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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면 얻게 되는 축복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05 조회수1,293 추천수0 반대(0) 신고

 

평상시에는 누가 진정 하느님의 진정한 자식인지 진정한 자식이 아닌지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누구나 우리는 주님의 기도만 봐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기도문입니다.

 

바로 첫구절이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주님, 주님과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구나가 말로는 입술로 주님이라고는 부르지만 그렇게 부르는 입술 가운데에는 말그대로 입으로만 주님을 부르는 거와 매일반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아버지 이렇게 부른다고 해서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을 제대로 따라가는 자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맹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천국이 보장된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경고의 메시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고 딱 짤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22절, 23절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시는 내용을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무리 외관상 하느님 일이라는 명분으로 많은 일을 했다고 하여도 그러니까 공노를 쌓았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도무지 자신은 나름 하느님 일이라고 생각하며 한다고 했는데 어찌 보면 나중에 지상에서 한 이런 거에 대해 어떤 상급까지도 내심 기대를 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전혀 공로는 둘째치고 그런 일을 한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시면서 썩 물러들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바로 불법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제가 아는 아주 짧은 성경 지식을 하나 첨가해서 말씀드리면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합법의 반의어가 아니고 원문에는 바로 법이 말씀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불법은 말씀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결국 21절 내용을 유추해서 보면 합당한 설명 같습니다. 결국 아무리 하느님이라는 이름의 합당한 명분으로 많은 일을 했다고는 하나 그 일이 하느님의 뜻이 배제되어서 하는 일이라면 아마도 이런 일이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모든 하는 일에 있어서 열심히 하기는 한다고 하지만 그 일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는 자기의 영광이 오히려 더 돋보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경우를 말씀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이런 일은 본당 내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저 역시도 이런 예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본당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순수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일을 하게 되지만 이런 일도 혼자서 하는 일이 아니고 여러 사람의 협력과 지원이 있어야만이 원할하게 진행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다른 사람들과 적절하게 서로 소통이 되지 않게 되면 일의 진행 진척에 차질이 빚어지게 되면서 서로가 힘들게 되어 불협화음이 생겨서 마음이 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만약 신앙이 성숙된 신앙의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노력을 할 텐데 그러지를 못하는 경우를 누구나가 한 번쯤 그런 경험을 체험했으리라 봅니다.

 

어쩌면 여기서 오늘 복음이 말씀하시는 중요한 메시지가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편으로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간적인 갈등에 처한 자신의 입장을 내려놓고 좀 더 거대한 시각으로 하느님의 일이라는 차원으로 생각하고 좀 더 겸손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면 하고자 하는 일도 조금은 좀 더 해결될 수 있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어려운 갈등 속에서도 인간의 자존심 따위 같은 건 벗어버리고 하느님의 마음을 생각해서 일을 하려고 한다면 그때가 진정으로 말로 할 수 없는 하늘의 공로를 쌓을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우리는 공로라는 개념을 다시 한 번 더 다른 개념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기보다는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는 게 진정 위대한 공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은 오늘 복음에서 보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또 헤아리는 정도에서 그치면 안 되고 그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주변 환경이 어떤 어려운 환경이 닥쳐도 그 난관을 극복할 수 있는 반석위에 세워진 집에 비유를 하십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많고 또 주님을 따라간다고는 하지만 최종에 가서는 얼마나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는지는 결국 반석 같은 집을 지었는지 아니면 모래 위에 집을 지었는지가 분명히 갈라져 있기 때문에 어쩌면 이 집은 우리가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살게 될 집을 상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나중에 하늘나라에 자기 집이 있을 수도 있고 집을 세운 듯하지만 기본 토대가 없어 무너져버린 집이 될 수 있습니다. 미래에 어떤 집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태도와 어떤 마음가짐으로 신앙생활을 하는지에 달려있다는 것을 오늘 복음이 알려주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생활에 대해 아주 간결하게 정의를 하고 있는 성경 구절입니다.

 

데살로니카 첫째 서간 4장 3절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5장 15절~18절

 

아무도 다른 이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서로에게 좋고 또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을 늘 추구하십시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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