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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요셉의 순명 (마태1,18-24)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18 조회수89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18일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요셉의 순명 (마태1,18-24)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임금이 태어날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예레 23,5-8)
5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6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7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8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화답송 시편 72(71),1-2.12-13.18-19ㄱㄴ(◎ 7ㄴㄷ 참조)
◎ 주님, 이 시대에 정의와 평화가 꽃피게 하소서.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 주 하느님,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찬미받으시리라. 그분 홀로 기적들을 일으키신다. 영광스러운 그 이름 영원히 찬미받으시리라. 그 영광 온 누리에 가득하리라. ◎

 

 하느님께서는 성령의 힘으로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게 하셨지만, 이를 받아들인 요셉의 순명도 뒤따랐다. (마태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예레23,5~8)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5ㄷ)

 

본문은 하느님께서 남부 유다에 새로운 왕을 세우실 것이라는 사실을 은유적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싹' 에 해당하는 '체마흐'(tsemah)나무 줄기나 땅에서 새롭게 돋아나는 싹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이사야서에서 두 번 사용되었는데(이사4,2; 61,11) 특히 이사야 4장 2절의 문맥에서 본문의 예언과 동일하게 장차 하느님의 나라를 이끄실 메시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즈카리야서 3장 8절과 6장 12절에서도 이 용어의 사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 표현이 이상적인 왕 메시아를 나타내는 전문 용어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처림 메시아께서 한 싹으로 나신다는 비유 두 가지 의미 해석할 수 있다.

하나는 이전의 왕들과 전혀 다른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과 또 하나는 남부 유다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느님의 주권적인 능력에 의해 새로운 왕이 나타나실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이다.

사실 남부 유다 왕조의 역사는 패역부도한 인간의 본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역사로서 인간 왕에게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여호야킨이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바빌론 땅에서 그 삶을 마무리하고 그나마 왕으로 세워진 치드키야 마저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 다윗 왕조는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왕조가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과거에 있었던 패역부도한 이런 왕들의 흐름을 끊고,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갈 진정한 왕을 세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관련해 세례자 요한의 부친 즈키리야는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다윗 집안에 일어날 메시아의 탄생을 예언한다(루카1,69.78.79).

한편 본문에서는 이 '싹'의 속성을 '의로운'이라고 묘사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찻다크'(tsaddaq; righteous)라는 단어는 주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여기서 이 단어가 사용된 것은 그 메시야가 주님의 속성을 완전히 실현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실로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로서 의로움과 공의에 기초해 그 통치권을 행사하신다(시편89,12; 97,2).

또한 이것은 '정통성이 있는 합법적인'이라는 의미로도 이해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다스린 모든 왕들 즉 주님께서 자신의 신정 왕국을 위해  통치권을 위임하신 왕들은 그런 의로움에 있어서 완전하지 못했다.

가장 이상적인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윗마저도 바세바를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등(2사무11,2~21) 의로운 임금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다윗에게서 나올 한 의로운 싹은 의로움에 있어 완벽할 것이며,  이 세상에 하느님의 공의를 세울 것이다.

또한 많은 학자들은 이 표현을 예레미야 예언자 당대의 임금인 '치드키야' '치드키야후'(tsidqiyahu)'주님은 나의 의'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드키야는 이러한 이름과 정반대되는 행실을 행했으며 또한 정통성이 없는 왕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유다 정통 족보를 계승한 여호야킨의 아들이 아니라 삼촌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께서 세우실 새로운 왕이 의롭다는 것은 당시 치드키야 왕을 보고 실망하고 절망하였던 백성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의를 세상에 온전히 구현하신다는사실과 더불어 정통성있는 왕을 세우신다는 사실을 당시 백성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대림 제3주간 수요일 복음(마태1,18-24)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19)

 

마태오 복음 1장 19절'의로운 사람'으로 번역된 '디카이오스'(dikaios; a righteous man; a just man) '의로운', '정직한, '하느님과 인간의 법률을 준수하는' 등의 뜻을 지닌 형용사이다.

이것은 요셉이 구약에 나타난 하느님의 율법을 쫓아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 이라는 것과 부정한 것은 용납하지 않는, 곧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마리아의 잉태 소식을 접하고는 혼외관계로 인해서 잉태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녀와의 정혼 관계를 끊으려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율법대로 마리아를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아마도 마리아를 향한 그의 사랑이 깊었기 때문이며, 그의 성품 자체가 온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메'(me; not)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정 부사이며, '텔론'(thelon; willing)'자발적으로 ~할 의향을 갖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 '텔로'(thelo) 능동태 현재 분사형이다.

 

따라서 '싶지 않았으므로'로 번역된 '메 텔론'(me thelon)은 마리아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고, 요셉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그녀의 임신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기로 결심한 사실을 보여 준다.

 

또한 '마리아의 일을'로 번역된 '아우텐'(auten)은 남성 3인칭 단수 대명사 '아우토스'(autos) 여성형 목적격 단수이므로 '그녀를'(her)이라는 뜻이다.

즉 원문으로 볼 때, 요셉은 혼외 임신이라는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엄청난 일을 범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리아에 관심을 두었음잘 드러나고 있다.

한편, '드러내고'라는 의미로 번역된 '데이그마티사이'(deigmatisai; to make a public example)원형 '데이그마티죠'(deigmatizo)부정사형인데, '데이그마티조'(deigmatizo)'본보기'(an example), 특히 '경고의 의미에서의 본보기'를 보여 주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로서 '본보기를 만들어 앞에 내놓다', 또는 '공적으로 불명예를 주기 위해 폭로하다'는 의미이다.

본문은 요셉이 하느님의 율법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의로운 사람임을 소개하며, 자기가 정혼한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그가 마리아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러한 초자연적인 일을 경험한 일이 없음으로 인해 마리아의 임신을 혼외 관계로 여길 수밖에 없었던 그가 얼마나 상심하며 고민했을지를 엿보게 한다.

결국 고민끝에 요셉은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지만, 마리아를 깊이 아끼고 사랑한 까닭에, 당시 그런 죄목이라면 마리아의 부정을 공개적으로 폭로하여 모욕을 주고 돌에 맞아 죽게 하는 것이 관례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강한 결심을 했던 것이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여기서 '마리아와'로 번역된 '아우텐'(auten)'그녀를'이라는 목적격 인칭 대명사이다.

그리고 '남모르게'로 번역된 '라트라'(lathra; privily; quietly)'비밀히'(secretly)라는 의미를 지닌 부사로서,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처리하기로 한 요셉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한편 '파혼하기로'로 번역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ebulethe ~apolysai; had in mind to divorce)에서 '에불레테'(ebulethe)소원하고 바라는 것,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고자 하는 주어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내는 동사 '불로마이'(bulomai)의 직설법 부정 과거 수동태이다.

여기서는 '불로마이'(bulomai)가 수동이 아닌 능동의 의미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아폴뤼사이'(apolysai)원형 '아폴뤼오'(apolyo)의 부정사 부정 과거 능동태형인데, '아폴뤼오'(apolyo)의 기본적인 의미는 노예, 죄인 등 구속된 사람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는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신약에서 대부분 이런 의미로 쓰였으며, 그 외 모임을 해산하거나,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사람을 떠나 보내거나, 아내를 버리는 것, 즉 이혼하는 것 등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는 이혼, 즉 정혼 상태를 깨뜨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에불레테 ~ 아폴뤼사이''파혼하여 떠나 보낼 것을 결심했다'는 뜻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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