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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2.1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2 조회수1,457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12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제1독서 이사 41,13-20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14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
15 보라, 내가 너를 날카로운

 타작기로, 날이 많은

새 타작기로 만들리니

너는 산들을 타작하여 잘게

바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들리라.

16 네가 그것들을 까부르면

바람이 쓸어 가고 폭풍이

그것들을 흩날려 버리리라.

그러나 너는 주님 안에서

기뻐 뛰놀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

안에서 자랑스러워하리라.
17 가련한 이들과 가난한 이들이

물을 찾지만 물이 없어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탄다. 나 주님이

그들에게 응답하고 나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18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
19 나는 광야에 향백나무와

아카시아, 도금양나무와 소나무를

 갖다 놓고 사막에 방백나무와

사철가막살나무와

젓나무를 함께 심으리라.

20 이는 주님께서 그것을

손수 이루시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그것을

창조하셨음을 모든 이가 보아 알고

살펴 깨닫게 하시려는 것이다.

복음 마태 11,11-1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12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13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14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15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만약 여러분의 자녀나 손주가

의대에 들어가서 의사가 되겠다고

 말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또 교육대학에 들어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겠다면 혹시

도시락 싸 들고 적극적으로 말리시겠습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의사나 교사는 현대에 존경받는 직업이며,

안정된 전문직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직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아십니까?
로마 시대에 교사나 의사는 노예의

직업이었습니다. 로마 시대의 귀족 출신

 아이가 부모에게 “나는 커서 의사나

 교사가 될 거야.”라고 말한다면, 화를 내면서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을까요?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람의 신분과

지위는 얼마든지 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남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으면

그 지위를 이용해서 끊임없이 억압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지위는 절대로

영원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 세상 삶을

마치고 하느님 앞에 섰을 때 어떨까요?
“제가 살아있을 때 이런 지위를 누렸습니다.

저의 재산은 이렇게 많았습니다.”라는

 말들이 의미 있을까요? 의미 있지

않습니다. 또 세상의 지위와 재산이

하늘나라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의 뜻을

어떻게 실천했고, 사랑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고 하시지요.

 바로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세속의

뜻만을 주장하면서 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펼치기보다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의 모습으로 산다고

해서 하늘 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세상의 지위와 재산이 하늘 나라에서도

그대로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제는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일보다는

하느님의 일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하며,

세상의 뜻보다는 주님의 뜻인 사랑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만이 먼 훗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서 어떤 사랑을

하면서 주님의 뜻을 실천했는지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위대한 사람은 단번에

그와 같이 높은 곳에

뛰어오른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밤에 단잠을 잘 적에

그는 일어나서 괴로움을 이기고

일에 몰두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생은 자고 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그 속에 있다.

성공의 일순간은

실패했던 몇 년을 보상해준다.

(로버트 브라우닝)

노예제도는 지금도 있지 않을까?

노예제도가 처음 시작된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에 타 부족,

타 씨족을 정복하면서 하층민으로

부린 것으로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이 노예제는 19세기 초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지요.

우리나라 역시 엄격한 신분 사회로

노예제도가 존재했었습니다.

그러나 천부인권 사상에 근거해서,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인격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권리를 가진다면서

노예제가 폐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인 지금에는

이 노예제가 완전히 없어졌을까요?

강자가 약자에게 함부로 해도

 된다고 여기는 모든 곳에 노예제는

아직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만들려는 곳이

바로 노예제가 유지되는 곳입니다.
인터넷 안에서도 익명성의 벽 뒤에

숨어서 악성 댓글로 폭행을 쓰는 것,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모습 등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마음이

있는 곳이 노예제 잔재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과연 이런 모습을 원하실까요?

약자의 편에서 늘 사랑을 펼치신

주님의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그 사랑의 실천을 통해 세상의 잘못된

노예제는 사라지고, 서로를

인정하며 함께 하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올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꿈꿉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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