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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고 사람이신 예수 (요한 1.9-14)|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7 조회수1,824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고 사람이신 예수 (요한 1.9-14)

 

요한복음 19-14

9 말씀이   빛이었다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10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11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12 그러나 그분을 맞아 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13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것이다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아멘

 

피조물들이 가장 행복한 상태가 바로 하느님에 영광을 입고 하느님에 영광에 반응하며 그분에 영광을 찬미하는 상태인 거에요 성경은 그렇게 피조물들에게 막힘없이 영원히 부어지는 하느님에 영광 피조물들에게는 그 영광이 바로 생명력이에요 바로 그 하느님에 영광 피조물들에게 영원히 막힘없이 부어지는 하느님에 영광 그것을 바라크 복이라고 한다구요 그게 복이에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복하고는 너무나 다른 거죠 여러분이 알고 있는 복은 한국에 무속신앙에서 나온 것이고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느님으로부터 끊임없이 피조물에게 부어지는 하느님에 영광 하느님에 생명력 그걸 바라크 복이라고 한다 말입니다 어리석은 이 땅에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 복은 자기에 소원이 이루어지고 기대치 않았던 이득이 생기고 일취월장 승승장구 만사형통등으로 삶이 윤택해지는 거 그것을 복이라고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경에 복은 그것과는 아주 사뭇 달라요 그렇게 진짜 복을 받은 사람들은 잘 이제 연결을 하셔야 되요 진짜 그 복을 이제 받은 사람들은 하느님께 순종을 하게 되요 이제 그들은 하느님에 은혜로 원래에 창조에 목적으로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복받은 자라고 하잖아요 원래 하느님이 의도하신 창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그들에게 부어졌던 복이 다시 이제 부어지게 되면 자 그 복은 하나님에 발산적 영광이 입혀지는 것이며 다시 복을 받게 된 성도는 그 발산적인 영광인 복에 대해서 반응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제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을 추구하게 되는 거에요 이제 복이 부어지게 됐으니까 그동안 막혀 있던 자들은 그 하느님에 말씀에 순종을 못하게 되죠 하느님에 속성, 성품, 영광을 반사해 내지 못한다 말이에요 뭐가 부어져야 반사를 하죠 그런데 이제 그게 막힌게 뚤렸단 말이에요 어떤 무리에게 그게 하느님에 백성이란 말이죠 그래서 그 복 바라크가 부어진다 말이죠 그래서 그들은 이제 하느님에 영광을 반사하게 된다 말이죠 그게 바로 순종이라는 거에요 어렵지 않죠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할지라도 그 상황과 환경에 만족해요 자족한다구요 왜 이제는 하느님께 내가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복은 뭐에요 내가원하는 대로 내 상황과 환경이 바꿔 주는게 복이잖아요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진짜 복을 받은 자들은 하느님 앞에 순종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하느님이 허락하신 그 상황에 자족한다 말이죠 그러니까 복받은 자들은 세상이 말하는 그 복받은 자들은 진짜 복받은 자들이 아닌 거에요 여러분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복받은 자들은 자족하게 되어 있어요

그리고 두번째로 복받은 사람들은 그들에 삶 속에서 하느님에 성품을 나타내며 살게 되죠 죄인들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사랑과 온유와 자비와 양선과 같은 하느님에 성품을 자신의 삶 속에서 나타내며 살게 되는 거에요 그게 복받은 사람들에 모습인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복은 사랑이고 뭐고 자비고 뭐고 양선이고 뭐고 이런거 말고 그냥 내가 원하는게 다 이루어지는게 복인데 성경이 말하는 복을 받은 사람들은 내가 손해를 보고 사랑과 온유와 자비로 남들에게 오히려 배풀어 주는거 그걸 복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잘못알고 있는 거에요 이건 누구나 다 알아야 되는 건데 그동안 여러분이 몰랐던 것이지 몰라도 되는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모른다고 나도 몰라도 되는거 아닙니다 여러분 반드시 이런 개념들은 여러분이 정리를 하고 계셔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니깐요

성경에 나오는 그 수많은 복 그걸 여태까지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고 계셨냐구요 거기에서 하나 틀어지게 되면 나머지 부분들이 전부 엉뚱하게 해석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개념들을 잘 정리를 하고 계셔야 된다 말이에요 그 참복에 회복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루어진거라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렇게 하느님에 영광을 고스란히 담고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요한은 참빛 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본문 9절 보세요 말씀이   빛이었다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헬라어에는요 참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가 두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온 알레떼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알레떼스라는 단어에요 몰라도 괜찮아요 그러나 개념이 어떻게 틀린지 잘 들어보세요 알레떼스는 거짓과 반대되는 개념에 참이에요 그러니까 거짓말에 반대말을 참말이야 할때 거기서 참은 알레떼스죠 반면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알레띠노스는요 부분적인 것과 대조되는 개념에 참이에요 무슨 얘긴가 하냐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 참빛은 거짓 빛과 대조되는 개념에 참빛이 아니라 부분적인 것과 대조되는 온전한 빛이란 뜻이란 말이죠 다른 거에요 거짓과 반대되는 참과 부분적인 것과 반대되는 참과는 다른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오늘 그 빛은 온전한 빛 이렇게 해석하는게 더 맞죠 그 말은 하느님은 온전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도 이 세상에 하느님에 영광 그 빛을 부분적으로나마 계속 비추고 계셨다라는 뜻이죠 온전한 빛이니까 온전한 빛 말고 온전하지 않은 부분적인 빛이 있었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 말은 이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중에 형이상학적인 것이나 형이하학적인 것 모든 것 다 포함해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 그 모든 것 중에 하느님에 허락없이 존재하는 게 없습니다 그러면 하느님이 악한걸 만들어 낼 수 없죠

그래서 디모테오서 44절에 뭐라 그래요 4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  좋은 것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죠 그런데 왜 이렇게 악한게 많죠 우리가 그걸 감사함으로 받지 않고 나에 탐욕을 위해 사용하기 때문에 악한게 많은거지 이세상에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것들은 전부다 선한 것들이란 말이죠 그런 것들이 바로 빛인 거에요 원래 그러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그렇게 하느님에 빛이 부분적으로나마 조금씩 깃들여져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부분적인 것만 쫓아가게 되면 안된다는 거죠 온전한 빛 그 온전한 빛을 쫓아야만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거에요 참행복을 얻을 수 있는 거죠 바로 그 온전한 빛이 왔다는 거죠 과학 철학 풍요로운 삶 이런것도 사실 빛이라구요 이거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된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엉뚱하게 사용해서 그런거에요 인터넷 좋은거죠 음악 좋은거죠 미술 얼마나 좋습니까 여러분 그런데 이게 우리가 우리에 탐욕과 욕정을 위해 쓰기 때문에 이게 정말 인간들을 자꾸 파괴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부분적인 빛이라는 거에요

