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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2.2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2 조회수1,707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22일

대림 제4주일

제1독서 이사 7,10-14

그 무렵 10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이르셨다.

11 “너는 주 너의 하느님께

너를 위하여 표징을 청하여라.

저 저승 깊은 곳에 있는 것이든,

저 위 높은 곳에 있는 것이든

아무것이나 청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
13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14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제2독서 로마 1,1-7

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으로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의

복음을 위하여 선택을 받은

 바오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2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으신 것으로,

3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육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셨고,

4 거룩한 영으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시어,

힘을 지니신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확인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우리는 바로 그분을 통하여

사도직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에게 믿음의 순종을

일깨우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에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로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로마의

모든 신자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복음 마태 1,18-24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몇 년 전, 어느 교육에

참여했을 때의 일입니다.

일반인들이 많이 참여하는

교육에 저 역시 참석했었습니다.

가톨릭 안에서도 이 교육 내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침 일찍 교육장에

들어갔을 때 어색함이 가득했습니다.

저와 같은 종교인은 하나도 없고,

다들 회사나 정부 기관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모두 피곤한 얼굴로 눈을 감고

 의자에 무표정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얼굴을 아는 사람도 없고

또 낯선 공간에서의 교육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교육장의 분위기는

냉랭했고, 이런 곳에서 이틀 동안

 함께 교육받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기도 했습니다.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 순간,

어떤 한 분이 교육장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분 역시

교육생이었지요. 그런데 이분이

 오자마자 어색한 공간의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오자마자 사람들에게

명함을 나눠주며 인사를 했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공간의 분위기를 바꿔 놓은

 것입니다. 이분 덕분에 서로 인사도

나누게 되었고, 강의 전에 교육생 모두는

 낯섦의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교육시간이 되어 나타난 강사님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번 기수는 시작부터 분위기가 다른데요?

가장 뛰어난 모범 기수가 되겠어요.”
한 사람으로 인해 공간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라는 말은 해도, 자신이 그렇게

바꿔 놓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족한 나를 통해서도

 분위기는 충분히 바뀔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만들고 있습니까? 가정이라는 공간,

일터의 공간, 신앙의 공간 등을 기쁨과

행복의 공간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우리 각자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이라는 공간을 우리가

잘 꾸려나가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아닌 남에게 그 책임을 전가합니다.

남의 역할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나의 역할이 있는데도 말이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예수님 잉태 소식,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의 메시지.

모두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령의 활동, 즉

하느님의 활동은 언제나 인간의

생각과 예측을 모두 뛰어넘는다는

것을 이렇게 보여줍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각자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성모님의 역할,

요셉의 역할, 천사의 역할. 그들

 각자가 자기 자리에 충실했기에

가능한 일이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은 지금의 내게도 주어집니다.

내 역할에 얼마나 충실했나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은 지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

약자에 대한 우선적 관심

우리나라에서 경치 좋은 곳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호텔, 카페, 골프장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책을 보니,

이탈리아에서는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장애인 시설이나 어린이

병원이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 약자가 그러한 경치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장애인 시설이 들어선다는 이야기에

지역 주민들이 들고일어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떠올려 보면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어디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즉, 약자에 더 관심을 두느냐,

강자에 더 관심을 두느냐의

차이는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약자에 대해 우선적

관심을 두셨고 최고의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약자에 관해

관심도 없고 약간의 노력만으로 충분히

다했다며 스스로 만족해합니다.

이런 모습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요?
이 연말에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약자에

관심을 기울여 보셨으면 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서 충실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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