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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8 조회수2,100 추천수11 반대(1)

어릴 때의 기억입니다. 천호동에 살던 저의 집은 당시 장마로 삶의 터전을 봉천동으로 옮겼습니다. 몇 번 이사 다녔지만, 봉천동은 제가 사제서품을 받을 때까지 살던 동네입니다. 제가 살던 집은 재개발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제가 살던 봉천동은 행정명의 변경으로 중앙동으로 바뀌었습니다. 성당은 모습이 몇 번 바뀌었지만, 예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살던 집과 동네의 이름은 사라지고, 바뀌었지만 봉천동은 제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동네입니다. 근엄하셨던 아버님, 가족들을 사랑으로 돌보셨던 어머니, 생각이 깊었던 큰 형님, 자유로운 영혼의 작은 형님, 아버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여동생이 함께 살았습니다.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다는 낙성대로 놀러 가고, 관악산 계곡으로 수영도 갔습니다. 성당에서 첫영성체 교리를 했고, 주일학교 친구들과 성탄에는 예술제를 준비했습니다.

 

김장철이 되면 어머니는 저와 형을 데리고 시장엘 가셨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꼭 넣고 어머니의 뒤를 졸졸 따라서 시장을 구경했습니다. 늘 추웠고, 어떨 때는 눈도 내렸습니다. 시장 아저씨와 한참 흥정을 한 후에 어머니는 배추와 무를 한 손수레 가득 담고 무척이나 뿌듯해하셨습니다. 손수레를 뒤에서 밀면서 오는 저도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집안 형편이 어려울 때도 시장엘 갔었습니다. 그땐, 겨울바람이 유난히 더 차가웠고, 어머니의 뒤를 따르는 저의 모습도 그렇게 처량했습니다. 늦은 시간 시장이 파할 무렵에 버려졌지만 쓸만한 것들을 얻어온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손수레도 없고 보따리에 메고 왔습니다. 그럴 때는 집에 오는 길도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지만, 그 동네에서 자라고, 어른이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모두 감사할 일이고, 고마운 일입니다. 제가 살던 동네와 가족은 제 삶의 못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유년 시절은 어떠하셨는지요?

 

오늘 교회는 예수, 마리아, 요셉 성가정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났습니다. 시메온은 마리아의 가슴은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아들 예수를 위해서 기도하지만, 늘 걱정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했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품에 안아야 했습니다. 재물, 명예, 권력, 성공이라는 기준으로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을 성가정 축일로 지내는 것은 예수, 마리아, 요셉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나자렛 성가정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성모님은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며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요셉 성인은 남모르게 파혼하려는 마음을 바꾸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고,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가정에 하느님의 뜻이 함께한다면, 하느님의 의로움이 드러난다면 우리의 가정 역시 성가정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모든 추억, 기억, 상상력이 시작되는 성가정 축일입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가정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소중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가족들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가 나이 들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네 힘을 다하여라. 아버지에 대한 효행은 잊혀지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주리라.” “아내 여러분,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주님 안에 사는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 그러다가 그들의 기를 꺾고 맙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비가 오는데, 키 큰 사람하고, 키 작은 사람이 우산 하나만을 가지고 비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키 큰 사람에게 우산의 높이를 맞추면 키 작은 사람이 비를 맞게 되고, 키 작은 사람에게 우산의 높이를 맞추면 키 큰 사람이 비를 맞게 됩니다. 서로가 키가 다른 것에 대해 한탄하거나 탓하면 둘 다 불행해집니다. 또 서로를 탓하다 갈 곳을 못 가게 될 수도 있죠. 해결 방법의 하나는, 키 큰 사람이 키 작은 사람을 업고, 키 작은 사람은 우산을 들면, 비 맞지 않고 갈 곳을 가게 될 뿐만 아니라, 둘이서 서로의 믿음과 나눔의 경험을 창출해 낼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문제는 함께 해결할 수 있고 또 함께 해결하면서 성장의 기회를 얻게도 됩니다.”

기도와 마음을 열어주는 대화, 그리고 신뢰를 통해서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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