오늘 본문 9절은 바로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온전한 빛이 담겨 있다라고 그렇게 선언하고 있는 거에요 그런데 10절을 보시면 그 빛을 세상이 알아보지 못했다라고 그래요 온전한 빛으로 왔는데 그 빛을 세상이 알아보지 못했다 그럽니다 10절 보세요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 잘 보시면 그 구절속에서 하느님에 참담한 심경을 읽으실 수가 있어요 세상이 자기를 창조한 창조주를 잊어버린 상태가 되었다라는 뜻이에요

예수님이 자기가 만들어 놓으신 이 땅에 오셨는데 아무도 자기를 못알아 보는 거에요 이 땅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위해서 지어진 땅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고 우리 골로사이서 115-16절 볼까요 15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16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왕권과 주권과 권세와 세력의 여러 천신들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모두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만물은 그분을 통해서 그리고 그분을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예수를 위하여 그러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해서 사시면 안된다니깐요 여러분은 예수를 위하여 창조된 거에요 이거 깨닫고 가는 거에요 우리가 지금은 이 땅에서 타락한 죄인들이 자기가 하느님인줄 알고 거만하고 교만하게 살다가고 있는데 아니고 너희들은 그 자리에서 빨리 내려와야 되고 하느님이 그 자리에 올라 앉으셔야 된다라는걸 우리가 이 땅에서 깨닫고 가는 거에요 예수가 창조주시고 나는 그냥 피조물 예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라는걸 깨닫고 가는 거에요 그게 아주 행복한 상태라니깐요 그런데 그 천지만물이 그 창조주를 잊어 버렸어요 그분을 위해서 지어진 그리고 그분에 의해서 지어진 천지만물이 인간들이 그 창조자를 잊어 버린거에요 왕이 자기백성에게 왔는데 백성이 못알아 본거에요

이 땅을 창조한 인간을 창조한 모든 피조물을 창조한 창조주가 이 땅에 오셨는데 인간들이 그분을 못알아 보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아서 아주 죽여 버렸어요 그게 예수 그리스도에 죽음인 거에요 그런 것을 한번이라도 좀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에 만일 그 창조주가 오신다면 이 세상은 그 창조주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어떤 아저씨가 갑자가 돌아다니면서 내가 하느님에 아들이야 회개해라 천국이 가까웠다 도끼가 이미 너희에 나무 밑둥에 꽃혀 있다 뭐 이렇게 얘기하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세요 세상사람들이 그 사람보고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미친놈이라고 그러겠죠? 여러분 왜 세상이 빛이 오면은 그렇게 못알아 볼까요

지금 이 땅에 예수님이 다시 오셔도 이 세상은 못알아 봐요 왜 그럴까요  

일단 첫번째로 어두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 자기에 어두움을 드러내는 빛을 거부한다구요 싫어 한다구요 자기에게 인식되기 전에 거부해 버리기 때문에 인식 자체가 안되 버리는 거에요 그게 어두운 세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못알아 보는 거에요

요한복음 319절 보세요 19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실이 악하여 빛보다 어둠을  사랑했다이것이 벌써 죄인으로 판결받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20 과연 악한 일을 일삼는 자는 누구나 자기 죄상이 드러날까  빛을 미워하고 멀리한다

예 정확하게 묘사가 되어 있죠 어두움을 좋아하는 자들은 절대 빛 가까이 갈려고 하지 않아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예수님은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영으로 세상에 빛을 비추셨죠 그게 베드로전서 3장에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나 그 때마다 세상은 똑같은 반응을 보였어요 예수님께 보인 반응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어요

예레미야 4410-19절 보세요 10 너희가 이날까지도 두려워할 줄을 몰라 뉘우치지 않는구나너희와 너희 조상 앞에 세운 나의 법과 규정을 따라 살지 않는구나11 그러므로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선언한다나는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기로 결단하였다모든 유다인을 멸종시키기로 하였다12 살아 남은 유다인으로서 에집트에 와서 타향살이하기로 작정한 자들을 여기에서 모두 죽이기로 하였다그들은 칼에 맞아 죽거나 굶어 죽으리라위아래   없이 칼에 맞아 죽거나 굶어 죽으리라너희는 참혹한 천벌을 받아 조소거리가 되어 치욕을 삼키는 신세가 되리라13 예루살렘 주민에게 벌을 내렸듯이 에집트에 와서 사는 자들에게도 벌을 내려 칼에 맞아 죽고 굶어 죽고 염병에 걸려 죽게 하리라14 남은 유다인으로서 타향살이하러 에집트에 들어  자는 아무도  난을 벗어나 살아 남지 못하리라본국 유다에 돌아  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겠지만 돌아 가지 못하리라난을 피하여 돌아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15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여인들과 그것을 알고 있던 남편들에집트의 남북에 사는 모든 교포들  회중이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였다16 '당신이 야훼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을 우리는 듣지 않겠소17 우리는 한번  말을 어길 수가 없소하늘의 여왕께 약속한 대로 분향하고 제주를 바쳐야 하겠소우리는 조상들과 왕들과 고관들과 함께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겠소  우리는 아무런 재앙도 당하지 않고 배불리 먹으며  지냈단 말이오18 그런데 하늘 여왕께 분향하고 제주 바치기를 그만두자우리는 모두 궁해지다가 마침내 칼에 맞아 죽고 굶어 죽게 되었소19 우리가 하늘의 여왕께 분향하고 제주를 바칠 어찌 남편들 모르게 하였겠소여왕의 신상을 박아 제병을 굽거나 제주를 따라 바칠 어찌 남편들 모르게 하였겠소?'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땅 바트로스에 하는 모든 백성에 큰 무리가 예레미야가 죄를 막 지적하니까 그들이 뭐라고 그랬냐하면 '당신이 야훼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을 우리는 듣지 않겠소17 우리는 한번  말을 어길 수가 없소하늘의 여왕께 약속한 대로 분향하고 제주를 바쳐야 하겠소우리는 조상들과 왕들과 고관들과 함께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겠소  우리는 아무런 재앙도 당하지 않고 배불리 먹으며  지냈단 말이오 이거 보세요 오히려 우상을 섬길때는 우리가 복받고 잘먹고 잘살았는데 그거 안했더니 이 꼴이 됐어 그러니까 너는 조용해 니 말은 이제 안들을거야 너는 조용해 아주 니 얘기만 들으면은 짜증나 죽겠어 그냥 우리는 우상에게 다시 돌아갈거야 이게 세상이란 말이에요 18 하늘 여왕께 분향하고 제주 바치기를 그만두자우리는 모두 궁해지다가 마침내 칼에 맞아 죽고 굶어 죽게 되었소. 하며 아모스에게는 어떻게 했는지 보세요

아모스 77-9 야훼께서 나에게 다시 보여 주신 광경은 이런 것이었다누군가 돌담 옆에다 다림줄을 대어 보고 있었다8   야훼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아모스야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다림줄이 보인다고 대답하자야훼께서 말씀하셨다. ' 이제 다림줄을  백성 이스라엘 한가운데 드리웠다 이상 이스라엘을 용서할  없다9 이사악의 산당은 쑥밭이 되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폐허가 되리라나는 칼을 들어 여로보암의 나라를 치리라.'  11-13 11 임금님께서는 칼에 맞아 돌아 가시겠고이스라엘 백성은 사로잡혀 포로의 신세가 되어  땅을 떠나리라고 떠들어 댑니다.' 12 그리고 나서 아마지야는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 선견자야당장 여기를 떠나 유다 나라로 사라져라거기 가서나 예언자 노릇을 하며 밥을 벌어 먹어라13 다시는 하느님을 팔아 베델에서 입을 열지 말아라여기는 왕의 성소요 왕실 성전이다.' 

