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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4주간 월요일]그의 이름은 요한 (루카1,57-6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3 조회수1,18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23일    

[대림 제4주간 월요일]그의 이름은 요한 (루카1,57-66)
대림 제4주간 월요일

 

하느님께서는 말라키 예언자를 통하여 주님의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신다. (말라 3,1-4.23-24)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 너희가 좋아하는 계약의 사자  보라, 그가 온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2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3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
4 그러면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주님 마음에 들리라.
23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화답송 시편 25(24),4-5ㄱㄴ.8-9.10과 14(◎ 루카 21,28)
◎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소서. 저를 가르치시어 당신 진리로 이끄소서. 당신은 제 구원의 하느님이시옵니다. ◎
○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
○ 주님의 계약과 법규를 지키는 이들에게, 주님의 모든 길은 자애와 진실이라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와 사귀시고, 당신의 계약 그들에게 알려 주신다. ◎

 

하느님의 섭리에 의심을 품었던 즈카르야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아기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짓고 난 뒤에 혀가 풀린다. (루카1,57-66)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대림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말라3,1-4.23-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24)

 

앞선 말라기 3장 23절에서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에 예언자 엘리야를 파견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어지는 말라기 3장 24절에서는 그의 사명을 통하여 주님과 선민 이스라엘의 관계가 회복될 것을 예언함과 더불어 그의 사명을 거부하는 자에 대하여 경고를 주고 있다.

 

말라기 3장 24절은 장차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으로 올 세례자 요한의 사명이 제시된다(루카1,17). 본문에서 '부모'에 해당하는 '아보트'(aboth), '아보탐'(abotham)은 모두 복수형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이 예언을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관련해서 그의 사명에 적용한 주님의 천사는 루카복음 1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여기서 '부모의 마음''의인들의 생각'을 같은 뜻의 표현으로 보고, '자녀'와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같은 뜻의 표현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린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경건한 조상들의 신앙을 불경건한 후손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게 하여 그들의 신앙을 조상들의 신앙처럼 경건하게 만든다는 뜻이 된다.

 

말라기 예언자 당대나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당시의 이스라엘이 갖고 있던 가장 큰 문제는 과거에 신앙의 조상들이 주님 대전에 가졌던 경건하고 의로운 신앙의 결핍이었다.

 

이를 감안할 때, 세례자 요한은 부모들, 즉 이스라엘의 경건한 조상들이 가졌던 그 신앙심을 자녀들, 즉 그 후세대들이 회복하여 메시야를 맞을 준비를 갖추도록 하는 사명을 맡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그가 ~돌리리라'에 해당하는 '웨헤쉬브'(weheshib; and he will turn)'그가 회복시킬 것이다'(he will restore)라는 의미인데, 문맥과 구세사의 전개 과정을 볼 때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좋다.

 

 대림 제4주간 월요일 복음(루카1,57~66)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하고 말하였다. ~~~ 즈카르야는 글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59~61.63)

 

루카 복음 1장 59절의 '할례식에'로 번역된 '페리테메인'(peritemein; to circumcise)의  원형 '페리템노'(peritemno)는 원래 '둘레를 자르다','칼자국을 내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로서 할례 시행을 나타내는 단어로 굳어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남자 성기의 표피를 잘라내는 할례 행위를 통해 그들이 이방인들과 구별된 백성임을 인정받았고(1사무17,26), 또한 하느님과의 계약의 표징으로서 그의 백성됨을 인정받았다(창세17,11).

 

또한 이 할례출생 후 8일째 되는 날에 시행했는데, 그 이유는 아이를 출산한 어머니가 7일 동안 부정했듯이(레위12,2) 그 아이도 부정한 것으로 여겨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통해 7일간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하느님의 계약에 힘입어 새롭게 태어남을 상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할례를 행하는 생후 8일째는 현대 의학에서 인간이 가장 고통을 적게 느끼고, 또한 후유증이 거의 없는 때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 당시 자녀의 할례는 원래 가장에 의해서 시행되는데, 친척들과 이웃들이 함께 참석하여 공개적 의식으로 치러졌다.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친척들과 이웃들은 아이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즈카르야라고 짓고자 고집한다. 

