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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윗 시리즈 제 1편 ( 다윗의 유년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07 조회수1,380 추천수0 반대(0) 신고

다윗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부분이 목초지였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기에 어린 막내까지 생업에 종사해야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다윗은 그저 산과 들에서 양과 염소 등의 가축을 돌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훗날 이 시골 소년이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재건합니다. 이렇게 되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출신 배경이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면 다윗은 평생 목동으로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목동은 한 나라의 왕이 됩니다. 또한 끊어졌던 하느님과 이스라엘 나라 사이에 신앙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 나라의 왕은 위대하고 목동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지독하게도 가난한 집에서 성장했습니다. 가족이 불행하게 죽고 사업이 실패하고 정신이상으로 병원에도 입원을 하기도 합니다. 선거에서 낙선하는 등 인생의 쓰디쓴 맛을 다 보는 느낌입니다.

 

링컨이 만약 이런 자신의 삶을 운명에 탓을 돌렸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 것 같습니까? 사실 사람은 흔히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은수저, 금수저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설령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을 보고 흙수저는 부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완벽하게 보일 수 있는 금수저가 부러운 건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신세한탄만 하고 세월을 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 배경이 가슴 뛰는 삶의 도전과 의욕을 나태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한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의 유복한 환경이 마치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활에 안주해서 가슴 설레이는 그런 역동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한세상 그냥 물질적인 풍요만 누리고 살다가 가는 인생일 수가 있다면 인간적으로는 부러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그렇게 부러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지상에서의 삶이 만약 모든 것이고 또 여기서의 삶 그자체가 바로 우리의 내세의 삶과 그대로 직결된다면 부러울 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인생역전이라는 세상말처럼 우리의 영혼의 세계에서는 어떤 역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오히려 부자와 나자로의 일화를 본다면 비록 이 땅에서 삶이 고단한 삶이라고 하더라도 희망을 가진다면 언젠가는 그 희망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겁니다. 설사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의 가르침대로 살게 된다면 그 희망은 꼭 현실로 실현될 날이 올 겁니다. 지금 탈렌트이고 연극배우인 김여진씨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입니다.

 

4학년 때 진주에서 전학을 와 5학년까지 같은 반에 있었습니다. 5학년 때 저희반은 담임 선생님 덕분에 서예를 하게 되었습니다. 1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학년 말에 서예전시회를 가졌습니다. 그때 제가 전시회에 낸 작품에 쓴 글이 불행을 고치는 약은 희망이다.’ 였습니다.

 

우연히 가톨릭 밴드에서 이 친구가 친구라는 사실을 말하니 가톨릭 신자라고 하는 말을 해 줘서 가톨릭 신자인 줄 알았습니다. 신앙생활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나마 어떤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힘든 삶이 되겠습니까?

 

자신의 타고난 배경 때문에 좌절을 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도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다윗을 한번 보세요. 하느님께서 다윗에게는 버팀목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만 그렇게 해 주시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세상이 우리의 배경을 보고 차갑게 등을 돌릴지라도 하느님은 등을 돌리지 않으신다는 건 다윗의 삶을 보면 확실한 증거가 됩니다. 다윗은 여덟 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지금이야 귀여움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이지만 그당시에는 장자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귀여움을 받고 자라기엔 조금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아버지도 장남을 가장 총애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새로운 리더를 찾기 위해 다윗의 집을 찾아갔을 때 아버지는 일곱 형제 모두를 소개시켜주었지만 다윗만은 예외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홀로 쓸쓸히 들판에서 양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집안의 귀한 손님을 만나는데 자신만 소외시킨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요? 성경에는 다윗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아마 성장 과정에서 어머니의 정을 많이 느끼지 못하고 성장했을 거라고 추측이 됩니다.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할 때 큰형을 격려차 도시락을 주러 갑니다. 그때 형은 전쟁 구경을 왔나며 혼을 냅니다. 이런 예만 보더라도 다윗의 성장 배경이 얼마나 힘든 삶이지 않았겠습니까?

 

아버지와 형제들에 대한 분노, 피해의식등 많은 고통을 느끼며 성장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게 다윗에게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기억됩니다. 다윗은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했지만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아픈 고백을 보면 다윗이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하느님은 자신을 버리지 않으실 거라는 고백입니다. 정말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가 있었을까요? 다윗은 육신의 부모가 있었지만 자신이 위대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을 가졌다는 신앙심이 정말 대단하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불행한 환경이 꼭 불행하다고만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세상말에도 있듯이 인생의 결말은 끝에 가봐야 알 수 있습니다. 분명 자신이 태어난 환경 속에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깊은 뜻이 있을 겁니다.

 

동방박사가 별을 쫓아서 예수님을 찾으셨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찾아 끝까지 달리면 언젠가는 그 끝에는 영광의 월계관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구약의 요셉의 삶을 보더라도 형제들의 시기, 질투로 살해의 위협 속에서 다행히 지나가는 행인덕에 가까스로 목숨을 건지기는 했지만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종살이 하는 중에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성범죄 미수라는 누명으로 감옥까지 가는 기구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를 두고 불행한 인생이라고 어느 한 구절이라도 말하지 않습니다.

 

요셉 본인도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거나 기구한 운명이라고 한탄을 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인생 후반전에 인생역전을 하듯이 이집트의 국무총리가 되어 오히려 자신의 형들을 만났을 때 요셉은 말을 합니다. 형들은 자기를 해하려고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선으로 바꾸어주셨다고 말을 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위치에서 얼마든지 형들에게 복수의 칼을 휘두르려면 휘두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형들을 용서했습니다. 아마 형들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자신들의 범죄에 대한 후회와 동생에 대한 죄스러움이 가득했을 겁니다.

 

하느님은 요셉을 사랑했고 또 요셉도 그런 하느님을 사랑했습니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여자의 유혹에도 하느님만을 바라봤기에 그 유혹도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요셉을 하느님께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요셉은 자신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고 그런 믿음이 쌓이고 쌓여 결국에는 한 나라의 재상의 자리까지 하느님께서 길을 예비해두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셉처럼 어린 시절 아픈 가정사를 가지고 있고 그 상처가 심부에 맺혀 있어도 하느님께서는 나쁜 것도 선으로 만드시는 분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에게 지금 힘들고 고난의 삶이 온다고 해도 하느님을 향한 절대적이고 항구한 믿음을 경주한다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겁니다.

 

바로 성경 묵시록은 그걸 증언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약 10회 정도로 다윗의 삶을 한번 조명하고자 합니다. 많은 기대와 성원바랍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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