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다볼산에 나타나신 부활하신 예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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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현희 | 작성일2019-12-30 | 조회수1,16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인사를 하시고 강복을 하시며 그들 가운데로 지나가신다. 많은 사람이 울고, 어떤 사람들은 매우 기뻐서 미소짓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매우 큰 평화를 맛보고 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목자들이 마루잠과 마나헨, 스테파노, 니콜라이, 에페소의 요한, 헤르마,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제자들 중 몇몇 사람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가셔서 발을 멈추신다. 예수를 따르려고 아버지의 장례식도 포기한 코라진의 제자와 다른 때 한 번 본일이 있는 다른 제자 한 사람도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쳐다보며 울고 있는 마루잠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으시고 그의 이마에 입맞춤하신 다음 꼭 껴안으신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들에게로 몸을 돌리시고 말씀하신다.
"많기도 하고 얼마 안되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나는 충실한 내 제자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너희들 중 아무개 아무개의 아들들인 어린이들을 치지 않으면 왜 겨우 500명 밖에 안 된단 말이냐?"
"주님, 주님께서 돌아가신지 열 사흘째 되는 날부터 스무째 되는 날 사이에 팔레스티나의 많은 도시에서 여기로 와서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 중의 많은 사람이 주님을 그전에 뵈려고 이런 곳 저런 곳으로 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방금 떠났습니다. 여기 온 사람들은 서로 다른 여러 곳에서 주님을 뵙고 말을 했다고 했는데, 놀라운 일은 모두가 주님이 돌아가신지 열 이틀째 되는 날에 주님을 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들은 선택된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나타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거짓 예언자 중 어떤 사람의 속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말씀을 저기 올리브산에서 그...그전 저녁에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들 중에서 큰 바다 쪽으로나 보즈라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펠라나세레스, 예리고 근처에 있는 산이나 에스드렐론 평야 같은 평야나, 대 헤르몬산이나 벳호론과 벳세메스 같은 곳, 또 야비아 근처나 길르앗 근처 평야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집들이기 때문에 지명도 없는 다른 곳으로 달려가려고 일어나는 사람들을 그 발현들을 믿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너무도 불확실한 발현들이었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보고 말도 했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뵈었고 주님과 같이 식사까지 했다는 말을 사람을 시켜 전해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그들을 말리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저희들과 싸우는 자의 계략이라고 또는 의인들이 하도 주님을 생각한 끝에 주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서 주님을 보고야마는 그런 환영일 것이라고까지 생각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고자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곳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그렇게 되어서 저희들의 수가 삼분의 일로 줄었습니다."
"너희들이 그들을 말린 것은 잘한 일이다. 그들이 와서 너희들에게 내가 그곳에 갔었다고 말한 그곳에 내가 실제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여기 남아서 일치해서 기도하며 나를 기다리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내 말에 순종하기를, 특히 내 봉사자들인 사람들이 내 말을 따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만일 봉사자들이 불복종하기 시작하면 신자들은 어떠하겠느냐? 내 둘레에 있는 너희들은 모두 잘 들어라. 한 조직체가 참으로 활동적이고 건전하려면 그 안에 계급제도가 있어야 한다. 즉 명령하는 사람과 명령을 전달하는 사람과 순종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왕국 정부에서도 그렇고, 우리 히브리인들의 종교에서 부도덕한 종교까지도 포함한 다른 종교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언제든지 우두머리가 한 사람 있고, 그의 사제들이 있고, 사제들의 봉사자들이 있고, 끝으로 신자들이 있다. 대사제가 혼자서는 행동할 수 없고, 왕도 혼자서는 행동할 수 없다. 그리고 이들이 명령하는 것은 순전히 인간적인 우발적 사태나 의식에 관한 형식에 관계되는 것들이다...그렇다. 불행히도 이제부터는 모세가 제정한 종교에서까지도 의식의 형식 존중 밖에 남은 것이 없다. 즉 몸짓이 나타내던 정신이 죽은 지금까지도 같은 몸짓을 계속 행하는 기구의 일련의 동작밖에 남지 않았다. 몸짓의 정신은 영원히 죽었다.