그랬더니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세요 듣기 싫어 죽겠다는 거에요 아 그놈 말좀 못하게 해주세요 듣기싫어 죽겠어요 그러는 거에요 내 곁에는 다시 오지 말고 저기 멀리 가서 거기서 예언해라 그러는 거죠 이렇게 어두움은 빛이 비추면 거부하고 쫓아낸다구요 그러니까 인식되기 전에 거부하고 쫓아내 버리기 때문에 못알아 보는 것이죠 그래서 설교자가 사람들에 죄를 자꾸 지적하면 말씀은 인간에 죄를 폭로시켜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죄가 지적당할 수 밖에 없는 거거든요 말씀이 제대로 전해지면 그래 여러분은 매일 말씀 앞에서 자기를 폭로당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그런거를 성도들은 회개로 끌고 가는데 그렇지 못한 자들은 지겨워 죽겠네 또 저소리야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데 말씀은 인간을 계속해서 까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들려질 수가 없어요 그들은 거부한다구요 이제 고만좀 해 듣기 싫어 그런다 말이죠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세상은 그 빛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그들에 눈이 아예 멀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못보는 거죠

고린도후서 43-4절 보세요 3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가리워졌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나 가리워졌을 것입니다4 그들이 믿지 않는 것은  세상의 악신이 그들의 마음을 어둡게 했기 때문입니다그들은 하느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에 형상이니라 마귀가 요렇게 가려놓고 있단 말이죠 그래서 못보는 거에요 인식을 못하는 거죠  

고린도전서 213-1413 우리는  은총의 선물을 전하는  있어서도 인간이 가르쳐 주는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합니다이렇게 우리는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합니다14 그러나 영적이 아닌 사람은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신 것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그런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게만 보입니다그리고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있으므로 그런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합니다.

이렇게 타락한 죄인들은 빛을 볼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만일 본다고 해도 그 빛을 밟아서 꺼버릴 수 밖에 없는 추악한 상태로 타락을 해버렸기 때문에 참빛을 영접할 수가 없는 거죠 본문 11절에 그 내용이 그대로 나오죠 11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포도원 농부에 비유가 나오죠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울타리를 두루고 농부들에게 세를 준뒤 타국으로 갔어요 그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 열매가 나올때 쯤 되어서 포도 열매를 받기 위해서 종들을 그 포도원으로 보내죠 그랬더니 그 농부들이 어떻게 했어요 때려 죽였어요 그래서 아들을 보냈더니 아들도 때려 죽여갖고 울타리 밖으로 던져 버렸죠 그게 바로 이 이야기인 거에요 그게 세상인 거에요 아이 그 까짓거 좀 주지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농부들은 그 주인에게 줄 열매를 못맺어서 못준 거에요 그래서 죽인 것입니다 그게 세상이라는 거에요

세상은 절대 자기들 스스로 하느님께 드릴만한 어떤 것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아들이 오면 죽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수많은 선견자들이 와서 외쳤을때 그들이 그를 죽일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에 말씀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땅에 옴에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라는 내용을 예수님에 언어로 다시 풀어서 설명해 주신 것이 바로 포도원과 농부에 비유인 거에요 이렇게 죄인들은 절대 참빛이신 하느님에 아들을 알아보지도 영접하지도 못해요 그런데 이 세상속에 참빛을 알아보고 영접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래요 전혀 불가능한 상태에서 이제 그 빛을 알아보고 영접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되었어요 어떤 일로 말미암아

12-13절 보세요 12 그러나 그분을 맞아 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13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것이다

여러분 왜 세상 사람들이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이 그 빛을 영접을 못할까요 영접이라는 것은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내 안에 뭔가 가득차 있을때 받아들릴 수가 없어요.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내 안에 내가 가득차 있을때는 영접이 안되는 거에요 내 인생의 중심에서 내가 내려왔을때 비로소 내 안이 비워지게 되고 하느님을 영접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사람들이 참 빛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는 것은 오직 하느님에 선택과 하느님에 일하심에서만 비롯되는 것이지 인간 쪽에서 어떤 도모나 노력도 거기에 기여하거나 보태질 수없다고 성경은 지금 선언하고 있어요 오늘 본문 13절에서는 대표적인 인간 쪽에서의 도모를 혈통 육정 사람에 뜻 이렇게 기술하고 있어요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에 후손이라는 그 혈통을 자기들에 구원에 근거로 삼고 있었잖아요 그 혈통이라고 번역이 된 그 헬라어 하이마톤은 피 혈연을 의미하는 하이마에 복수소유격이에요 그러니까 육체적인 혈연관계를 의미하는 거에요 타락한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참 빛을 보고 그 빛을 영접하는데에 육체적 혈연관계는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는 거에요

 

유대에 선생이였고 관원이였던 니고데모 아시죠 여러분 그 니고데모는 부자였고 벼슬아치였고 랍비였어요 선생님이였어요 성경을 달달 외우던 분이였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그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선생님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그랬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뭐라고 얘기했죠 아 넌 참 공부도 많이 했구나 그리고 남들은 참 잘 가르쳤다 그리고 너는 참 성실히 살았구나 부자가 됐구나 그러니까 거기다가 조금만 보태면 구원을 받을 수 있어 그러지 않았다니깐요 뭐라고 그랬어요 스크렙 에브리띵 유브 던 니고데무스 그랬어요 다 갖다 버려 니가 이루어낸건 다 갖다 버려 그랬대니깐요 하나도 도움 안되니까 스크렙 에브리띵 유브던 니고데모스 그랬어요 다 갖다 버려 니고데모가 갖고 있던 그거 그게 바로 육정인 거에요 델레마코스 사이코스 절대 그런 것으로도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사람의 뜻 델레마토스 안드로스 이거는 절대자에게 도달할려고 하는 인간에 이성적은 노력이나 수양 율법준수 이런걸 통칭하는 거에요 그게 텔레마토스 안드로스에요

