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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3주간 금요일]예수탄생 예고(루카 1,26-38)|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0 조회수1,734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9.12.20. 04:29 http://cafe.daum.net/roma3/HgBR/1418 

 

2019년 12월 20일    

[대림 제3주간 금요일]예수탄생 예고(루카 1,26-38)

 

예루살렘이 적군에 포위되었을 때 이사야 예언자는 한 아기의 탄생을 예고하며 하느님을 신뢰하라고 촉구한다. (이사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24(23),1-2.3-4ㄱㄴ.5-6(◎ 7ㄷ과 10ㄷ 참조)
◎ 주님이 들어가신다. 영광의 임금님이시다.
○ 주님의 것이라네, 온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 온 누리와 그 안에 사는 것들. 그분이 물 위에 세우시고, 강 위에 굳히셨네. ◎
○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
○ 그는 주님께 복을 받으리라.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얻으리라. 이들이 야곱이라네. 그분을 찾는 세대, 그분 얼굴을 찾는 세대라네. ◎

  

가브리엘 천사는 나자렛에 있는 처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한 아기의 탄생을 예고한다. 마리아는 주님의 뜻에 순종한다. (루카 1,26-38)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대림 제3주간 금요일 제1독서(이사7,10~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14) 

  

 아하즈가 구하기를 거부한 표징을 주 하느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실 것이 선포된다.하느님이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아하즈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그것을 그분은 능히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 하느님은 유다 백성에게 표징을 보여주실 의무가 없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표징을 주신다는 것은 무상의 선물인 은총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은총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축복이 될 수 없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 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14)

  

  

여기서 '젊은 여인'(처녀; virgine)에 해당하는 원어는 '하알르마'(haalmah)이다.

원형 '알르마'(almah)는 구약에서 7회 사용되었는데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자 즉 결혼 적령기에 있지만 성(性)경험이 없는 여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창세24,43; 탈출2,8; 잠언30,19).

  

  

더욱이 구약 성경 희랍어 번역본인 칠십인역(LXX)은 본문의 이 단어를 숫처녀를 의미하는 희랍어 '파르테노스'(pharthenos)로 번역하였다.

이 '파르테노스'는 숫처녀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 '뻬툴라'(bethula)(창세24,16)의 번역어이기도 하며, 마태오 복음 사가가 마리아를 가리켜 '처녀'(동정녀)라고 한 희랍어 '파르테노스'와 동일한 단어이기도 하다(마태1,23).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가리키는 예언이라는 증거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문맥상 난점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징조가 당시 아하즈 왕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700년 후에 일어날 징조가 당시 아하즈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그러하다면, 그 징조가 아하즈에게 어떻게 그의 불신앙을 책망하는 징조가 될 수 있겠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난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난제를 이렇게 해석하면 물의가 없다. 

사실 700년 후에 이루어질 일이지만, 이사야 예언자가 그 사건을 예언하면서 그것이 자기 시대에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였고, 또 아하즈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전혀 부자연스런 일이 아니고 그 예언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다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그 광대한 진리를 하느님께서 계시로 주신대로 왜곡이나 변조없이 그대로 증거한 것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주장을 취하게 되면, 여전히 7장 16절이 난해한 구절로 남는다. 

  

 

"그 아이가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임금님께서 혐오하시는 저 두 임금의 땅은 황량하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서7,16)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700년 후에 태어날 임마누엘의 예표로서 이사야 시대에 한 아들을 주셨을 것이며, 이사야서 7장 16절은 아마도 그 아들에 대한 예언일 것이다.

그 아들은 이사야서 8장 3절, 4절과 관련하여 이사야가 그 아내를 통해 낳은 아들이 분명하며 그 이름은 '마헤르 살랄 하스 바즈'이다.

   

이사야서 7장 16절의 아들이 임마누엘을 예표하는 것은  구약 시대의 이사악이나 요셉, 여호수아 등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였다는 사실과 관련지을 때 조금도 부자연스런 것이 아니다.

  

창세기의 요셉이 동정녀를 통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었듯이 또한 이사악이 비록 제단에서 문자적으로 죽지는 않았지만 그가 십자가 희생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었듯이 그 여자가 낳게 될 아들 역시 믿는 자에게 구원이 되고 불신자에게 심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14)

  

'임마누엘'은 '~와 함께'라는 뜻의 전치사 '임'(im)에 1인칭 복수 접미어가 결합하여 '하느님'이란 뜻의 명사 '엘'(el)이 함께 쓰여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 이름은 당시 가부장적 사회에서 대부분의 경우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달리 이 아이를 낳은 어미인 그 처녀가 지어줄 것이다.

즉 '이라 할 것이다'에 해당하는 '웨카라트'(weqarath)는 '칭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카라'(qara)의 여성 3인칭 단수형이다.

