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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01 조회수2,274 추천수14 반대(0)

제가 있는 곳에서 바다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등대가 있고, 산책로가 있고, 길가에는 사슴이 있습니다. 겨울이라 사람이 많지 않은데,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온다고 합니다. 시냇물이라는 동요가 있습니다. “냇물아 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바다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거 같습니다. 하나는 받아 준다.’입니다. 냇물도, 강물도 모두 받아 주는 커다란 그릇이 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은 흘러서 바다로 가고 있습니다. 그만큼 바다라는 그릇이 크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닥입니다. 바닥은 낮은 곳입니다. 손바닥, 발바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역시 낮은 곳입니다. 바다는 낮은 곳에 있기에 세상의 모든 물이 모일 수 있습니다. 202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새해에는 바다와 같은 큰 그릇이 되어서 이웃의 아픔, 절망, 시련을 받아 주면 좋겠습니다. 새해에는 바다와 같이 낮은 자세로 십자가는 기꺼이 지고, 영광은 하느님께 돌리면 좋겠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켜야만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강물을 세례를 받고, 뉘우치면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바다로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세례자 요한을 따랐습니다. 세리도, 과부도, 가난한 이도, 아픈 이도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는 바다는 회개한 모든 사람을 기꺼이 받아 주었습니다. 이는 율법과 계명이라는 강물을 벗어나는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바다와 같은 사람입니다. 낮은 곳에 있는 바닥의 마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욱 작아져야 합니다. 나는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습니다. 저기 하느님의 어린양이 오십니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지만, 세례자 요한은 깊은 바다와 같은 마음으로 겸손함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보다 더 깊고 넓은 바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끄는 바다에는 유대인, 이방인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죄인들도 기꺼이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착한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밤을 새워 들판을 돌아다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돌아옵니다.” 그러기에 세례자 요한은 그분은 더 넓고, 깊은 바다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겸손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희생과 십자가를 기꺼이 감수하는 겸손입니다. 겉옷을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주는 겸손입니다.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까지 내주는 겸손입니다. 조롱과 멸시를 당해도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겸손입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는 삶을 선택하는 겸손입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강생의 신비는 바로 겸손의 신비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째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잔치에 초대받아도 윗자리에 앉지 말고 끝자리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신학생 때입니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침묵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나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하게 지고 가야 합니다. 가난한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에게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사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강론을 성실하게 준비하고, 자신이 행한 강론을 삶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고,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모든 신앙인은 또한 2의 그리스도가 돼야 합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전해주어야 하고,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가 2의 그리스도로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뵙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이러한 희망을 두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도 순결하게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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