성철스님같은 사람 몇년동안 정말 장좌불와 눞지 않고 가만히 가부좌하고 앉아만 있었던 거에요 화장실은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몇년을 8년인가 9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니깐요 진리를 위해 고생은 하셨지만 그걸로는 절대 구원 못 받아요 18년동안을 철조망을 치고 사람을 만나지 않았어요 말을 안했어요 사람이 말을 안하면 미쳐요 왜 감옥에서 독방이 무서운줄 아세요 사람이 누구와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말도 안하고 그렇게 살면 사람이 미친다니깐요 그런데 진리를 찾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했다구요 그런데 그건 꽝이래는 거죠 그게 사람의 뜻인 거에요 델레마토스 안드로스 간디같은 사람 정말 경건하고 청렴하게 살려고 밥도 요만큼씩 먹고 거짓말 안하고 정말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지 않았습니까 그런 노력들이 델레마토스 안드로스인 거에요 그걸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께로 나야 하느님에 뜻으로만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야고보서 118절 가보세요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그래서 우리는 모든 피조물의  열매가  것입니다

하느님 자신의 뜻을 쫓아 우리의 뜻이 아니래니깐요 사람의 뜻이 아니에요

요한일서 31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십시오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자녀입니다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거라구요 아버지에 뜻에 따라 우리에 노력이 거기에 요만큼도 보테질수가 없어요

에페소서 155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에 뜻대로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뜻이에요 이거는요 우리가 어떻게 그 보좌를 흔들 수 없다 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좌를 흔드는 기도 말은 좋은데 절대 인간에 힘으로 그 보좌가 흔들리지 않아요 뭐 고3학생을 위한100일기도를 실시한다고 해도 하느님에 보좌는 절대 흔들리지 않아요 여러분이 하느님의 뜻을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서 하느님의 뜻이 바뀌면 그게 무슨 하느님입니까 그런데도 청원기도라고 성당 미사시간때마다 신자들의 기도를 올리고 있어요.

옛날에 부르스 올마이티 보셨잖아요 이 사람이 그냥 너무 귀찮으니까 그 많은 기도 어떻게 일일이 응답을 해 그래서 컴퓨터에 넣고 예스 착 클릭하니까 세상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 버려 하느님이 사람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게 되면 그렇게 되는 거에요 이나마 세상이 이렇게 움직여 가는 것은 하느님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끌고 가기 때문에 이 정도로 가는 것이지 여러분이 기도해서 되는거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절대 하느님에 보좌를 흔드는 기도 그런거 할 수 없어요

로마서 914-16절 보세요 14 그렇다고 하느님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말할  있겠습니까절대로 그럴  없습니다15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자비를 베풀고 싶은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하고 싶은 사람에게 동정한다 말씀하셨듯이 16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받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정확히 나오죠 너희들이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달음박질 한다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야 오직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이야성경은 계속해서 그렇게 하느님에 은혜로 주님을 영접하게 된 자들은 하느님께서 권세를 주신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본문 12절 다시 한번 보세요 그분을 맞아 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여러분 이렇게 단어 하나하나를 다 설명해 드리고 가는데 그런데도 나중에 요한복음을 보고 딴 얘기하면 안돼요. ㅎㅎㅎ

이 특권이라고 번역이 된 이 단어가 엑수시아에요 헬라어에는 권세 파워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가 여러개 있어요 먼저 크라토스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에서 데모크라시 아리스토 크라시 띠오 크라시 뭐 모노 크라시 이런 단어들이 파생된 거에요 그게 다 뭡니까 신정정치 독제정치 뭐 귀족정치 민주정치 이런 거죠 그러니까 크라토스가 뭐겠어요 정치적인 힘 정치적 권세 통치에 권세 이런 걸 이야기하는 거에요 크라토스가 , 그리고 두번째로 듀나미스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말은 폭발적이고 이적적인 능력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이 단어에서 다이나믹 다이나마이트 뭐 이런 단어가 나온거죠 그러니까 힘 권세 권위 등으로 번역이 되는데 이거는 폭발적인 기적적인 능력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성도가 되면 이런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진다고 착각한다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도에게 주어진 그 권세는 엑수시아란 말이에요 그 엑수시아는 무슨 뜻이냐하면은 어떤 이적적인 능력이나 힘 혹은 정치적 권세 뭐 이런 걸 말하는게 아니라 신분적 격상으로 말미암아 주어지게 되는 권위를 이야기하는 거에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여러분에게 하느님에 자녀라는 그런 권위가 주어진다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엑수시아라는 단어는 책임과 의무가 수반되는 단어라는 거에요 권위의식 말고 권위가 진짜 있으면 그 사람은 그 권위에 합당한 삶을 살야야 되잖아요

국무총리가 된 풀빵장수가 국무총리가 되면서 권위가 생기죠 권위의식이 아니라 그 사람은 풀빵장수에서 국무총리가 됨으로 해서 국무총리라는 권위가 생긴다구요 그런데 이 사람이 여전히 풀빵가게 옆에 가갖고 야 너 계속 여기서 일할거야 뭐 이러면서 뿔빵장수들하고 계속 싸우고 있으면 그 사람은 권위가 있는게 아니라구요 너 내가 누군줄 알어 나 국무총리야 이건 권위의식이라고 하는 거죠 권위라는건 그 사람에 그 신분에 맞는 삶을 밖으로 내 보여지는거 그걸 권위라고 한다 말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그 권위가 주어졌대니깐요 영접하는자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에게는 하느님에 자녀가 되는 엑수시아 권위가 주어진 거지 듀나미스나 크라토스가 주어진게 아니란 말이에요 이걸 잘 구별하고 계셔야 되요 여러분에게 그런 어떤 세상에 나가서 자랑할 수 있는 힘과 권세 정치적 권세 이적적인 능력 이런 거 주어진거 아니란 말이에요 물론 필요에 따라 성도들에게 듀나미스나 크라토스가 주어질 때가 있어요 그러나 일차적으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건 엑수시아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굉장히 골치아픈 거에요 책임과 의무가 쫓아다니는 엑수시아기 때문에 굉장히 골치아픈 거에요 여러분 그래도 내가 권위가 있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 권위에 합당한 삶을 열심히 한번 살아 보는 거죠 그렇게 우리 죄인들에게 빛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거에요

14절 보세요 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이 구절에서 보았다라고 번역이 된 떼아오마이는 보다 지각하다 인식하다 관찰하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앞에 나온 단어들 그들이 영접하지 아니하고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다 이 단어와 완전히 반대되는 단어죠 어떤 무리가 이제 보는 자들이 인식하는 자들이 지각하는 자들이 생겨났다라는 거에요 분명히 하느님에 영광을 보는 우리라고 하는 어떤 무리가 생겨났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에요 우리가 그 영광을 보았다 그러잖아요 보았다 떼아오마이 그러잖아요 본문 14절에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에서 계셨다 스케노라는 이 단어는 장막을 치다 텐트를 치다 회막을 치다 이런 뜻이죠 그러니까 직역을 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회막을 두르셨다 이런 뜻인 거에요 직역을 하면 회막 장막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성막이에요 왜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것을 회막을 치다 장막을 치다 성막을 치다 이런 단어를 써서 표현을 할까요? 그건 구약의 성막이 바로 예수를 가리키고 있었다라는 뜻이죠 그래서 예수가 우리 가운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라는걸 회막을 치다 스케노 장막을 치다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거에요

