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월 1일[(백)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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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1-01 | 조회수1,45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월 1일 수요일 [(백)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세계 평화의 날)] 교회는 해마다 1월 1일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성모 마리아께 ‘하느님의 어머니’를 뜻하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이다. 지역마다 서로 다른 날짜에 기념해 오던 이 축일은 에페소 공의회 1500주년인 1931년부터 세계 교회의 보편 축일이 되었고, 1970년부터 모든 교회에서 해마다 1월 1일에 지내고 있다. 또한 바오로 6세 교황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1968년부터 세계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세계 평화의 날’로 정하였다. 이에 따라 교회는 평화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선물을 청한다. 말씀의초대 주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께서 축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계시하신다(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다(제2독서) 목자들은 아기에 관하여 들은 이야기를 알려주고 마리아께서는 이 이야기를 곰곰이 되새기신다(복음) ◎제1독서◎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축복하여라.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화답송◎ 시편 67(66),2-3.5.6과 8(◎ 2ㄱ)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당신 얼굴을 저희에게 비추소서. 당신의 길을 세상이 알고, 당신의 구원을 만민이 알게 하소서.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심판하시고 세상의 겨레들을 이끄시니, 겨레들이 기뻐하고 환호하리이다.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찬송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찬송하게 하소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세상 끝 모든 곳이 그분을 경외하리라. ◎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시고 저희에게 복을 내리소서. ◎제2독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게 하셨다.> 말씀입니다. 4,4-7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복음환호송◎ 히브 1,1-2 참조 통하여 조상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네. ◎복음◎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다. 여드레 뒤 그 아기는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16 서둘러 가서,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영성체송◎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시다. ◎오늘의묵상◎ 말이 참 어렵습니다. 정제된 말만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는데 가끔 불쑥 튀어나오는 거친 말이 상대방뿐 아니라 나 자신도 아프게 합니다. 신앙도 말로 이어져 온 역사 속에서 조금씩 다듬어져 온 것이지요. "내가 보았다,내가 믿었다, 내가 깨달았았다." 라고 수없이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것이 신앙입니다. 오을 복음의 목자들과 마리아의 모습에서 우리는 신앙을 가져다주는 말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자들은 보았고, 본것을 외쳤고, 그들이 외치는것은 하느님께 닿아 있습니다. 그런 목자들 곁에서 마리아께서는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시지요. 침묵입니다. 목자는 말을 하고 마리아께서는 말을 묵상 하십니다. 신앙은 말을 하고 듣는 순환적 관계 안에서 성장합니다. 서로 말하려는 가운데 서로 들으려는 노력이 균형을 맞출 때 신앙은 건강해집니다. 대개 배운 사람들의 못난 모습에서 자주 볼수 있는 것이 남을 가르치려고 드는 자세 입니다. 모르는 사람보다는 너무 알라서 듣지 못하는 사람이 참으로 무지한 사람입니다. 신앙의 말은 억눌려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말를 할수 있게끔 스스로 침묵으로 배려하는 겸손한 이들의 말입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배우지 못하고 무능하고 죄인 취급받던 목자들의 외침으로 복음이 선포되었고 마리아의 침묵으로 그 선포의 의미가 깊은 울림이 되었다는 사실을 복음은 집어냅니다. 한 해의 시작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이웃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보는 침묵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말조차 꺼내기 힘든 거칠고 억눌린 삶을 살아가는 이들 안에 선포되는 하느님 복음의 의미를 깨달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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