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2.3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12-31 조회수1,602 추천수7 반대(0) 신고

 


2019년 12월 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제1독서 1요한 2,18-21

18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 그들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다면 우리와 함께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이 아무도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20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21 내가 여러분에게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 또 진리에서는

어떠한 거짓말도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 요한 1,1-18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2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3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4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15 요한은 그분을 증언하여 외쳤다.

 “그분은 내가 이렇게 말한 분이시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16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18 아무도 하느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알려 주셨다.

2015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연구팀은 학생 2백 명에게

일기장을 나눠 주고 매일 감정

변화를 기록하게 했습니다.

 “아침부터 혼나서 기분 나빴다.

저녁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어

즐거웠다.” 등등 그날 느낀 감정을

자세히 쓰도록 지시한 다음,

일기의 내용과 피실험자의

 건강 변화를 비교했습니다.
모든 자료를 분석한 연구팀은

일기를 통해 특정한 감정을 경험한

 횟수가 많은 사람일수록 심리적인

불안이나 체내 염증 수준이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특정한 감정은 대상을 접했을 때

솟아나는 전율 같은 감정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서,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의

감동적인 모습에서, 뛰어난 예술작품을

 접하면서 등에서 얻게 되는 감정입니다.

이런 감정이 본인의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이었지요.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이렇게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찾기 힘들까요? 아닙니다.

사실, 주의 깊게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삶의 모든 것에서 특별한 감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에서 더욱더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2019년도의 마지막 날인 오늘입니다.

 아마 오늘을 보내면서 2019년이

어떠했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한 번 더 보고, 한 번 더 생각하는

멋진 2019년을 만드셨습니까?

혹시 제대로 보지 못하고, 멋대로

생각해서 아픔과 상처가 더 많은

2019년은 아니었는지요?
복음에서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는 것을 분명히

 전해줍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 역시 요한의

모습을 따라 주님을 세상에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가르쳐주지요.
이런 삶을 위해 제대로 보고 제대로

 생각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가운데 사시는 주님과

함께할 수 있으며, 후회 많은 삶이 아닌

멋지고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습니다.
2019년을 잘 마무리하시고,

새롭게 주시는 2020년을

잘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올 한 해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너 자신이 되라.

다른 사람은 이미 있으니까.

(오스카 와일드)

새로운 나를 만드는

변화의 시작점을 만드세요.

어느 초등학교 졸업식 날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기 위해 교실로 돌아왔을 때 담임

선생님께서는 인상을 쓰시면서

 맨 앞줄에 앉은 아이부터 차례로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단으로 나온 아이들의

 엉덩이를 몽둥이로 한 대씩 세게

 때리는 것이 아닙니까?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웅성댔고, 졸업식 날 뭐 하시는

거냐며 따지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반 아이들

모두 한 대씩 엉덩이를 때렸습니다.
그 뒤에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고,

더 자라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게 되면,

이렇게 아무 이유 없이 매를 맞는 일을

 한 번쯤은 겪게 될 것이다.

그것을 미리 알려주고 싶었다.

이게 나의 마지막 졸업선물이다.”
사랑의 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선생님의 방식을 ‘옳다,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처럼 아무 이유 없이

불이익을 당하는 억울한 일은 계속해서

어지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때 그럴 수 있다면서 포기하고

참아야 할까요? 아닙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번 더

바라보고, 한 번 더 생각해서 지금

해야 할 것을 찾아보십시오.

새로운 나를 만드는

변화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신 주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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