회막은 항상 이스라엘 진영에 중심에 있었죠 회막 동편에 유다 잇사갈 즈블론 지파가 있었고요 남쪽에는 르우벤 시므온 갓 지파가 있었어요 그리고 회막을 이렇게 삥 둘려서 레위지파가 진을 쳤어요 그리고 회막 서쪽에는 에브라임 므나세 베냐민 지파가 있었고요 북쪽에는 언제나 단 아셀 납달리 지파가 진을 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회막을 딱 중심에다 두고 레위지파가 싸고 나머지 자파가 또 빙 둘러 싼 거죠 그 말은 무슨 뜻일까요 교회에 중심은 이스라엘이 교회니까 교회를 상징하는 무리니까 교회의 중심은 누구다 예수 그리스도다 라는 거에요 그리고 회막에는 모세의 율법이 간직되어 있던 곳이죠 언약궤 안에 회막안에 가장 중요한게 언약궤잖아요 그 안에 뭐가 있었어요 모세의 율법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뭐다 그 자신이 바로 율법이라는 거에요 그 분이 사신 삶의 내용이 율법이였어요 하느님에 율법

시편 408절 보세요 8 나의 하느님당신의 법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기뻐합니다

율법이라는건 하느님에 성품인 거에요 하느님과 언약관계를 맺고 있는 어떤 존재가 그 언약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 그게 바로 율법이에요 그러니까 하느님과 언약관계에서 떨어진 사람은 어떻게 율법을 지킬 수 있어요 없어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지만 그건 율법을 지키는게 아닌 거에요 율법이라는건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하느님과 언약관계에 있는 어떤 존재가 그 언약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이 율법인 거에요 그러니까 하느님이 요구하는 삶 그러니까 하느님에 삶 하느님은 이렇게 사셔 라는 걸 보여주는게 율법인 거에요 그러니까 너희들도 그렇게 살아주렴 이게 율법이 우리에게 주어진 거에요 그래서 율법은 나쁜게 아니에요 그래서 바오로 서신에 보면 하느님에 율법 외에 또 한 가 나타났다 그러죠 그러니까 율법이 뭐라는 거에요 律法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가 뭐라 그랬어요 네페시가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관계가 요구하는 삶을 아주 충실하게 살아내는 거 그리고 이 상대방이 언약관계에서 떨어져 나갔을 때 그를 다시 이 관계로 회복시켜 들어오는걸 이걸 의로운 행위라고 이야기하죠  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하느님과의 언약관계 안에서 항상 생각해야 되는 거라 말이에요 그래서 하느님이 의로우시다 하는건 이제 다 죽어버려야 될 자들을 하느님이 언약관계로 끌어 들여오는거 그걸 의롭다라고 이야기하는 거고 그렇게 끌려 들어와서 하느님과 언약관계 속에서 이제 그 관계가 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살아내는 자들을 의롭다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의가 전가됐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의로운 자가 되었다라는 거에요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여러분이 잘 살고 있어서 의인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인제 하느님에 언약 안으로 끌려 들어왔다 라는 거에요 하느님에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그래서 여러분이 의인이 된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율법은 하느님에 성품인 거에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율법이다 이야기하는 거에요

요한복음 829절 보세요 29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로운 삶 그 율법에 삶 그 삶을 예수님은 그분이 하느님이 셨으니까 그대로 살아내셨단 말이에요 그분이 율법 자체였다니깐요 그래서 예수님이 사람들 사이에 계신거를 회막이 율법을 갖고 있는 그 회막이 그 사람들에게 둘려 처졌다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거에요 그리고 이스라엘의 회막은 하느님이 임재하시는 처소였죠 그 회막에 그 언약궤 위에는 항상 그 쉐키나의 영광이 있었어요 그 쉐키나이라고도 번역을 하잖아요 그래서 예수님을 빛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리고 그분이 바로 하느님이셨으니까 예수님 자신이 회막인거에요 그리고 회막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시는 곳이였어요 예수님은 말씀이잖아요 하느님을 설명하러 오신 하느님에 말씀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회막은 제사가 드려지는 곳이였죠 예수님 자신이 제사장이였고 자신이 제물이셨어요 제사를 드리러 이 땅에 오신 거죠 그러니까 회막이 담고 있는 그 내용은 바로 그 예수님을 설명한 거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를 해갖고 제사만 잘 드리면 되는 줄 알고 그 제사 드리는 그 행위로 구원에 이르려 했다라는 것이죠 그건 잘못된 거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오시니까 이제 성전도 싹 파괴되어서 없어져 버리고 율법도 이제 완성이 되고 그렇게 된거 아닙니까? 예수 안에서 전부 완성이 되는 거에요 자 왜 예수께서 오시는 것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성막을 치다 이렇게 표현했는지 이제 아시겠죠? 그럼 마지막으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육신이 되어서 오셨어야 했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서 96절 보세요 6 다윗의 왕좌에 앉아 주권을 행사하여  국권을 강대하게 하고 끝없는 평화를 이루며  나라를 법과 정의 위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모든 일은 만군의 야훼께서 정열을 쏟으시어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이옵니다

예수님은 그 아기는 바로 하느님이다 평화의 왕이다 그래요 그리고 주님께서도 자신이 하느님에 아들이라는 말씀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으셨지만 내가 하느님에 아들이다 그러면 그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기다려 왔으니까 당장 어떻게 했겠어요 로마하고 전쟁하자 그랬을거 아닙니까? 다 죽었죠. 그러니까 내가 하느님에 아들이야 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는 안하신 거에요 그러나 계속적으로 암시는 하셨단 말입니다

요한복음 517-23절보세요 17 그러나 예수깨서는 그들에게 ' 아버지께서 언제나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18  때문에 유다인들은 예수를 죽이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예수께서 안식일법을 어기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하시며 자기를 하느님과 같다고 하셨기 때문이다19 그래서 예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들어 두어라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뿐이지 무슨 일이나 마음대로할 수는 없다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아들도  따름이다20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친히 하시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그뿐만 아니라 아들을 시켜 이보다  큰일도 보여 주실 것이다21 그것을 보면 너희는 놀랄 것이다아버지께서 죽은 이들을 일으켜 다시 살리시듯이 아들도 살리고 싶은 사람들은 살릴 것이다22 또한 아버지께서는 친히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권한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셔서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아들도 존경하게 하셨다23 아들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도 존경하지 않는다.' 

