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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성가정(聖家庭)·친교의 공동체 건설의 비결은 끊임없는 상호 인내와 지지, 계속되는 용서와 격려!)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29 조회수1,665 추천수5 반대(0) 신고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성가정(聖家庭친교의 공동체 건설의 비결은

끊임없는 상호 인내와 지지, 계속되는 용서와 격려!

인간적인 시각으로 성가정(聖家庭)

구성원 하나하나를 두고 보면 참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지경이었습니다.

도무지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가정,

뭔가 이상한 가정이었지요.

엄밀히 따지면 서로 피 한 방 울

섞이지 않는 남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신비에 쌓여있었고,

성장하면서 가끔씩 보여준 돌출적인

언행들은 마리아와 요셉의 속을

사정없이 뒤집어놓기도 했고,

비수처럼 찌르기도 했습니다.

워낙 신비스러운 성가정이었기에,

구성원 사이에 발생했던 약간의 오해와

그로 인한 긴장들이 복음서 몇군데에

아주 살짝 언급되고 있습니다.

12살 소년 예수의 예루살렘

실종사건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소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 순례 길에

오르셨던 성모님과 요셉은 어느 순간

소년 예수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과 요셉은 장장 사흘간이나

소년 예수를 찾아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곧 찾겠지, 했었는데,

사흘 동안이나 못 찾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마음은

불안해져갔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왜 이렇게 애를

태우는가, 화도 났을 것입니다.

더 시간이 흐르면서 혹시나

유괴된 것은 아닌지,

노예상인들에게 끌려간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떨었을 것입니다.

성모님과 요셉은 중간 중간에

설치된 미아보호소란 미아보호소는

다 들르셨을 것입니다.

다행히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

회당에 있었습니다.

부모의 걱정과는 달리 너무나

태연한 모습으로 율법 교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두븐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었고,

기가 차지도 않았지만,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소년 예수에게 묻습니다.

애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그 상황에서 소년 예수의

반응을 보십시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 모르셨습니까?”

제가 그때 당시 성모님이나

요셉이었다면, 일단 뒤통수 한 대

! 때리고 시작했을 것입니다.

! 아들! 네가 아무리 메시아지만,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될 것 아냐? 엄마한테

잘못했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될덴데,

어디 감히 버릇없이 말대꾸야 말대꾸가!”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속이 많이

상하셨지만 저처럼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행동하셨습니까?

복음사가들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이렇게 성모님과 요셉은 예수님으로 인해

이해하지 못할 상처가 생길 때 마다

그 모든 일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셨던 것입니다.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셨다는 것은

앙심을 품는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 그렇게 행동한다 이거지?

한번 두고 봐! 언젠가 꼭 되갚아주고

말거야가 아니었습니다.

마음 속에 간직하셨다는 말은 일단

인간적인 모든 판단을 보류하겠다는

말입니다. 내 뜻을 접고 하느님의 뜻을

추구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지금은 비록 잘 알지 못하겠지만,

계속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가겠다는 말입니다.

성가정의 구성원 각자 각자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진 노력했습니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 양보하고,

서로 격려하고, 서로 인내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나갔습니다.

상대방으로 인해 미칠 것만 같을 때,

상대방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순간에도 상대방 안에 활동하시는

성령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그렇게

각자의 신앙여정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오늘 이 성가정 축일에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원만한 가정,

원만한 공동체는 절대로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끊임없는

상호 인내와 지지, 계속되는

용서와 격려, 그 결과 이루어지는

가정이 성가정이요 친교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두번 째 독서인 콜로새서를 통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은 너무나

현실적인 동시에 구체적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대 우리 가정 공동체,

수도 공동체에도 유효하며,

말씀 그대로 적용되는 권고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사용하신 표현을

한번 보십시오. 너무 직설적이고

신랄해서 가슴이 뜨끔하기도 하지만,

좀 웃기기도 합니다.

그때 당시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부부간의 갈등은 심각했던가봅니다.

부인을 모질게 몰아붙인 남편들이

많았던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권고합니다.

남편 여러분,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아내를 모질게 대하지 마십시오.”

(콜로새서 319)

오늘날만 자녀들을 들볶는가 했더니,

초대 교회 시대 때도 부모들이

너무 마음이 앞서 자녀들을

들볶기도 했는가 봅니다.

그래서인지 바오로 사도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여러분, 자녀들을 들볶지

마십시오.”(콜로새서 321)

바오로 사도의 권고 말씀은 오늘

우리 가족 구성원들도 꼭 유념해야 할

권고입니다. 입시준비, 취업준비,

맞벌이, 노후 준비 등등으로,

다들 세상살이가 너무 힘겹고

팍팍해지다보니, 서로를 향한

여유가 너무 없습니다. 때로 상대를

너무 들볶거나 모질게 대합니다.

자녀들은 물론 배우자들을 포함해서

어르신들조차 하느님 앞에서는

나약한 어린이 같은 존재들입니다.

초기 양성기에 있는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종신서원을 한 수도자들,

노년기의 수도자들도 하느님 앞에서는

언제나 어린 묘목같은 존재들입니다.

인간 존재는 그 누구나 목숨 다하는

순간까지 성장을 거듭해야만 합니다.

상대방은 우리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천천히 성장합니다.

하루 0.01 밀리미터씩이나

성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방이 하루에

1미터씩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기대치가 크다보니 당연히 실망도

상처도 커져갑니다.

나자렛 성가정 공동체 안에서

예수, 마리아, 요셉 성인께서

서로가 서로를 위해 가장 크게

노력한 덕은 인내의 덕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늘 인내하면서,

늘 기도하면서, 늘 격려하면서,

절대로 들볶지 않고, 모질게

대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해나간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든 공동체 안에

부성애가 가득 담긴 바오로 사도의

권고가 되풀이해서 기억되고 꾸준히

실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콜로새서 312~13)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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