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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2.25)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5 조회수1,384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제1독서 이사 52,7-10

7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

“너의 하느님은 임금님이시다.”

하고 시온에게 말하는구나.
8 들어 보아라. 너의 파수꾼들이

목소리를 높인다. 다 함께

환성을 올린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심을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다.
9 예루살렘의 폐허들아, 다 함께

기뻐하며 환성을 올려라.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

10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한 팔을

걷어붙이시니 땅끝들이 모두

우리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제2독서 히브 1,1-6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2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3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4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6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복음 요한 1,1-5.9-14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매년 맞이하는 이 성탄을 단순히

하루 쉬는 날로 생각하지 마시고,

주님께서 사랑으로 이 땅에 오신

그 기쁨의 체험을 하실 수 있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어느 마을에 자기밖에 모르는

심술 맞은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자기 뒷마당에

동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는

그날로 철조망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이웃집 고양이가

이 뒷마당에 들어오자 고양이를

죽이겠다고 고래고래 외치기까지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할아버지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런데 정말로 이 고양이가 죽은 것입니다.

그 집 마당에 놓은 쥐약을 고양이가 먹었던

것이지요. 동네의 어른들은 모두

복수하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 고양이를 키우던 꼬마 아이는

훌쩍이며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아마 그 할아버지는 아주 외로운

 분이신 것 같아요.”
실제로 화내는 사람은 자존감이 떨어진

 아주 외로운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자신을 이 세상에 내세울 것이 없어서

목소리를 높이고 화를 낸다는 것이지요.

아이는 할아버지에게서 이 외로움을

 본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도 보는

이 외로움을 어른들은 왜 보지 못했을까요?

복수하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바라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외로움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큰 외로움에 힘들어할 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외로운 이들과

함께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한 처음부터 계셨던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직접 당신의 몸으로 보여주십니다.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사람이 외롭다고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함께 만 있어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면서

행복해합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이 땅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이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서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계시기에 이 세상은 외로운 세상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또 다른 아기 예수님의 모습으로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이때 진정한

성탄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가장 나쁜 사람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다.

(토마스 플러)

여행

예전에 몇몇 신부들과

해외여행을 갔던 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여행사에서

다 해 주는 패키지여행이 아니라,

저희가 일일이 다 알아서 해야 하는

자유여행이었지요. 마침 체코에서

교포 사목을 하는 동창 신부가 있어서

그 친구의 차로 이동해서 몇 나라를

둘러보는 일정을 짰습니다.
너무나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패키지여행이 얼마나 편하고

쉬운 여행인지를 알게 해 주었던

 여행이었지요. 지도를 보면서

찾아가는 여행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좋은 숙소에서 잠을 자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일들이 얼마나 많이

발생하는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고생하면서 여행을 다녀온 뒤에

“다시는 이런 자유여행을 하지 않겠다.”

라고 선언했을까요? 아닙니다.

 “다음에 또 이렇게 가자.”라고 말합니다.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더 기억에

많이 남게 되기 때문이겠지요.
삶이 평탄하기를 바라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평탄하기만 하다면 정말로

재미있을까요? 어쩌면 어렵고 힘든

시간이 많을수록 기억에 많이 남게 되고,

자신의 삶을 더욱더 활기차게 살아가게

해 줍니다. 주님께서도 모든 어려움의

시간은 감수하시고 이 땅에 오셨음을

기억하면서, 쉽고 편안한 길 보다는 어렵고

힘들어도 의미 있는 길을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2천년 전,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던 곳)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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