여기에 보면 주님께서 당시 고대 사회에 가업계승을 비유하셔서 당신께서 하느님에 친자이심을 암시를 하고 계세요 19절과 20절 내용은요 당시 고대사회에서 아버지가 장자에게 가업을 계승할때 아버지에 노하우를 장자에게 그대로 전하는 전통을 비유하는 거에요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시 고대사회에서는 장자가 아버지에 가업을 그대로 계승했단 말이에요 그때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가 하는 일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대로 따라하게 시켰다 그래요 그래서 만약에 목수는 대패쓰는 법 끌 쓰는 법 다림줄 쓰는 법 이런 걸 그대로 보여주고 야 밀어봐 대패날은 이렇게 가는 거야 이런 노하우를 그대로 보여주면서 따라하게 했다는 것이죠 빵가게 주인은 밀가루하고 누룩은 요런 비율로 넣어야 맛있어 그리고 시간은 어느 정도 구워야 맞있어 요런 노하우를 직접 보여주면서 이렇게 가르쳐 준거에요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이 고런 유대인들이 척 들으면 알아먹을 그 아버지와 아들에 가업계승에 장면을 요렇게 비유로 써서 그 하느님이 내 아버지기 때문에 나에게 보여주시고 직접 가르쳐 준걸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거야 이렇게 지금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그리고 22절 보시면 아버지가 심판을 나에게 맡기셨다 그런다구요 이 유대인들은 심판은 하느님이 한다고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예수님이 와가지고 아버지가 그 심판을 나에게 맡겼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말은 내가 하느님에 아들이다 라는 암시인 거에요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왜 그렇게 화를 냈을까요 잘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그게 뭐 그렇게 화를 낼 일이에요 당시 고대 중동지방에서 쓰였던 아람어나 헬라어에 누구누구에 아들이라는 이런 개념은 대권자 버금왕 대리인 이런 뜻이에요 일차적으로 이라는 뜻보다는 대권자 이런 뜻이 있었단 말이죠 고대 시대에 서적들을 보면 히브리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권자로 에덴동산을 다스렸던 아담도 하느님에 아들이라고 이렇게 표기한다 말이에요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히브리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느님 아들 그러면 단순히 진짜 하느님에 아들 이라는 뜻도 있지만 하느님으로 부터 어떤 고난을 받아서 그 권세를 그 힘을 갖고 하느님이 통치하라고 시킨 것을 통치하는 자 그 자들도 하느님에 아들이라고 이렇게 이야기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유대인들은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 그 왕들을 사람이지만 그들을 하느님에 아들이라고 불렀어요 신정국가는 하느님이 다스려야 되는데 하느님께서 어떤 왕을 세워서 대신 다스리니까 그들을 하느님에 아들이라고 불렀단 말이에요

시편 27-12절보세요 7 나를 왕으로 세우시며 선포하신 야훼의 칙령을 들어라. '너는  아들 오늘 너를 낳았노라8 나에게 청하여라만방을 너에게 유산으로 주리라 끝에서  끝까지 너의 것이 되리라9 저들을 질그릇 부수듯이 철퇴로 짓부수어라.' 10 왕들아이제 깨달아라세상의 통치자들아정신을 차려라11 경건되이 야훼께 예배드리고 두려워 떨며   아래 꿇어 엎드려라12 자칫하면 불붙는 그의 분노금시라도 터지면 살아 남지 못하리라그분께 몸을 피하는  모두  복되어라

이거 우리가 알다시피 메시아에 대한 계시에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시를 이스라엘의 왕에 대관식때 불렀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왕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에 아들이라고 불렀다구요 여러분 창세기 6장에 보면 노아의 홍수 전에 그 노아에 홍수가 왜 일어났다 라고 이야기를 하죠 하느님에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지가 좋아하는데로 전부 아내를 삼았기 때문에 그게 근거죠 심판의 근거

창세기 61-2절 보세요 1  위에 사람이 불어나면서부터 그들의 딸들이 태어났다2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마음에 드는 대로 아리따운 여자를 골라 아내로 삼았다

여기서 하느님에 아들들을 뭐 천사라고도 이야기하고 하느님에 라인들 그리고 사람의 딸들은 카인에 라인들 뭐 이렇게들 해석을 하는데 그러면 심판에 근거가 하느님에 자녀들에 타락 때문에 심판이 온다로 된다 말이에요 이 노아에 심판은 최후에 심판에 그림자잖아요 그건 말이 안되는 거라 말이죠 그렇다고 천사가 타락했기 때문에 심판이 임한다 이것도 말이 안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하느님에 아들들은 여기서 인간 세상에 왕들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들이 인간 세상에 힘을 상징하는 자 이 세상이 타락을 함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이 그들을 싹 쓸어 버리셨다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죠 이 하느님에 아들 이라는 이 단어가 하느님에 권세를 받아 다스리고 있는 어떤 대권자들 그런 걸 가리키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느님에 아들이라는 것을 그러한 개념으로 갖고 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아들 사상 메시아 사상이라는게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 출발점이 어디냐하면 사무엘하 7장에 나단에 신탁이에요

 

사무엘하 711절부터 14절까지만 볼께요 11 지난날 내가 위정자들을 시켜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던 때와는 달리 너희를 모든 원수에게서 구해 내어 평안하게 하리라 야훼가  왕조를 일으켜 너희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12 네가  만큼  살고 조상들 옆에 누워 잠든 다음 몸에서  자식 하나를 후계자로 삼을 터이니 그가 국권을 튼튼히 하고 13 나에게 집을 지어 바쳐 나의 이름을 빛낼 것이며나는 그의 나라를 영원히 든든하게 다지리라14 내가 친히 그의 아비가 되고 그는  아들이 되리라만일 그가 죄를 지으면 나는 사람이  자식을 매와 채찍으로 징계하듯 치리라

이 나단에 신탁은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서 영원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에요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나단의 신탁을 다윗에 후손인 왕중에서 육적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견고케 할자가 나올 것이라고 믿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솔로몬 이후에 나라가 둘로 갈라지더니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게 망하고 BC 586년에 남유대가 바벨론에게 망해버렸어요 다윗의 후손으로 한 왕이 와서 그 다윗의 왕국을 회복할거라고 찬란한 이 유대인들이 주인이 되는 그 나라를 완성할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홀랑 망해버렸단 말이에요 그래도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요 언젠가는 그 왕이 우리에게 와서 이 땅에다가 그 찬란했던 다윗 왕국을 다시한번 회복시켜 줄거라고 그렇게 철떡같이 믿고 있었던 거에요.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왕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어요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에 부풀었는데요

다니엘서 79절 보세요 9 내가 바라보니 옥좌가 놓이고 태고적부터 계신 이가  위에 앉으셨는데옷은 눈같이 희고 머리털은 양털같이 윤이 났다옥좌에서는 불꽃이 일었고  바퀴에서는 불길이 치솟았으며10  앞으로는 불길이 강물처럼 흘러 나왔다천만 신하들이 떠받들어 모시고 억조창생들이 모시고 섰는데그는 법정을 열고 조서를 펼치셨다

