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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4주간 화요일]즈카르야의 노래 (루카 1,67-7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4 조회수1,236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간 화요일]즈카르야의 노래 (루카 1,67-79)

 

다윗 임금은 하느님의 궤를 모실 성전을 짓겠다고 한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영원한 왕좌를 약속하신다. (2사무 7,1-5.8ㄷ-12.14ㄱ.16)
다윗 1 임금이 자기 궁에 자리 잡고, 주님께서 그를 사방의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셨을 때이다.
2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
3 나탄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임금님과 함께 계시니, 가셔서 무엇이든 마음 내키시는 대로 하십시오.”
4 그런데 그날 밤, 주님의 말씀이 나탄에게 내렸다.
5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8 나는 양 떼를 따라다니던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9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나는 너의 이름을 세상 위인들의 이름처럼 위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10 나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곳을 정하고, 그곳에 그들을 심어 그들이 제자리에서 살게 하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다시는 전처럼, 불의한 자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11 곧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 온 것처럼, 나는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평온하게 해 주겠다. 더 나아가 주님이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12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6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화답송  시편 89(88),2-3.4-5.27과 29(◎ 2ㄱ 참조)
◎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제가 아뢰나이다. “주님은 자애를 영원히 세우시고, 진실을 하늘에 굳히셨나이다.” ◎
○ 나는 내가 뽑은 이와 계약을 맺고, 나의 종 다윗에게 맹세하였노라. “영원토록 네 후손을 굳건히 하고, 대대로 이어 갈 네 왕좌를 세우노라.”◎
○ 그는 나를 부르리라. “당신은 저의 아버지, 저의 하느님, 제 구원의 바위.” 영원토록 그에게 내 자애를 베풀리니, 그와 맺은 내 계약 변함이 없으리라. ◎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서 주님께서 아들을 통하여 이루시려는 계획을 노래하며 주님을 찬미한다. (루카 1,67-79)
67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예언하였다.
68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69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70 당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하여 예로부터 말씀하신 대로
71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72 그분께서는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셨습니다.
73 이 계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로
74 원수들 손에서 구원된 우리가 두려움 없이
75 한평생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당신을 섬기도록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76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77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78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79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대림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사무7,1-5.8ㄷ-12.14ㄱ.16)

 

임금이 나탄 예언자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나는 향백나무 궁에 사는데,  하느님의 궤는 천막에 머무르고 있소."  (2)

 

본절은 하느님의 성전을 건축할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다윗이 이것을 예언자 나탄과 상의하는 내용이다.

 

다윗이 하느님 뜻에 합당한 임금이 되는 데 크게 도움을 주었을(2사무12,1-15)뿐만 아니라 후에 솔로몬의 왕위 계승에 있어서도 크게 기여하였고(1열왕1,8-45), 동료 선견자 갓과 함께 성전 예배 음악을 도입하였던(2역대29,25) 예언자 나탄의 이름이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아마도 그는 왕실 대소사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큰 영향력을 끼친 왕실 고문의 역할을 하였던 궁정 예언자였을 것이다.

 

여기서 '예언자' 혹은 '선견자'에 해당하는 '나비'(nabi)'낮은 목소리를 내다'라는 뜻의 '나바'(naba)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로서 '예언자'라는 뜻 이외에 '대변인'이라는 뜻도 있다.

 

이것은 예언자란 바로 하느님의 대변인으로서 하느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예언자는 하느님의 '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히브리어 '나비'(nabi)가 '대변인' 혹은 '대언자'라는 개념을 가졌다는 사실은 탈출기 7장 1절에서 아론이 모세의 '나비'(nabi)가 된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론은 모세의 대변자이며, 또한 모세는 하느님의 대언자였다.

이렇듯이 예언자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느님의 강력한 부르심에 의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나탄'의 부르심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사무엘 하권 7장 4-17절에서 그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려서 그것을 그대로 다윗에게 전해야 했던 것을 볼 때, 그가 하느님의 대언자로 부르심을 받았음확인할 수 있다.