그 몸짓에 생명을 주시던 하느님께서 의식에 가치를 붙여 주시던 분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물러가셨다. 그래서 의식은 몸짓일 뿐,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다. 어떤 서투른 배우도 원형극장의 무대에서 흉내낼 수 있는 몸짓이다. 어떤 종교가 죽어서, 원래는 실제적으로 살아있는 힘이던 것이 요란스러운 외부적인 과장된 태도가 되고, 색칠한 무대장치와 호화로운 옷 뒤에 있는 속이 빈 물건이 되며, 용수철을 작동시키는 열쇠와 같이 정해진 운동을 하는 기계장치의 움직임같이 되는 때에는 불행하다. 용수철도 열쇠도 그것들이 무엇을 하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불행하다! 곰곰히 생각들 하여라! 이것을 항상 생각하여라.
그리고 이 진리가 오랜 세월 동안에 알려지도록 너희 후계자들에게 이 말을 해 주어라. 별이 하나 떨어지는 것이 종교가 타락하는 것보다 덜 무섭다. 하늘에서 천체와 유성들이 없어진다 하더라도 백성들에게는 실제적인 종교 없이 있는 불행과 같은 불행은 아닐 것이다. 하느님께서 선견지명이 있는 당신 능력으로 인간의 필요를 보충해 주실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운 길로 혹은 그들의 무식한 머리로 아는 길을 걸으면서 올바른 정신으로 하느님을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는 하느님께서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모든 종교의 사제들이 제일 먼저 종교를 믿지 않음으로써 종교를 가지고 속이 빈 무언극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오게 되면, 이 세상은 불행하다! 부도덕한 종교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어떤 현자에게 주어진 부분적인 계시에 따라 생겼고, 어떤 것들은 영혼에게 어떤 신을 사랑한다는 양식을 주기 위하여 어떤 믿음을 만들어 가져야 하겠다는 인간의 본능적인 필요에서 생겼다. 왜냐하면 이 필요는 인간의 가장 강력한 자극물이고 스스로 계신 분에 대한 영속적인 탐구의 상대로서, 비록 교만 지능이 어떤 신에게도 복종하기를 거부한다 하더라도, 또 사람이 영혼이라는 것을 몰라서 자기 안에서 불안해 하는 이 필요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를 모른다 하더라도, 정신은 그 필요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금 한 말은 이런 종교들에 대해서 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너희들에게 준 종교, 내 이름을 가진 종교, 내가 너희들을 그 종교의 대사제와 사제를 만든 종교, 너희들에게 그것을 온 세상에 전파하라는 명령을 준 종교에 대하여는 무슨 말을 해야하겠느냐? 참되고 완전하고, 스승인 내가 가르친 변함없는 교리를 가진 유일한 이 종교에 대하여는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느냐 말이다. 내 교회는 장차 오실 분인 성령의 계속적인 가르침으로 보충될 것인데, 성령은 내 대사제들에게 지극히 거룩하신 인도자가 되실 것이고, 또 내 대사제들을 도와서 내 말이 확증될 여러 지방에 세워질 여러 교회에서 보조적인 우두머리가 될 대사제들에게도 지극히 거룩하신 인도자가 되실 것이다.
이 교회들은 비록 숫적으로는 서로 다르겠지만, 생각은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각 부분으로 점점 더 커지는 큰 건물을 이룸으로써 전체 교회와 오직 하나가 될 것이며, 이 위대하고 새로운 성전은 그 별채를 세상의 끝에까지 세우게 될 것이다. 이 교회들은 서로 생각이 다르지 않고 서로 대립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화합하고 우애를 가지며, 세상 마칠 때까지 모두 교회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에게 순종할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동기에서건 어머니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교회들은 갈라진 지체가되어, 교회의 하느님인 우두머리인 나에게서 오는 은총인 피의 영양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아버지의 집을 떠난 탕자와 같이 그들의 덧없는 재산을 누리다가 다음에는 점점 더 심해지는 변함 없는 비참 속에서 살며, 그들의 영적인 지능을 너무 무거운 음식과 술로 무디게 하고 그 다음에는 더러운 짐승들이 먹는 쓰디쓴 도토리나 먹으면서 신음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가, 마침내 뉘우치는 마음으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저희들은 죄를 지었습니다. 아버지 용서해 주시고, 아버지의 집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갈라져 나간 교회의 한 지체이든지, 또는 그 교회 전체이든지---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갈라져 나간 이들 교회들 전체를 그들의 목숨을 바쳐 구제할 수 있는 내 모방자들이 언제 어디에서 넉넉히 많이 일어나, 내가 열렬히 바라는 것과 같이 한 목자 밑에 한 우리를 만들겠느냐? 아니 다시 만들겠느냐?---그러니까 혹 한 사람만이 돌아오든지 전체 회중이 돌아오든지,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어라. 온정을 가져라. 너희들 모두가, 너희들 각자가 한 시간 또는 여러시간 동안, 또는 여러해 동안 욕망에 사로잡힌 탕자였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뉘우치는 사람들에게 무자비하게 굴지말아라. 잘 기억하여라! 잘 기억해! 너희들 중에서 여러 사람이 도망쳤던 것이 오늘로 스무 이틀이 된다.
