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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2주간토요일]세례자 요한 (마태 17,10-13)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4 조회수1,053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14일 토요일

[대림 제2주간토요일]세례자 요한 (마태 17,10-13)

(백)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12월14일 목요일

 

집회서는, 엘리야 예언자는 불 마차를 타고 하느님께 올라갔는데, 이것이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부활의 희망이라고 전한다. (집회 48,1-4.9-11)
그 무렵 1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2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
3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4 엘리야여, 당신은 놀라운 일들로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자랑스러울 수 있겠습니까?
9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10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 당신을 본 사람들과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우리도 반드시 살아날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80(79),2ㄱㄷㄹ과 3ㄴㄷ.15-16.18-19(◎ 4)
◎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 이스라엘의 목자시여, 귀를 기울이소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 광채와 함께 나타나소서. 당신 권능을 떨치시어, 저희를 도우러 오소서. ◎
○ 만군의 하느님, 어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당신 오른손이 심으신 나뭇가지를, 당신 위해 키우신 아들을 찾아오소서. ◎
○ 당신 오른쪽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 위해 키우신 인간의 아들에게 손을 얹으소서. 저희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오리다. 저희를 살려 주소서. 당신 이름을 부르오리다. ◎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바로 엘리야라고 제자들에게 알리신다. (마태 17,10-13)
산에서 내려올 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1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2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13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대림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집회48,1-4 9-11)

 

"그 무렵 엘리야 예언자가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48,1)

'엘리야'란 이름은 '하느님은 나의 힘이시다'는 뜻이다.

'불','횃불' 표상은 여기서는 '사랑' '열정' 혹은 '심판'의  의미보다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해석한다. 

 

"엘리야는 그들에게 굶주림을 불러 들였고"(48,27)란 말씀은 48장 3절의 "주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하늘을 닫아 버리고"  와 연결이 되어 있다. 가뭄 예언과 관련된 말씀 (1열왕17,1 ; 18,1-3 ; 참조18,45)이다.

하늘 문을 닫고 여는 하늘의 신, 풍요다산의 신인 바알을 숭배하던 아합왕과 이스라엘의 변절된 신앙에 대한 질타로 가뭄이 예언되고, 그 결과로 기근(굶주림)을 체험하는 것이다.

즉 가뭄을 통해 계시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진짜 하늘(햇빛과 비) 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자신의 열정으로 그들의 수를 감소시켰다"(48,2ㄴ)는 것은 카르멜산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키손천에서 바알의 예언자 450명을 사로잡아 죽인 사건을 가리킨다(1열왕18,40).

48장 3절에 "세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열왕기 하권 1장에 아하즈야왕이 자기 옥상 방의 격자 난간에서 떨어져 다친 후 하느님을 찾지 않고 사자들을 보내어 에크론의 신 바알 즈붑에게 가서 병의 회복에 관한 문의를 하라고 명령한 것에 대한 벌(심판)의 이야기이다.

두 차례나 엘리야가 예언한대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오십인 대장과 부하 쉰 명을 삼켜버린 사건을 말한다(2열왕1,10ㄷ.12ㄷ).

이 두 번과 450명 바알 예언자들과의 카르멜산 대결에서 주님의 불길이 내려와 번제물과 장작과 돌과 먼지를 삼켜버리고 도랑에 있던 물도 핥아 버린 사건을 말한다(1열왕18,38).

"당신은 불 소용돌이 속에서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48,9)라는 말씀은 엘리야와 엘리야 영의 두 몫을 청하는 엘리사의 이별이야기에 나온다.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 두 사람을 갈라 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에 실려 올라간 사건을 말한다(2열왕2,11).

"당신은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48,10)

이 구절은 말라기 3장 1절과 23절에 있는대로, 죽지 않고 산 채로 불수레를 타고 승천한 예언자가 하느님이 세상을 심판하기 직전에 다시 와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키고 열두 부족을 재건할 거라는 말씀이다.

엘리야는 종말 심판자이신 하느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하느님의 심부름꾼, 메시아의 선구자(선주자)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세례자 요한에 이어 예수님이 활약하셨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요한 세례자(=엘리야)가 예수(=메시아)의 선구자(선주자)라는 입장을 취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말라3,1)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려치지 않으리라." (말라3,23-24)

 

 

  

대림제2주간토요일 복음(마태17;10-13)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것이다." (10~11)

 

마태오 복음 17장 10절에 기록된 제자들의 질문은 앞에 기록된 타볼산 현성용의 사건과 엘리야의 나타남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사실 엘리야가 메시야에 앞서 올 것이라는 사실은 말라키서 3장 1절과 3장 23~24절의 예언에 근거한 것인데, 당시 유대인들에게 메시야 출현의 결정적 증거로 여겨졌다.

 

따라서 타볼산에서의 예수님의 영광과 엘리야의 출현을 목격한 제자들에게 커다란 의문이 생겼던 것이다.

 

말라키서에 의하면,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 예언자를 보낼 것이며,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는 회복의 사명을 할 것임을 말하고 있음에도(말라3,23~24) 불구하고, 제자들은 엘리야가 메시야 되시는 예수님 출현 이후에 타볼산에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엘리야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더욱 확고하게 예고되는 것도(루카9,31) 제자들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켰을 것이다.

이것은 제자들이 메시야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엘리야가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고 기대하며, 정의와 참 예배의 회복이 이루어질 것을 굳게 믿었으므로(마르9,12), 그들은 이렇게 회복될 환경에서 메시야가 죽임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제자들은 엘리야가 온다는 예언을 옛날의 그 예언자 엘리야가  올 것이라는 사실로 착각하였다.

그러나 말라키서에서 지칭되는 엘리야'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루카1,17) 오는 사람, 즉 세례자 요한이었다.

 

한편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르코 복음사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서로 묻는 사실을 기록하여(마르9,10) 제자들의 질문에는 메시야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분명히 결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11)

 

여기서 '모든 것'로 번역된 '판타'(panta; all things)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고, 죄 중에 살고 있던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죄를 지적함으로써(루카3,3~14) 사람들의 죄스런 속성의 회복을 시도했지만, 완전한 회복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 자신조차 헤로데 안티파스의 죄를 지적하다가 죽임을 당했고, 그리스도 역시 십자가의 수난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이것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모든 것' 의미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서 온  세례자 요한으로 부터 하느님 나라의 도래가 선포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사탄이 왕노릇하는 지금까지의 세상의 모순된 모든 것들이 회복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여기서 '모든 것의 회복'세례자 요한이 완성한다고는 보기 힘들고, 다만 그의 등장으로부터 모든 것이 회복되는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는 의미를 강조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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