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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0 조회수1,750 추천수12 반대(0)

요즘 누가 종이 신문을 봅니까? 종이 신문을 본지 오래되어서요?’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신문을 만들고, 홍보하는 제게는 어깨가 처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맛있는 집이라면 굳이 시간을 내서 찾아가곤 합니다. 먹어보고 맛있으면 이웃에게 소개하기도 합니다. 시간도, 비용도 기꺼이 낼 용의가 있습니다. 종이 신문이 영적으로 맛이 있다면, 지치고 힘든 일상에 위로와 용기를 준다면 기꺼이 시간을 내고, 비용을 지급할 것 같습니다. 신문을 정독하면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립니다. 1년에 150불이니 한 달이면 13불이 채 안 됩니다. 고맙게도 제게 용기와 힘을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새 영세자에게 평화신문을 소개하고, 구독료를 내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친구들에게 성탄 선물로 평화신문을 보내 주는 문도 있습니다. 대자와 대녀에게 평화신문을 선물로 보내 주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분들은 평화신문의 가치를 알고 계십니다.

 

가톨릭 평화신문이 주는 영적인 양식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매주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라는 지면이 소개됩니다. 주변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듯이, 가난한 이의 모습으로, 병든 이의 모습으로, 외로운 이의 모습으로 여전히 우리에게 오시고 계십니다. 많은 분이 온정의 손길로 그분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교황님의 일정과 교회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가난한 이의 친구가 되어야 함을 실천하고 계십니다. 토마스 머튼의 영성을 소개하는 지면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영적인 깊이를 봅니다. 현대의 신학 동향을 소개하는 지면도 있습니다. 간단한 교리 상식을 소개하는 지면도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선교하시는 수녀님, 수사님의 이야기에서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미주 지역의 한인 가톨릭 공동체의 다채로운 활동과 나눔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평화신문은 영적인 종합비타민입니다.

 

어제도 말씀을 드렸지만, 영원한 생명을 사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았을까요? ‘마리아, 엘리사벳, 요셉, 즈카리야, 목동, 동방박사, 시메온, 안나, 베로니카, 키레네 사람 시몬, 십자가상의 한 죄인, 세례자 요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겸손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을까요? ‘헤로데, 왕궁의 사람들, 율법학자,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빌라도, 군중들입니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기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욕심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지는 사람들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서를 보면 죄의 현장들이 잘 나타납니다. 아담이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은 일은 하느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함 때문이었습니다.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은 동생에 대한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죽이고 바세바를 차지한 것은 욕망 때문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밭은 빼앗은 것은 탐욕 때문입니다. 헤로데가 2살 이하의 어린이를 죽인 것은 분노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것은 인색함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을 새워 기도할 때 잠을 자던 제자들은 게을렀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빨간 십자가가 도시를 가득 채워도, 화려한 교회의 건물이 우뚝 솟아도 우리와 함께 하는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주었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능력과 그분의 지혜를 보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분이 보여준 겸손함입니다. ‘나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 그분은 더 커지셔야 하고, 나는 더 작아져야 한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함을 보여주었기에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 중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은 없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겸손함으로 죄의 뿌리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과 함께 참된 진리의 길로 가야 하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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