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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명의 말씀’과의 친교 -충만한 기쁨-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7 조회수2,352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9.12.27.금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 사가 축일, 1요한1,1-4 요한20,2-8 

 

‘생명의 말씀’과의 친교

-충만한 기쁨-  

 

어제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에 이어 오늘은 주님의 애제자, 사랑의 사도 요한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사도 중 유일하게 장수를 누렸던 사도로 파트모스 섬에서의 유배후 에베소 교회에서 사목하시다가 100년경 95세로 선종하셨다 합니다. 에베소 교회 사목현장에 대한 사도의 전설같은 실감나는 묘사를 나눕니다.

 

-‘백발이 성성하고 기력이 쇠한 노사도가 에베소의 강렬한 태양 빛이 쏟아지는 어느 늦여름에 어두침침하고 허름한 지하 예배실에서 힘없이 빙둘러 앉아 있는 에베소 교인들을 향해 한마디 말을 내 뱉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4;7ㄱㄷ,8)

 

그는 에베소 교인들을 권면할 때 마다 온화한 얼굴로 ‘나의 아들들아,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반복했는데, 이에 식상한 에베소 교인들이 “사도님, 왜 똑같은 말씀만 계속 되풀이 하십니까?”라고 그 이유를 물으면, 노 사도는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니까.”라고 말했다 합니다.’-

 

평범하지만 재미있고 실감나는 예화라 인용했습니다.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할 때 저절로 이웃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어제 수도원을 찾았던 자매님이 저에게 "무엇을 좋아하느냐?" 물었습니다.

 

“자매님을 좋아합니다!”

 

이런 비슷한 덕담을 자주 합니다. 빈손으로 찾았던 분들이 미안해 할 때 마다 저는 “형제(자매)님 자체가 최고의 선물입니다!” 주저없이 말합니다. 사실 좋은 분들은 빈손으로 와도 반갑고 기쁩니다. 주님도 그러할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본질은 말씀이니 바로 하나하나가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의 현존이 되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좋아합니다!”

 

이어지는 대답입니다. 사실 좋아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 찾아도 찾을 수 없다가 필요한 단 하나, 주님뿐임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어제는 뜬금없이 죽음도 하나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맡길 수 있는 ‘주님의 품’을 상징하는 수도공동체 형제들이 있기 때문이고 새삼 공동체 형제들에 감사했습니다. 아마 사랑의 사도, 주님의 애제자 요한도 분명 다음의 제 고백에 공감했을 것입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선물의 하루이옵니다.”

 

오늘 요한 1서를 봐도 얼마나 주님을 사랑한 사도 요한인지 사도의 고백이 참으로 실감나게 전달됩니다.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생명이 말씀이, 영원한 생명이 지칭하는 바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예수님 아닌 누구를,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고, 필요로 하겠는지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분은 단 하나 예수님뿐입니다. 바로 이런 영원한 생명,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과의 ‘사랑의 대결(?)’에서도 제가 볼 때 요한의 승리입니다. 사랑 때문에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도달했고, 사랑의 양보로 베드로 입장 후에 무덤에 들어갔고, 이어 빈무덤을 보는 순간 전광석화 주님의 부활을 깨달아 안 요한입니다. 

 

그처럼 예수님을 사랑한 요한이었고 빈무덤을 보는 순간 사랑의 눈이 활짝 열려 주님의 부활을 믿었던 것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그러니 복음의 사랑의 사도 요한은 세 말마디로 요약됩니다. ‘달렸다, 보았다. 믿었다’, 사랑으로 달렸고, 사랑으로 보았고, 사랑으로 믿었던 요한 사도입니다. 이어 사랑의 사도 요한은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의 선포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는 친교임을 천명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참으로 생명의 말씀이신 주님과의 사랑의 친교에 이어 아버지와의 친교, 성인들과의 친교, 함께하는 형제들과의 친교입니다. 사랑하는 주님과의 친교가 참으로 충만한 기쁨의 원천이요, 친교의 교회 안에서 친교의 기쁨을 살아가는 우리들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은 물론 형제들과의 친교를 깊게 하시어 충만한 기쁨의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은 그대로 이런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내리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쏟아진다.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거룩하신 그 이름 찬송하여라.”(시편97,11-12).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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