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이 감동적인 스토리로 변화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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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12-21 | 조회수1,357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이 감동적인 스토리로 변화됩니다! 나자렛의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서둘러’ 길을 떠나셨습니다. 목적지는 친척 엘리사벳이 살고 있는 아인카림 (히브리어로 엔 케렘)이라는 곳입니다. 아인카림은 유다 산악 지방에 위치해 있으며,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약 8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복음서 어디에도 아인카림이라는 지명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유일하게 루카복음사가만이 막연하게 ‘유다 산악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언급하고 있는데, 오늘날 우리는 그곳을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상봉이 이루어졌던 곳, 세례자 요한의 탄생 장소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신 후, 서둘러 길을 떠나 아인카림으로 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분 마음속으로 직접 들어가보지 않았기에 정확하게 알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급작스럽고, 너무나 뜻밖에 다가온 혼전 잉태 사건 앞에, 마리아는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난감해했을 것입니다. 구세주 하느님을 자신의 태중에 모시게 된 일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어린 소녀로서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일이기도 했습니다. 마리아 개인적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신앙인으로서 인생의 큰 기로 앞에 대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친척 엘리사벳의 집으로 석달간의 영신수련 대피정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 피정길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자렛에서 아인카림까지 직선거리로는 약 120킬로미터, 요르단 강 옆으로 난 계곡길을 따라 돌아서 가면 약 160킬로 가까이 되는 먼 여행길이었습니다. 나자렛의 한 시골 소녀가 감당하기 힘든 큰 사건을 겪고, 나름 고민하고 기도하고 갈등하면서 걸어갔을 그 긴 여행을 생각하니, 제 마음까지 덩달아 막막하고 착찹해집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씩씩하게 길을 떠났습니다. 마리아는 길을 걸어가면서 끊임없이 주님의 이름을 불렀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했고, 마음속으로 골백번도 더 다짐했을 것입니다. “주님, 지금 당장은 제가 너무 어려서 아무 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부족한 이 소녀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겠다니 감지덕지하면서 길을 나섭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당신의 초대 앞에 용감하게 Fiat! 이라고 응답했지만, 제 앞에 펼쳐질 길들이 솔직히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주신 언약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단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 같은 길이지만, 기꺼이 제 신앙여정을 시작합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장면을 통해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구약시대 옛 백성 전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마리아는 새로운 시대, 하느님의 새 백성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 두사람의 만남은,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기구하고 비극적인 만남이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한 여인 마리아는 십대 미혼모였습니다. 또 다른 여인 엘리사벳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는 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노산(老産) 중의 노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여인은 만나자 마자 서로를 끌어안고 반가워 죽습니다. 서로 크게 환영하며 기쁨과 환희의 노래를 주고 받습니다.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이 사람들이 돌았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령의 힘이 참으로 크십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불행이 즉시 행복으로 바뀝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니 이해할 수 없는 비극적 사건이 감동적인 스토리로 변화됩니다. 이러한 성령의 능력은 오늘 우리네 삶 속에도 계속되고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기쁘게 순명할 때, 우리들 삶 속에서도 슬픔이 기쁨으로, 고통이 환희로 변화되는 기적인 계속될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일컬어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신 분’ ‘내 주님의 어머니’‘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이라는 최상의 칭호를 사용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마리아의 위대성과 복되심의 이유에 대해서 눈여겨봅니다. 우리도 꼭 기억할 점이 있습니다.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자신의 태중에 모셨고 직접 출산하셔서 복되시기도 하지만, 더 복되신 이유는 예수님을 낳으리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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