  

사실 700년 이후 동정녀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아들을 낳아 천사의 지시대로 그에게 '예수'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마태1,21).

 

그런 점에서 '임마누엘'은 그 아들을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그 아들의 인격속에 내재되어 있는 속성을 나타내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즉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해 동정녀를 통하여 이 땅에 보내실 분은 하느님 당신 자신이 육화(肉化)한 존재임을 나타내는 명칭이 바로 '임마누엘'(immanuel)이라는 것이다.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logos)이신 성자 하느님께서(요한1,1~3) 이 땅에 강생(육화)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직접 그의 백성 바로 곁으로 오신 것이다(요한1,14).

곧 임마누엘은 제2위 하느님이신 성자 그리스도의 강생(육화)에 대한 예언이며  그의 백성이 하느님을 볼 것에 대한 축복의 예언인 것이다.

  

 


 대림 제3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1,26-38)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37~38)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hoti; for)로 시작되는 루카 복음 1장 37절의학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한 자에게 임신이 가능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하느님의 모든 말씀은 불가능이 없기 때문이다.

 

원문의 '말씀'에 해당하는 '레마'(rema)는 일차적으로 '생생한 목소리로 선포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루카 복음 1장 37절에서 이 단어는 예수님 탄생에 관해 예언된 모든 말씀을  의미하며, 이러한 예언들이 마치 생생한 목소리로 선포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불가능한 일이 없다'라는 뜻으로 번역된 '아뒤나테세이'(adynatesei; is impossible)'아뒤나토스'(adynatos)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아뒤나토스'(adynatos)'능력있는', '강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뒤나토스' (dynatos)에 부정 접두사인 '아'(a)가 붙어서 '능력없는', '약한'이란 뜻을 갖는 단어이다.

 

따라서 '아뒤나테세이'(adynatesei)는 앞의 '우크'(ouk; nothing)와 연결되어 이중 부정의 의미를 갖고서 매우 강한 긍정의 의미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능력과 권세가 있어서 마리아에게 선포된 모든 것들이 그대로 이루어지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은 노쇠하여 자식을 낳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던 아브라함에게 '너무 어려워 주님이 못할 일이라도 있다는 말이냐?'며 아들 이사악을 약속하신 하느님의 말씀(창세18,14)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루카 복음 1장 38절하느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순수하게 믿는 마리아의 순수한 신앙을 잘 보여 주며, 이러한 신앙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2,5)고 잔치집 일꾼들에게 지시함으로써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일어나는데 일조했던 것이다.

 

여기서 마리아가 자신을 지칭한 단어 '둘레'(doule; servant)'종'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노예'를 뜻하는 '둘로스'(doulos)의 여성 명사로서 '결코 주인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하녀(계집종)'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주인', '주님'을 의미하는 '퀴리오스'(kyrios)의 소유격 '퀴리우'(kyriu)와  연결되어 철저하게 주님께 예속된 능력없는 계집종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따라서 마리아가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에 완전하게 맡기겠다는, 철저한 순종과 겸손의 표현인 것이다.

 

또한 본문 서두에 기록되어 있는 '보십시오'에 해당하는 '이두'(idu)라는 단어는 마리아의 이러한 마음을 잘 드러내 준다.

'이두'(idu)의 용법은 이야기의 생기를 돋우어 주거나, 듣는 이나 읽는 이의 주의를 환기시킬 때, 그리고 좀 더 깊은 생각을 촉구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루카 복음 1장 38절에서는 이 단어가 동사없이 명사와 함께 사용되어 마리아 자신의 '종'으로서의 존재를 천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줌으로써, 자신의 겸손함을 더욱 드러내고 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말씀하신 대로'에서 '대로'에 해당하는 '카타'(kata)라는 전치사는 목적격과 연결되어 뒤에 오는 명사의 내용이나 본질이 조금도 훼손되는 일이 없이 '그대로 유지되는'상태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에 해당하는 '게노이토'(genoito; may it be)'발생하다'는 뜻의 '기노마이'(ginomai)의 희구법으로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모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마리아의 염원을 담고 있다.

 

비록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씀을 들었지만, 그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보증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었기에,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믿고 바라는 위대한 순종의 신앙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이 순간이 마리아가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구세주의 모친으로서의 성소를 허락하는 순간이며, 영원으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의 피와 살을 취하고 인간의 역사안으로 들어오는 강생(육화; Incarnatio)의 순간이기에, 우리는 사도신경과 삼종경을 바칠때 고개를 숙여 구세주로 오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와 흠숭의 예를 드리는 것이다.

 

 내적 깊이의 삶-주님과의 만남-2013.12.20 대림 제3주간 금요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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