여기서 '부르려 하였다'로 번역된 '에칼룬'(ekaloun; they called; they were going to name)'부르다','이름짓다' 등의 뜻을 가진 '칼레오'(kaleo)미완료 과거형으로 이름을 짓고자 했던 자들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 준다.

 

행동의 반복이나 계속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형이 사용된 것은 그들이 그 아이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라고 부르고자 계속 고집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고집은 그 당시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짓던 이스라엘의 사회 풍습과 이름을 중요시했던 유대인들의 사상적 배경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안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여기서 '안됩니다'에 해당하는 '우키'(ouchi; no!)는 부정사 '우'(ou) 강조형으로서 '결코 ~아니다'라는 강렬한 부정의 의미를 지닌다.

또한 이 단어는 뒤에 '그러나' 등의 뜻을 가진 '알라'(alla)와 연결되어 더욱 더 강한 반대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엘리사벳은 천사의 예언(루카1,13)에 대한 분명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이름에 따라 자식의 이름을 짓는 사회적 통념에도 불구하고, 자신있게 아이의 이름을 '즈카르야'가 아닌 '요한'으로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엘리사벳의 이러한 담대함은 바로 하느님의 계약을 확신하는 믿음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편, '요한'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인의 이름으로는 흔했는데, '주님은 은혜로우시다'뜻의 히브리어 '요하난'(yohanan)에서 유래된 것이다.

따라서 '요한'이라는 이름은 늙어서 수태할 수 없었던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게 부어주신 하느님의 은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를 세우시는 큰 은혜가 동시에 잘 표현된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여기서 '글쓰는 판'에 해당하는 '피나키디온'(pinakidion; a writing tablet)글을 쓰는 판으로서(이사8,1) 고대 아시리아나 바빌론에서는 구운 점토판많이 사용하였고, 구약 시대 이스라엘에서는 돌판(탈출24,12)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의 서판은 표면에 밀랍(wax)을 얇게 칠한 작은 나무판으로서 그곳에 철필로 글을 쓰곤 하였다.

 

여기서 서판에 '그 이름은 요한'이라고 쓴 즈카르야의 모습은 1장 22절에서 천사의 예언을 믿지 못했던 이전의 모습과 너무나 다른데, 이것은 이름을 짓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표현하는 믿음의 행동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즈카르야가 주변 사람들 앞에서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쓴 이후에 조금도 지체함이 없이 바로 그 현장에서 그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는 기적들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느님의 은혜는 불신의 허울을 벗고 그의 뜻에 합당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그 순간에 기적처럼 쏟아 부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열리고, 풀려'로 번역된 '아네욱테'(aneuchthe; was opened and loosed)'닫혀진 것을 열다'라는 의미를 가진 '아노이고'(anoigo)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즈카르야의 입과 혀가 하느님의 능력에 의해 순식간에 정상으로 회복되어 말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이 표현은 완전히 봉해졌던 입이 열렸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철저히 그 기능이 정지되었던 혀가 말하는 기능을 회복했다는 시적인 표현이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말하는 기능이 회복된 즈카르야가 최초로 내뱉은 말하느님을 찬미하는 언어들이었다.

여기서 '찬미하였다'로 번역된 '율로곤'(eulogon; and praised; praising)은 '찬양하다', '축복하다' 등의 의미의 '율로게오'(eulogeo)현재 분사형이므로 '말하는 것''찬미하는 것'동시에 이루어진 일임을 나타내준다.

 

또한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로 번역된 '엘랄레이'(elalei; he began to speak)'소리내다', '말하다' 등의 뜻을 가진 '랄레오'(laleo)미완료형으로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말이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즈카르야는 자신에게 내려온 천사의 저주가 풀려지는 그 순간모든 것을 제쳐두고 자유롭게 된 그 입과 혀를 가지고 가장 먼저 하느님을 계속하여 찬미했던 것이다.

 

엘리사벳이 수태한 지 약 10개월간의 긴 고통과 침묵의 시간을 끝마치고, 하느님을 향해 외치는 찬미는 세상의 그 어떤 찬미보다도 더 감동스러웠을 것이며, 지난 10개월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음에 대한 깊은 회개가 따라왔을 것이고, 예언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서 하느님께서는 그 약속에 신실한 분이심을 깊이 깨달았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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