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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2.1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5 조회수1,492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15일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제1독서 이사 35,1-6ㄴ.10

1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여라.

사막은 즐거워하며 꽃을 피워라.

 2 수선화처럼 활짝 피고 즐거워 뛰며

 환성을 올려라. 레바논의 영광과,

카르멜과 사론의 영화가 그곳에 내려

그들이 주님의 영광을,

우리 하느님의 영화를 보리라.
3 너희는 맥 풀린 손에 힘을 불어넣고

 꺾인 무릎에 힘을 돋우어라.

4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복수가 들이닥친다, 하느님의 보복이!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5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6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10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

제2독서 야고 5,7-10

7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9 형제 여러분,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심판받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께서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말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끈기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복음 마태 11,2-11

그때에 2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5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6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7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9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10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중고등학생들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바쁘게 산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긴 저 역시 학교 다닐 때는

 밤 10시까지 자율학습을 했고,

 아침에도 8시까지 등교를

해야만 했었지요.

그러다 보니 학교에 그리고

학원에서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5일제, 주 40시간의

근무 일시를 지키는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에게만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학교 졸업 후에는 어느 대학에

갈 거니?”라고 물으니

곧바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1년 동안 일을 할 거예요.”
공부도 때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공부를 통한 견문보다

돈 버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학생은 “1년 동안

번 돈으로 세계 일주를 할 거예요.

그리고 이 시간 동안 앞으로

제가 해보고 싶은 것을 찾을 겁니다.”
“남들 다 대학생인데 혼자

늦어지는 것 같지 않을까?”라고

물으니, “각자 가는 길이 다른

건데요. 뭐. 저도 필요하다면

대학에 갈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분명한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명한

가치관을 통해 자기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마 이 학생은 어떤 상황도

잘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따르고 있으니까요.
분명한 가치관은 자기 삶의 질을

더욱더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가치관 없이

흐리멍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나요?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향해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는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의 길을 닦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이 모습을 기억하면서

제자들 역시 주님을 받아들여야

함을 이야기하십니다. 요한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라고 물은 것은 그가 몰라서가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고백했던 세례자 요한이

아닙니까? 따라서 이 부분은

제자들을 그분께로

이끌기 위해서입니다.

즉, 자신의 제자가 직접 보고

 직접 깨달을 수 있도록

 예수님께로 보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라고 하시지요. 여기서

의심은 요한의 의심이 아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간직하고

 있었던 의심입니다.

이 의심을 버리고 주님을

받아들이라는 것이지요.
주님께 대한 확실한 믿음에

기초한 가치관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당신 자신이 되어라.

다른 사람은

모두 이미 누군가가 차지했다.

(오스카 와일드)

나쁜 기억을 좋은 기억으로 변화시키는 방법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데

어떤 청년이 제게 묻습니다.
“신부님께서는 강의를 잘하시는데

혹시 지금까지 했던 강의 중에서

망친 적은 없었습니까?”
“왜 없어요? 저도 강의 망친 적이 많습니다.”
“언제요?”
“.......”
강의에서 실수를 많이 해서

망친 적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잘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강의했을 때,

너무나 긴장을 해서 어떻게 마쳤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붉혔는데

지금은 ‘언제 그랬었나?’ 싶습니다.
어느 정도 만족의 길에 들어서게 되면

실수나 실패가 잘 떠올려지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금의 나를 있게끔 해 주는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실수 하나하나에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담아서 비난하고 미워합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더 잘 살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그래야 나쁜 기억도 좋은 기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자선주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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