누구에요 이게 하느님이죠 이 구절

11  뿔이 계속하여 외쳐대는 건방진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보고 있자니 짐승은 나의 눈앞에서 처형을 받아 시체가 박살이 나고 타오르는  속에 던져지는 것이었다12 다른 짐승들은 권세는 빼앗겼으나 목숨만은 얼마 동안 부지하도록 버려졌다13 나는 밤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14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마치 나단의 신탁을 그대로 또 여기다가 옮겨 놓은 것 같이 그렇게 보이지 않으세요 그런데 이 다니엘서가 쓰여졌을 때가 북이스라엘과 남유대가 홀랑 다 망했을때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이 이러한 글을 보면서 뭘 기다렸겠어요 인제 야곱으로부터 말미암아 그에 후손으로 구성이 된 이스라엘은 이제 망했으니까 새로운 야곱 새로운 이스라엘이 이제 탄생이 될 것이고 거기에 한 왕이 오셔서 이제 새로운 다윗 왕국에 그 찬란함을 회복한 새로운 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라는 희망을 다시 갖게 된 거에요 이 내용을 보면서 그런데 그말은 맞는 말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1절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이 뭐라 그래요 51 '정말  들어 두어라너희는 하늘이 열려 있는 것과 하느님의 천사들이 하늘과 사람의 아들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게 어디서 나온 것이였어요 베텔에서 야곱의 머리위에서 있었던 일 아닙니까? 예수님이 그 야곱에 자리에다가 자기를 요렇게 리플레이스 시키는 거에요 이제 나로 말미암아 진짜 이스라엘이 이제 탄생할 거야 그거 보여주는 거거든요 그거는 예수로 말미암아 이룩될 영적인 하느님 나라를 말하는건데 이스라엘은 실지로 새로운 야곱이 나타나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창조해서 우리를 잘먹고 잘살게 해줄거야 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그게 민속 메시아 사상 하느님에 아들사상 이라고 불리는 거에요 그게 메시아 사상이긴 메시아 사상인데 엉뚱한 정치적 경제적 힘을 소유한 메시아를 기다렸던 그 메시아 사상을 하느님에 아들 사상을 민속 메시아 사상이라고 불르는 거에요 그건 잘못된 메시아 사상이죠

이렇게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을 창조하실 것을 계속해서 계시하시는데 유대인들은 여전히 지금까지도 다윗에 후손으로 와서 다윗 왕국을 회복할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힘을 가진 왕을 기다리고 있는 거죠 그런데 어디서 못생기고 못난 그런 목수의 아들이 나타나더니 내가 하느님에 아들이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얼마나 열받았겠어요 자기들이 오매불망 오로지 목적은 그 하느님에 아들 그 한 왕이 와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그 찬란한 다윗 왕국에 그 화려함을 회복시켜 줄거라고 기다리고 있는데 왠 허름하고 못생긴 목수의 아들이 와갖고 내가 바로 그 사람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까 이 사람들이 열받은 거에요 그리고는 자기를 가리켜 자꾸 인자라고 불르는 거에요 더 썬 오브 맨 人子 정관사가 붙어 있는 거거든요 그 단어는 그 인자 다니엘서 7장에 그 인자가 바로 나다 라고 자꾸 이야기하는 거에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인자를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 예수님이 인자 더 썬 오브 맨 그게 나다 라고 자꾸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화나는 거에요 이게 내 꿈을 짓밟아도 유분수지 어디서 감히 그 따우 소리를 하고 있어 이렇게 된 거에요 물론 처음에 예수님이 기적을 막 일으키고 오병이어 같은 걸로 사람들을 수만명씩 먹이고 할 때는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쫓아다니면서 왕 삼을려고 했죠 기다렸으니까 여태까지 그 사람을 기다렸던 거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나는 너희들 위해서 온거 아니야 그러면서 죄인들 하고 가서 먹고 마시고 이러고 있단 말이에요 그리고 나는 십자가에 달려서 이제 죽어야 된다는 둥 이런 소리를 하니까 어 저건 아니다 나를 위해서 와야 되는데 날 위해서 안 온거는 하느님에 아들이 아니다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니까 그때부터 때려 죽일려고 하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갔을 때에 사람들이 호산나 호산나 외쳤단 말이죠 그거는 세이브 어스 플리즈 이런 뜻이에요 드디어 왕이 왔어 세이브 어스 플리즈 그래도 마지막까지 혹시나 하고 있었는데 이 양반이 십자가에 달려가지고 그냥 죽어 버리네 혹시 마지막에 막판 뒤집기로 십자가에서 내려와갖고 십자가 뽑아 들고 막 로마군사들 때려 죽일줄 알았더니 그냥 죽어 버렸어 그러니까 전부 침뱉고 돌아간거에요 제자들까지 저거 아니였구나 우리가 기다렸던 그 하느님의 아들 아니였구나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그 사람이 하느님에 아들이든 말든 상관 없어요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는 하느님에 아들사상 그 다윗에 후손으로 와서 다윗 왕국을 재건시켜줄 그 사람을 기다렸던 거라구요 그런데 이 예수님은 진짜 하느님에 아들이셨고 그 다윗 왕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새 하늘과 새땅 그 찬란한 새하늘과 새땅을 주러 오신건데 사람들이 이 땅에 화려함에 목매달고 있으니까 그게 안보인 거에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화려함 여러분을 이 땅에서 행복하게 해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것에 눈을 두고 있는 이상 여러분은 하느님을 절대 볼수가 없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신다 할지라도 여러분 절대 그분을 볼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걸 주겠다고 하는 교회는 뭐냐 말이에요 도대체, 그거 그리스도교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예수께서 그렇게 육신으로 오신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에 대표가 되시고 또 대신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그리고 대표가 되시고 대신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을 다 지키셔야 했기 때문에 인간으로 오신 거에요 그리고 우리가 받을 저주를 다 받아서 죽으셔야 하기 때문에 왜 죄의 삯은 사망이니까 죽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거에요 하느님은 죽지 못하거든요 인간의 몸을 입은 이유는 죽기 위해서 오신 거래니깐요 인쿨루시브 리프리젠터티브내포적 대신이란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를 품에 안고 대신 사신 거에요 그리고 대표로 사신 거에요 그러기 위해선 우리를 대표하기 위해선 우리가 똑같은 사람이여야 된다 말이죠 원숭이를 대표해서 사람이 갈 순 없잖아요 사람을 대표해서 강아지가 갈 순 없으니까 대표라는 건 그 무리와 동류이며 동질인 어떤 것이 대표가 될 수 있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거에요 그리고 예수님이 하느님에 모습으로 그냥 내려오셨다면 죄인들은 그 거룩 앞에서 전부 죽는 거에요 시나이산에서 죄인들이 하느님에 거룩 앞에서 그냥 모조리 돌격하여 신측당해 죽은 것처럼 죽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내려오신 거에요 예수님이 이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첫번째 인간이였던 첫번째 육신이였던 아담이 실패한 것을 하나 하나 전부 회복시키고 가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먹을 수 있었던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이 먹지 말라고 하신 유일한 선악과 까지도 따먹어 버린 아담에 그 실패를 40일을 쫄쫄 굷은 다음에 그럼에도 하느님이 말씀하신 것에 순종하느라 돌로 빵을 안 만들어 먹으신 예수 이렇게 회복시켜 가는 것이죠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타락을 해버린 그 아담의 실패를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십자가는 예수님이 태어나서 부터 순종 순종 순종 순종 순종 순종하고 사시다가 이 순종에 클라이맥스가 십자가에요 순종 그게 십자가인 것입니다 아담이 실패한 걸 이렇게 다 회복시켜갖고 그걸 여러분에게 다 주신 거에요 이렇게 야 인제 니꺼야 다 가져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 뛸듯이 안기쁘냐 말입니다 그 복음을 듣고 또다른 기적이 여러분 삶에 필요하단 말이에요 그 복음이 여러분에게 진짜 이해가 되어 졌다면 여러분에게 왜 또다른 기적이 필요합니까 왜 세상사람이 말하는 그 복이 여러분에게 왜 또 필요하죠 그게 얼마나 엄청난 복이라는걸 우리가 진짜 알고 있다면 그러니까 오늘날 그리스도교가 잘못되었다라는 거에요

