸소 임재하셔서 당신의 교회를 보호하시겠다는 것을 암시한다.

 

'구름'은 광야의 이스라엘 위에 덮였는데, 이것은 뜨거운 태양열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리고 '연기'란 표현이 덧붙여진 것은 이것이 연기 모양이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밤에 타오르는 불길'은 사막의 밤에 한기와 야생 동물로부터 이스라엘을 보호해 주셨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와같은 주님의 임재와 보호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에 함께 하셔서 세상의 모든 환란으로부터 지켜서 보호해 주실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이다.

 

'정녕 주님의 영광이 모든 것을 덮어 주는 지붕과 초막이 되어'  (6)

 

'주님의 영광'은 구름과 연기와 불길로 함께 하시는 것과 같은 주 하느님 자신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 위에 지붕, 덮개를 두신다는 표현은 주님께서 당신 자신의 임재를 가리는 초막(천막)을 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지붕(덮개)과 초막(천막)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지켜서 보호해 준다.

 

이 예언은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당시의 백성인 남은 자들을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더 나아가 메시야의 육화(강생)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이 사탄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를 받게 될 것임을 나타낸다.

또한 이것은 메시야 재림 후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느님의 어좌에 앉으신 이, 즉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백성들을 덮는 천막에 되어 주실 것이라고 계시된다(묵시7,15).

 

 

 

 대림 제1주간 월요일 복음(마태8,5~11)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사실 저는 상관 밑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제 밑으로도 군사들이 있어서, 이 사람에게 가라 하면 가고 저 사람에게 오라 하면 옵니다.  또 제 노예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합니다."  (8ㄴ~9)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로 번역된 '우크 에이미 히카노스'(uk eimi hikanos; I am not worthy; I do not deserve)에서 '히카노스'(hikanos)'고려할 만한', '많은', '가치있는', '적합한', '알맞은'의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예수님의 '유대인인 내가 굳이 너에게 가서 고쳐 주어야 하느냐' (마태8,7참조)는 질문에 대해, '저는 주님께서 저희 집에 들어오실 만한 가치조차도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또한 당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그들과 식사를 함께하는 등이방인과의 친교를 금지한 유대인의 관습을 잘 알고 있었던 이방인 백부장의 사려깊은 배려이기도 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러한 내용을 통해 마태오 복음의 주독자층인 유대인들을 향해 그들의 믿음 없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면서, 백부장과 같은 큰 믿음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 8장 8ㄷ절'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에서 '그저'에 해당하는 '모논'(monon; only)'단순히', '오직', '다만'의 의미를 가지고서 수식하는 문장의 의미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여기서 '한 말씀'에 해당하는 '로고'(logo; a word)'말씀'이라는 뜻을  가진 '로고스'(logos)의 수단을 나타내는 여격 단수형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다만 한 말씀으로 말해 주십시오'이다.

그는 주님의 '말씀'(로고스) 자체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참 믿음의 소유자였다.

말하자면, 이방인 백부장이 바란 것은, 이방의 우상 숭배자들이 주문을 외운다거나 주술적 기원을 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고침을 입으리라'는 단 한마디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백부장도 마태오 복음 8장 9절에서 남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었는데, 이러한 권세로 인해 교만하거나 방종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권세를 가진 분을 분별할 줄 알고, 그분에게 그 권세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구하는 지혜를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종이 겪고 있는 질병이나 이 세상 만물의 원리에 대해서는 자신이 아무런 권세를 행할 수 없었기에, 세상 모든 만물에 대해 진정한 권세를 가지고 질병까지도 복종시키는 예수님 앞에서 그분의 권세를 인정하고 도움을 청해야만 했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은 질병이나 고난이 마귀로부터 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백부장은 자신이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면, 자신의 부하들이 그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모든 만물의 주권자이신 예수님께서 질병을 유발시키는 더러운 영들을 향해 명령하시면, 그 세력이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할 수 밖에 없다는 영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이방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예수님의 메시아적 권위와 위상과 그 능력을 깨달아, 그분께 대한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림 제1주간 월요일11.28매일묵상

 

참된 믿음의 소유자

-반영억신부- 

 

오래전의 일입니다. 대전 공설 운동장에서 한국성체대회가 거행되던 날, 눈부시도록 파란 하늘이었고 태양은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추기경님의 파견 강복이 있기 직전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김수환 추기경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거기 뭐 나타났어요?” 그 말씀에 자극을 받아 참가자 모두가 환호하며 하늘을 바라보았고 저도 태양을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성체모양으로 빛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 현상에 부정적인 저였지만 저도 모르게 성호경을 그으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하였습니다. 그때 추기경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보고라도 믿어야죠!”

예수님의 능력은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으셨지만 당신을 의심하는 고향사람들 앞에서는 별로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마태13,58). 주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셨지만 그 말씀의 능력은 믿음을 바탕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힘을 내느냐 못 내느냐는 그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행하면 능력의 혜택을 입게 됩니다. 믿음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라 하시면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시고 명하는 것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고 행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모든 것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람을 유다인이 아닌 한 이방인 백인대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백인 대장은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자격에 대한 겸손한 고백은 영혼을 치유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유다인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자격이나 합당함에 대한 판단으로 영혼을 파괴하고 하느님을 슬프게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지적하셨으니 예수님께서 그들의 미움을 사게 된 것은 당연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소위 열심하다고 하는 사람, 활동을 많이 하고 본당의 여러 직책을 맡은 사람들, 성직자나 수도자도 믿음을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은 많을지 모르나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는 믿음에는 소홀할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참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하겠습니다.

사실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브11,1. 6). 믿음으로 하느님의 능력을 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로 마칩니다. “오 하느님, 믿음으로 당신을 부르나이다. 인간이 되신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당신을 선포하신 아드님의 일생을 통하여 제게 불어넣어주신 그 믿음으로 오 하느님! 당신을 애타게 부르나이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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