그런데 도망친 것은 내게 대한 너희들의 사랑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더냐? 그러므로 너희들이 뉘우치고 내게 돌아오자마자 내가 받아들인 것과 같이 너희들도 그렇게 하여라. 내가 한 것은 무엇이든지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이것이 내 계명이다. 너희들은 3년 동안 나와 같이 살았다. 내가 한 일과 내 생각을 너희들은 알고 있다. 너희들이 장차 결단을 내려야 할 경우를 당하게 되면 나와같이 있었던 시절로 눈길을 돌려라. 그리고 내가 처신한 것과 같이 처신하여라. 그러면 절대로 잘못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희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살아있는 완전한 본보기이다. 또 가리옷의 유다에게까지도 나 자신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여라....사제는 모든 방법을 다 써서 구원하려고 애써야한다. 그리고 구원하려고 쓰는 방법중에서 항상 사랑이 우세해야 한다. 나는 유다의 끔찍한 생각을 모르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여라. ...그러나 일체의 혐오감을 극복하고, 그 불행한 사람을 요한을 다룬 것과 같이 다루었다. 너희들은...너희들은 어떤 일을 해도 사랑하는 제자를 구하는 데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고민은 대개 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모든 것이 쓸 데 없다는 것을 알 때에 너희를 엄습하는 권태를 느끼지 않고 행동할 수 잇을 것이다. 그런 때에도...항상 일해야 한다.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주님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던 요한이 이렇게 부르짖는다. 예수께서는 어떤 고통스러운 사실을 체념하고 인정하실 때 늘 하시는 몸짓으로 팔을 벌리시고 말씀하신다.
"그렇다....유다는 수없이 많은 내 고통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것은 사라지지 않는 고통이다. ...다른 고통들은 이생이 끝남과 동시에 끝났다. 그러나 이 고통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그를 사랑하였다. 나는 그를 구해보려는 노력으로 나 자신을 소모하였다....나는 고성소(임보)의 문을 열어 의인들을 거기서 끌어낼 수가 있었고, 연옥의 문을 열어 자신을 정화하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갇혀 있는 처참한 곳의 문은 닫혀 있었다. 그에게는 내 죽음이 무익하였다."
하고 요한은 또 애원하며 말한다.
제자들은 모두 놀라고 흥분해서 이렇게 주고 받는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회개하지 않는 죄인, 나를 부인하는 이단, 나를 버리는 신자들 때문에, 그리고---걸려 넘어지게 하고 파멸로 이끌어가는 원인이 되는 죄있는 사제들 때문에 내 마음이 아직도 받아야 할 고통을 너희들은 생각하지 못하느냐? 너희들은 알지 못한다 ! 너희들은 아직 몰라. 너희들은 나와 함께 하늘의 빛 속에 있지 않는 동안은 결코 완전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때에는 너희들이 깨닫게 될 것이다. ...
유다를 유심히 볼 때에 나는 그들의 타락한 의지로 인하여 선택이 파멸로 변하는 선택받은 사람들을 보았다. ...오! 충실한 너희들, 장래의 사제들을 양성할 너희들은 내 고통을 기억하고, 내 고통을 위로하기 위하여 점점 더 성덕을 닦고 , 미래의 사제들에게 성덕을 닦게 하여, 할 수 있는 대로 이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여라. 격려하고, 보살피고, 가르치고, 억제하며, 어머니들처럼 세심하고, 스승들처럼 끈기있고, 목자들처럼 조심하고, 군인들처럼 씩씩해서 너희들이 양성할 사제들을 부축해 주어라. 열 두째 사도의 잘못이, 오! 장차 너무 되풀이 되지 않게 되도록 하여라....내가 너희들에게 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들에게 하는 것과 같이 하여라.
나는 너희들에게'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와 같이 완전하여라'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지금 너희들의 인성은 이런 계명 앞에서 벌벌 떨고 있다. 내가 이 말을 너희들에게 했을 때보다도 지금 더 떨고 있는 것은, 지금은 너희들이 너희의 약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너희들에게 용기를 다시 주기 위하여' 너희들의 선생과 같이 되어라' 하고 말하겠다.