성경은 세상이 하느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상태다 그래요 인간이 타락을 하고 이 세상은 저주를 받았어요 땅이 저주를 받았으니까 존재의 근원이 다 저주 받았어요. 초월자인 하느님으로부터 생명력, 하느님의 그 영광 발산적 그 영광이 피조물에게 이렇게 부어지는 상태 이게 저주 안받은 상태잖아요 저주받은 상태는 초월과 피조물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린 거죠 그리고 인간이 초월과 단절되어서 땅에 갖혀 버린게 저주받은 거에요 그러면 이 저주가 풀리기 위해선 이 초월이 이 저주받은 땅에 찾아와야 되는 거에요 왜냐면 땅에 피조물들이 초월로 찾아갈 수가 없으니까 초월이 땅으로 찾아와서 그 초월과 이 땅의 것들과의 단절되었던 것을 연결시켜야 되는 거에요 그래야 이게 회복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한번 보세요 불교나 힌두교 같은 범신론, 범신론은 뭐냐하면 이 땅에 모든 이 우주 만물에 신이 내재되어 있다라고 믿는게 범신론이잖아요 나무도 신 돌도 신 나도 신 그래서 내가 수도를 쌓으면 부처가 되는 거에요 신이 되는 거잖아요 그게 범신론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주가 풀리는게 피조물이 초월과 이제 다시 관계를 맺게 되는게 저주가 풀린 건데 구원인데 그게. 범신론은 초월신이 없어요 모두가 신이에요 그냥 그래서 이 땅에 신이 그냥 내재해 있는 거에요 그런데 초월신은 없어, 인간이 초월과 단절이 되서 땅에 스스로 갖혀 있는게 저주거든요 그런데 이 땅에 함께 갖혀 있는 그 수많은 신이 뭐가 필요 있어요 그게 범신론인 거에요 그래서 범신론은 구원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신론 한번 볼까요 이슬람교가 이신론이죠 신이 피조물을 만들어 놓고 전혀 이 피조세상을 그 어떤 원리로 움직이게 해놓고 자기는 이 피조세상에 전혀 관계를 안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초월자로만 존재하는 거에요 이건 범신론하고 또 완전 반대죠 그래서 그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은 뭔 일만 생기면 인샬라 그러는 거에요 알라의 뜻이다. 알라가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이렇게 굴러가는 거에요 알라는 만들어 놓고 그냥 초월자로만 있는 거에요 구원은 어떻게 해서 있을 수 있다구요 어떻게 해서 이 인간이 스스로 갖혀 있는 이 땅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어요 이 초월하고 연결이 되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초월자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에만 구원이 있는 거에요 그리고 하느님이 아니면 안되는 거에요 그게 그리스도교인 거에요 그래서 초월자이신 예수님이 이제 영원히 육신을 입기로 작정하신 거에요 이런 기적이 있습니까?

무소부재하고 편재하시는 아무것도 부족한 것 없는 그 하느님이 우리 때문에 우리와 같은 육신을 영원히 입기로 그냥 작정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그분은 지금도 육신을 입고 하늘에 계시는 거에요 그게 우리에 신분인 거에요 그런데 그 복음을 듣고도 여러분이 그 앞에 가갖고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에 따귀를 갈기면서 잠깐만 일어놔봐 내가 필요한게 있다니까 아니 당신이 죽은 거는 나에 지금에 삶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거 같해 그러니까 일단 내가 필요한 것좀 줘 내 문제좀 해결해줘 이럴수가 있냐고요 그게 진짜 예수믿는 사람들이 맞아요? 복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맞습니까? 여러분.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전에 하느님이 택해 놓은신 하느님에 백성들을 위해 육신이되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여러분들에게 눈을 뜨게 해주시고 빛을 보게 해주시고 주님을 영접할 수 있게 만들어 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계시며 그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그러는 거에요 은혜가 뭐에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주어진 거 그냥 값을 수도 없는 거에요 그거는요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에요 그 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라는 뜻은 뭘까요 예수가 은혜인 거에요 예수가 해결해 주는 어떤 문제 이게 은혜가 아니라 그 예수가 은혜라니깐요

그런데 오늘날은 그 예수를 이용해서 내 문제가 풀리고 내가 잘 먹고 잘살게 되는걸 은혜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은혜 자체인 이 예수를 아직 모르는 거죠 이게 은혜라는 걸 이분이 온전한 은혜라는 걸 모르는 거에요 그러니까 다른 은혜를 자꾸 찾는 것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그랬다니깐요 충만하다라는 그 단어는 흘러 넘친다는 거에요 계속해서 여러분 안에서 그 은혜가 지금 계속 흘러넘치고 있는데 또 다른 무슨 은혜를 구하고 있냐 말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이제 하느님께서 그렇게까지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시면서 까지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우리는 인제 막살아도 되겠네 그럼요 막살아도 되요 좋으시죠 뭐 그런데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수준이 어느 수준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에 장성한 분량 까지에요 그래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계속 시험지를 내주면서 우리에게 시험보시는 거에요 야 이거 못본다고 절대 너 천국시민에서 탈락되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말고 봐 하느님이 좋은 말로 하시지만 여러분은 최선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이 그 은혜가 뭔지를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개판으로들 사는 거에요 전부 아무것도 안하고 그져 여전히 자기만을 위해서 자기에 욕심만을 위해서 그렇게 살아가는 거에요 이게 그리스도교가 맞겠냐구요

지금까지 들으신걸 잘 생각하시면서 본문을 읽으세요 제가 단어 하나하나 까지 다 설명해 드린 거에요 그러니까 잘 이해가 가셨는지 생각하시면서 읽어 보세요 9절부터 읽겠습니다

9 말씀이   빛이었다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10 말씀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그분을 알아 보지 못하였다11 그분이 자기 나라에 오셨지만 백성들은 그분을 맞아 주지 않았다12 그러나 그분을 맞아 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13 그들은 혈육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것이다14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아멘 다 이해가셨습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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