 

다윗은 이러한 하느님의 대언자를 가까이함으로써,  사무엘 예언자를 멀리했던 인본주의적인 임금인 사울과는 달리 신본주의적인 통치를 할 수 있었다.

 

다윗이 예언자 나탄을 불러온 것은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대한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다윗은 먼저 자신의 거처와 하느님의 거처를 비교하였다.

 

다윗이 나탄에게 한 말 중에 첫 두 단어인 '레에 나'(reeh na)새 성경에서 단순히 '보시오'로 번역되었다.

'레에'(reeh)'보다'라는 뜻의 '라아'(raah) 동사의 명령형이며, '나'(na) 정중하게 요구할 때 쓰이는 불변사로서, 이러한 표현에는  나탄에게서 도움을  받고자 하는 다윗의 간절함이 잘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주어보다 동사를 앞세우는 히브리어 문법과 다르게 다윗은 '나는'과  '하느님의 궤는'이란 말을 각각 동사보다 앞세워 강조함으로써 자신과 하느님을 선명하게 비교하고 있다.

 

다윗은 '나는'과 '하느님의 궤는'을 대비시켜 자신이 머물고 있는 거처하느님께서 거하시는 거처를 비교함으로써 자신은 향백나무로 지어진 웅장한 궁에 머무는 반면, 이스라엘의 진정한 임금이신 하느님은 초라한 천막에 머무르시도록 지금껏 내버려 둔 데 대한 자신의 송구스러움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다윗이 머무는 곳으로 제시된 '향백나무 궁'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티로임금 히람이 다윗에게 지어준 당시 최고의 건축물이었다(2사무5,11).

반면 하느님의 궤는 천막 가운데 있었다.

 

여기서 '천막'으로 번역된 '예리아'(yeriah) '휘장'(tent, curtain)을 의미하는데, 사무엘 하권 6장 17절에서 '천막'으로 번역된 '오헬'(ohel)과는 기본적으로 의미가 다르다.

그러나 두 단어는 여기서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서 4장 20절, 10장 20절, 하바쿡서 3장 7절에서 같은 뜻으로 쓰였다.

 

즉 이것은 모세 시대의 만남의 천막(성막)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하느님의 궤를 임시적으로 보관하기 위해 다윗이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 하권 6장 17절에서 '천막'으로 묘사한 것과는 달리 여기서 '휘장', '커튼'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천막'('예리아'; yeriah)으로 묘사한 것은 '예리아'(yeriah)가 일반적으로 천막보다 작은 것을 나타내거나 큰 천막 안에 있는 작은 부분을 나타내는 용어라는 점과 관계된다.

 

다윗은 자신의 궁과 하느님의 거처가 외형적으로 너무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천막'('예리아')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대림 제4주간 화요일 복음(루카1,67~79)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당신 종 다윗 집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68~69)

 

'찬미받으소서'로 번역된 '율로게토스'(eulogetos; blessed be; praise be)'찬양하다', '축복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율로게오'(eulogeo)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축복받은', '찬양받을 만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단어는 루카 복음 1장 42절에서 '복되시다', '복이 있다'로 번역되어 하느님의 선하심을 입은 사람에게 적용되었지만, 여기 루카 복음 1장 68절처럼 하느님의 선하심을 입은 사람이 그분께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하느님께서는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참으로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에, 즈카르야는 자신의 놀라운 체험(루카1,57~64)의 바탕 위에서, 그의 찬가 서두에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란 말은 루카 복음 1장 17절과 77절에 사용되고 있는 '주님의 백성'과 같은 의미의 단어로서, 야곱의 후손인 유대인들을 가리키지만, 영적으로는 하느님의 계약 백성의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즈카르야는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통해 하느님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 정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

 

이유 접속사로 쓰인 '호티'(hoti; for)로 시작되는 본절과 69절은 왜 하느님께서 찬미받을 만한 분인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즈카르야는 먼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을찬미하고 있다.