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한 것을 너희들도 할 수있다. 기적들까지도. 그렇다, 기적들까지도. 이것은 내가 너희를 보낸다는 것을 세상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그분이 이제는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기 때문에 우리 병자들을 고쳐주지 못하시고 우리의 고통을 위로하지도 못하신다' 고 생각하고 낙망해서 울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요사이 내가 기적들을 행했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또 그리스도를 죽였다고 해서 그리스도가 박멸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로 더 강하게 되었다고 영원히 강하고 능력이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새 종교에 대한 사랑은 기적의 힘보다는 오히려 너희들의 성덕으로 더 커질 것이다. 너희들이 조심스럽게 지켜야 할 것은 내가 너희에게 넘겨주는 선물이 아니라 너희들의 성덕이다. 너희들이 더 거룩하면 더 거룩할수록 너희들이 내 마음에 더 소중한 존재가 될 것이고, 하느님의 성령이 너희를 비추실 것이고, 하느님의 인자와 능력은 너희들의 손에 하늘의 선물을 가득 채워주실 것이다.
기적은 믿음을 가지고 사는데 필요불가결한 보통 행위가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그들이 믿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예외적인 수단이 없어도 믿음을 보존할 줄 아는 사람들은 지극히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 기적은 오로지 어떤 특별한 시대에만 한정된 것이어서 이 시대가 지나간 다음에는 그쳐야 하는 행위도 아니다. 기적은 세상에 있을 것이다. 항상. 그리고 세상에 의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적도 그만큼 더 많아질 것이다. 진짜 기적들이 아주 드물어지는 것을 보게되면, 그 때에는 믿음과 정의가 침체해졌다고 말해야 한다. 과연 나는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과연 나는 이런 말도 하였다. '나를 참으로 믿는 사람들을 따라다닐 표들은 마귀와 병과 자연의 힘과 계략에 대한 승리일 것이다' 하고.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계신다. 내게 충실한 사람들이 어떻게 내 안에 있겠는가 하는 표는 그들이 내 이름으로 또 하느님을 찬미하기 위하여 행할 기적의 수와 힘일 것이다. 참된 기적이 없는 세상에 있으니 말이다' 하고 말해도 중상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어떤 노래 곡조나 이상하게 번쩍거리는 것에 매혹된 어린이들처럼 착실한 것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서 헤매려는 사람들을 너희가 말리려고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너희가 보다시피, 그 사람들은 내 말을 듣지 못하니 자기네 행동에 대한 벌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너희들도 잘못한 것이 있다. 너희들은 내가 어떤 곳에 있다고 단언하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고해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지 말라고 내가 말한것은 기억하였다.
그러나 너희는 그리스도가 두번째 올 때에는, 마치 눈 깜빡하는 시간보다도 더 짧은 시간에 동쪽에서 나와 서쪽으로 가는 번갯불과 같을 것이라고도 말한것을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 두번째 오는 것은 내가 부활하는 순간에 시작되었다. 이 재림은 심판자 그리스도가 부활한 모든 사람앞에 나타날 때에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나는 회개시키고, 병을 고쳐주고, 위로하고 가르치고, 명령을 주기 위하여 얼마나 여러 번 나타날지 모른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는 아버지께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세상은 내 현존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는 육체나 영혼에게, 죄인이나 성인에게 내가 필요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말을 전하라고 내게 선택된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친구와 선생과 의사로 주의를 기울이고 있겠다.
그것은 교만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고, 하느님의 눈에 비열한 것으로 비치는 정신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눈에 비열한 것으로 비친다고 한 것은 그 정신 상태가 일종의 마비상태와 비슷하기 때문인데, 어떤 사람은 그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가 이 선물을 받았다고 해서 벌써 천국에 가 있는 줄로 생각함으로써 가지게 된 그 보물을 어루만지며 만족해한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경우에는 이 선물이 불꽃과 날개가 되기는 고사하고 , 얼음과 무거운 돌이되어 영혼이 떨어져 죽는다. 또 이런것도 있다. 즉 선물을 잘못쓰면, 더 큰 칭찬을 듣기 위하여 선물을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이 경우에는 주님 대신에 악마가 들어서서 불순한 이적으로 무모한 사람들을 유혹하려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종류의 유혹에서든지 항상 멀리 떨어져 있어라. 유혹들을 피하여라. 하느님께서 너희들에게 내려주신 것으로 만족하여라. 하느님께서는 무엇이 너희들에게 유익한지 또 어떻게 유익한지 아신다. 어떤 선물이든지 선물인 것 외에 시험이라는 것을, 너희들의 올바름과 너희들의 의지에 대한 시험이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여라. 나는 너희들에게 같은 것을 주었다. 그러나 너희들을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한 그것이 유다는 파멸시켰다. 그러면 선물이 나쁜 것이었단 말이냐? 아니다, 그렇지 않고 그 사람의 의지가 나빴던 것이다...
