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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2월 21일 독서와 복음을 읽고 나서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1 조회수869 추천수0 반대(0) 신고

 

 

한 쌍의 사랑하는 연인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이 보고 싶은 마음에 언덕 너머에 있는 여인의 집을 찾아갑니다. 근데 여인의 집을 가는 데는 산과 언덕이 딱 하고 가로막고 있습니다. 남자에겐 그 언덕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나 봅니다.

 

산과 언덕을 뛰어넘어서 갈 정도로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얼마나 그리운 여인이였으면 그랬을까요? 상상이 되고도 남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연인에 대해 말합니다. 젊은 사슴 같다고 하네요. 젊다고 하니 아무래도 싱그러움이 가득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연인은 자신의 연인 집 앞에 다다랐습니다. 근데 담장 앞에서 연인을 부를 법도 한데 부르지를 않고 그냥 창틈으로 기웃거리고 창살 틈으로 들여다봅니다.

 

남자는 남자답게 연인을 향해 큰소리로 부르며 문을 열고 연인의 집으로 들어가면 좋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그랬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창가에 대고 속삭이며 말한다고 합니다.

 

지금 밖은 갓 겨울이 지나가고 있어서 땅에는 꽃이 싹을 틔워서 잎을 내고 포도향기도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봄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자는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연인에게 같이 보자고 간질간질하게 살며시 속삭이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가는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도 누구를 만나러 가는 내용입니다. 바로 성모님께서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만나러 갑니다. 성모님은 사촌 언니 집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인의 몸으로 그것도 이 세상에 오실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고서 가십니다. 홀몸도 아닌데도 말입니다. 성모님은 언니께 인사를 합니다. 그때 엘리사벳 언니는 성모님의 태중에 계신 아기 예수님의 태동 소리를 어떻게 느꼈나봅니다.

 

아마 언니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걸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모님을 향해 모든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다고 하례를 드립니다. 아기 예수님께도 복되시다는 찬미를 드립니다. 사촌 언니는 바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어찌 저에게 오시다니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 성모님의 인사말에 엘리사벳인 언니의 태중에서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것을 미리 예비하시는 역할을 하시는 요한도 성모님의 태중에 있는 예수님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나 봅니다.

 

정말 두 명의 태아가 서로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알아볼 수 있었나 봅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남자가 사랑하는 연인에게 속삭이듯이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이렇게 묵상을 해 봅니다.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큰소리로 하면 연인이 놀라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주위에 다른 사람들보다도 연인에게 먼저 아름다운 봄의 향연을 즐기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꽃송이에서 나오는 향기도 맡게 해 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또 이런 사랑스런 여인이 집에만 있는 게 속상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름다운 여인이 집안에만 갇혀있는 것 같아서요. 결국 어떤 여인을 사랑하면 그 여인을 향해 가는 데 어떤 높은 산과 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그건 장애물이 될 수 없을 겁니다.

 

왜냐고요?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찾아오는 신랑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중입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어 하느님이시면서도 하느님의 영광은 버리셨습니다. 그렇게 한 여인의 태를 입고 오셨습니다.

 

막상 오기는 오셨는데 어둠 같은 어머니의 태 속에서 계시면서 어떻게 이 세상을 구원으로 이끌지 하고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겁니다. 그러던 차에 바로 이모님의 태중에 있는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이모님의 태중에 있었는데 아마 서로가 서로를 향해 아주 반가웠을 겁니다.

 

성모님과 엘리사벳님은 서로가 인간적으로는 있기 힘든 생명을 동시에 탄생하게 될 몸으로 변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두 분의 태 속에 잉태되어 있는 생명에 인류의 운명이 좌우가 될 상황입니다.

 

아가서에 나오는 독서에서처럼 사랑하는 연인에게 조용히 속삭이듯이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실 때 정말 초라한 모습으로 오셔서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아들일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이 세상에 오실 때 조용히 오셨습니다.

 

조용히 오신다고 하더라도 엘리사벳 이모님은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바로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영인 성령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으면 바로 성모님을 그냥 사촌 여동생인 줄만 알았을 겁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주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고 단순히 혈연관계에 있는 사촌 여동생으로 이해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령이 임하지 않았으면 하느님의 아드님과 하느님의 어머니를 알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입니까? 우리도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주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아보는 엘리사벳으로부터 어떤 신앙의 교훈을 얻어야 될까를 생각해보며 남은 성탄을 기다리면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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