 

여기서 '찾아와'로 번역된 '에페스켑사토'(epeskepsato; he has come; he has visited)의 원형 '에피스켑토마이'(episkeptomai)는 도움을 주기 위해 '자세히 살펴보다'라는 의미와 '직접 찾아오다', '방문하다'는 의미가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구약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께서 불임의 사라를 찾아오셔서 이사악을 주신 대목(창세21,1)과 판관 시대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많이 떠나버린 황량한 가나안 땅에 하느님께서 찾아오셔서 양식을 주셨다는 대목(룻기1,6)에 대표적으로 쓰였는데, 환난과 위기에 처한 당신 계약의 백성을 향한 하느님의 은혜와 사랑을 잘 나타내 준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즈카르야는 구세주 메시야의 길을 예비할 요한을  태어나게 하신 하느님을 생각하면서,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돌보시고  찾아오셨다는 표현으로 찬미했던 것이다.

또한 엘리사벳의 기적적인 임신과 출생 하느님의 돌보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일어났음을 증거하기 위해 '에피스켑토마이'(episkeptomai)라는 단어로 찬미했던 것이다.

 

그리고 '속량'으로 번역된 '뤼트로신'(lytrosin; redeemed) '속전을 내고  놓아 주다', '구속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동사 '뤼트로오'(lytroo)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구속', '해방', '자유' 등의 뜻을 가진다.

구약에서는 '파다'(phadah)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속량'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가운데서 맏아들의 '속전'(贖錢), '대속'을 요구할 때 사용되었으며 (탈출13,2; 13,11~16), 또한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된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탈출21,8).

따라서 여기서 '속량'이라는 표현은 하느님의 인류 구속 사업과 관련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그 피값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죄사함의 은총을 받는 것의미하는 말이 된다.

하느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을 돌보시어, 그들을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기를 작정하셨다.

그리고 즈카르야는 바로 지금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과  구원의 은혜를 미리 내다보고 온 마음을 다해 찬미하고 있는 것이다.

 

'힘센 구원자를 일으키셨습니다'

 

루카 복음 1장 69절은 구약에 나오는 '내가 다윗에게 뿔이 돋게 하고'(시편132,17) 라는 메시야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힘센 구원자를'에 해당하는 원문은 '구원의 뿔을'('케라스 소테리아스'; keras soterias; an horn of salvation)로 되어 있다.

 

여기서 '뿔'에 해당하는 희랍어 '케라스'(keras; an horn)히브리어 '케렌'(qeren)에 대응하는 단어로서 '힘''능력'을 상징한다(신명33,17; 1열왕22,11; 다니8,3).

따라서 '구원의 뿔'은 구원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는 말이며, 동시에 이러한 힘과 능력을 지닌 구세주를 상징한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뿔'인류를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실 힘과 능력을 가진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이다.

 

즈카르야는 여기서 구약적인 표현을 사용해서 자신이 말하고 있는 메시야가 구약에서 이미 예언되어 온 바로 그 메시야이심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한편 '집안에서'로 번역된 '엔 오이코'(en oiko; in the house)에서 '오이코'(oiko)의 원형 '오이코스'(oikos)는 원래 건물로서의 '집'가리키는 단어이지만, 여기서는 혈연적 관계의 '가문'을 의미하고 있다.

 

따라서 다윗의 '집안'이라는 말은 다윗의 '가문'이나 '자손'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이 표현은 즈카르야 당시 유대 전역에 팽배해 있던 메시야 사상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다윗 가문에서 메시야가 나와 그들을 압제와 억압으로부터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즈카르야가 노래하고 있는 메시야는 비록 다윗 임금의 가문에서 태어나기는 하지만, 유대인들이 고대하던 정치적이며 세속적인 메시야가 아니다.

장차 오실 메시야는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당신 백성들을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구원의 기쁨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영신적인 메시야로 오시기로 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혈통적 유대인들만이 아닌,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시기로 되어 있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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