나는 진짜 사람이다. 내 사지와 단단하고, 따뜻하고, 움직일 수 있고, 숨쉴수 있는 너희 육체와 같은 내 육체를 보아라. 그러나 나는 또 참 하느님이다. 그리고 33년 동안은 천주성이 어떤 최상의 목적 때문에 인성 안에 가려져 있었지만, 이제는 인성과 결합하여 있기는 하지만 천주성이 우세하여, 인성이 영광스럽게 된 육체의 완전한 자유를 누린다. 천주성과 더불어 여왕이 된 인성은 이제는 인성에 있어서 제한이 되는 것을 아무 것에도 지배받지 않게 되었다. 내가 여기있다. 내가 너희들과 같이 있다. 그러나 만일 내가 하고자 하면 일순간에 세상끝까지 가서 나를 찾는 사람을 내게로 끌어당실 수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아브라함이 지옥에 떨어진 사람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누구든 죽은 사람들 가운데 다시 살아나서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 지 말해주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고. 그들이 혹 선생인 나와 내 기적들을 믿었느냐? 라자로에 대한 기적이 무엇을 얻어냈느냐? 내 유죄판결을 재촉하였다. 내 부활이 무엇을 얻었느냐? 그들의 증오를 얻어냈다. 너희들 가운데에 있을 내 마지막 시간의 이 기적들까지도 그들을 믿게 하지 못할 것이고, 다만 현재에는 피로와 고생이 따르고 미래에는 영광이 있을 하느님의 나라를 선택해서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만을 믿게 할 것이다.
"엔갓디의 엘리세오, 이리 오너라. 네게 할 말이 있다."
"내가 엔갓디에 갔었다는 것을 네가 안 때부터 네 입술에는 한 가지 질문이 감돌고 있다. 그 질문은 '제 아버지를 위로하셨습니까? ' 하는 것이지, 그래서 대답한다마는, '위로 이상의 일을 했다! 내가 데려왔다.'"
"엘리세오, 나는 아직 잠시동안 여기있다. 그런 다음 내 아버지께로 간다.."
" 주님, 그렇습니다. ..." "자, 네 아버지는 지금 나와 같이 있다. 그러니까 나를 따르면, 너는 아직 네 아버지 곁에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나는'이리 오십시오'하고 말했지. 아버지는 네가 나를 따르려고 모든 것을 버렸기 때문에 기뻐하며 세상을 떠났단다." "제가 운다 하더라도 용서해 주십시오. ...제 아버지였으니까요..." "나는 네 괴로움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그를 위로하시려고 그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여기 너희들의 새 동료가 한 사람 있다. 내가 이 사람을 무덤에서 나오게 해서 나를 섬기게 했으니까 너희들에게도 소중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부르신다
"엘리야, 내게로 오너라. 형제들 사이에 들어와 있는 의붓사람 처럼 부끄러워하지 말아라. 과거는 모두 사라졌다. 나를 위해 아버지 어머니를 떠난 즈가리야 너도 친티움의 요셉과 함께 일흔 두 명 제자들과 같이 있어라. 너희들은 나를 위하여 권력자들의 조치에 저항하였으니 그럴 자격이 있다. 그리고 필립보 너도, 또 네 이름이 소름끼치는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네 이름을 부르는것을 원치않는 필립의 친구 너도 오너라. 그리고 네 이름이 싫으면 아버지의 이름을 가져라.네 아버지는 나를 공공연하게 따르는 사람들 축에 아직 끼지 않지만, 의인이다. 모두들 알겠느냐? 나는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미 제자로서 나를 따르던 사람들도 배제하지 않고, 내 제자들의 무리에 속해 있지는 않아도 내 이름으로 착한 일을 하던 사람들도, 모든 사람이 좋아하지는 않는 당파에 속해 있던 사람들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들도 언제나 올바른 길로 들어올 수 있으며 따라서 제외되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은 내가 하는대로 하여라. 나는 이들을 이전 제자들과 결합시킨다. 하늘나라의 문은 착한 뜻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여기에 있지는 않지만, 이방인들까지도 물리치지 않았다. 내가 한 대로 하여라. 사자 구덩이는 아니지만 정말 재칼 구덩이에서 나온 다니엘 너도 와서 이 사람들과 같이 있어라.
또 벤자민 너도 이리 오너라. 나는 너희들을 이들과결합시킨다. 그것은 주님의 밭에 추수할 것이 많겠고 따라서 많은 일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낮시간이 흐르는 동안 여기에 좀 그대로 있기로 하자. 저녁이 되면, 산을 떠나라. 그리고 새벽에는 너희 사도들과 내가 이름을 부른 너희 두 사람과 일흔 두 사람 중에서 여기 있는 사람들(예수께서는 즈가리야와 내게 초면이 아닌 친티움의 그 요셉을 가리키신다)은 나와 같이 가자. 다른 사람들은 여기 남아서, 할 일 없는 말벌처럼 이리저리 달려간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게으르고 말 안 듣는 아이들처럼 해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고 내 대신 말해 주어라. 그리고 오순절 20일 전에 모두가 베다니아에 가 있으라고 일러라. 그뒤에는 나를 찾아도 소용없을 테니까. 모두들 앉아서 쉬어라. 너희들은 나와 같이 좀 외따른 곳으로 가자."
" 주님, 그애를 위로해 주십시오. 벌써 전에도 침울했었는데, 지금은 더 침울하군요. "얘야, 왜 그러느냐? 네가 아마 나하고 같이 있지 않은 모양이지? 너는 내가 고통을 이긴 것을 기뻐해야 하지 않겠니?"
"그렇지만 난 알아" 하고 요한이 말한다. "거 잘됐군 그래! 그럼 왜 운대?"
"얘가 우는 것이 오늘이 처음이 아니야, 여러 날째야..."
"그건! 나도 눈치챘어! 그렇지만 왜 운다는 거야?
"주님이 알고 계셔. 나는 확신해. 또 주님만이 얘를 위로하는 말씀을 하실 수 있으리라는 것도 알아" 하고 요한이 빙그레 웃으면서 말한다.
"사실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착한 제자인 마루잠이 지금은 정말 어린아이라는 것을, 사물의 진실은 보지 못하는 어린아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모든 제자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제자인 너는(마루잠) 내가 약해진 믿음을 굳게 해주려고, 세상을 다 산 생명들을 사해주고 거두어 주려고, 더 약한 사람들에게 불어 넣어진 독을 품은 의심을 없애주고, 아직도 내게 반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을 가지고 또는 엄하게 대답하려고, 그리고 사람들이 내가 죽었다고 말하려고 가장 애를 쓰고 있는 곳에 나타남으로써 내가 부활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갔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지금처럼 너를 데리고 있고, 또 여러 번 데리고 있을 터인데 잠깐 동안 네게 가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었느냐? 나와 함께 과월절 잔치를 할 사람이 다른 모든 제자들 중에서 너말고 또 누가 있느냐? 이 사람들을 다 보아라. 이 사람들은 과월절을 지냈다. 그런데 어린 양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의 맛이 그 후 몇 시간 동안에 그들의 입천장에는 온전히 재와 쓸개와 초같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얘야, 너와 나는 우리 과월절을 기쁘게 완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그대로 보존되는 꿀과 같을 것이다. 그때에 운 사람은 이제는 기뻐할 것이다. 그때 즐긴 사람은 또다시 즐기기를 바랄 수는 없다."
"참말....저희들은 그날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하고 토마가 중얼거린다.
"그렇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마루잠은 아주 어린아이들이 그런 것과 같이 다른 사람들보다 예수를 덜 두려워한다. 예수께서 그에게 화를 내고 계시지 않다는것을 알게 된 지금은 예수의 팔에 몸을 맡긴다. 탁 믿고 그렇게 한다. 그리고 마치 병아리가 어미의 날개 밑으로 기어들어가듯, 그를 끌어당기는 품안으로 완전히 파묻힌다. 그리고 여러 날 전부터 그를 우울하고 불안하게 만들었던 고민이 사람짐과 동시에 행복해서 잠이 든다.
" 폴피레아도 예루살렘에 옵니까?" 하고 여쭙는다. 베드로의 목소리에는 간절한 소원이 깃들어 있다.
"그러면 주님의 어머니는요, 거기는 안 가십니까?" 하고 타대오가 여쭙는다.
" 지성소의 장막 뒤로는 대사제만이 들어가는 것이다."
"묘사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지복이 있는 것이다. 내 말은 이런 뜻이다."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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