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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성남 신부님 / 행복한 신앙 제3회 분노가 왜 필요한가?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1 조회수3,022 추천수3 반대(0) 신고

홍성남 신부님 행복한 신앙


 


3회  분노가 왜 필요한가?


■ 지난 강의 정리 ...

  분노는 감정이지 죄가 아니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중요한 분노에 대한 이해


일상을 살아가면서 화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가 드리는 강의는 맨 밑에 심리적으로 건강치 못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첫 시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위에는 건강한 신앙인, 맨 위에는 거룩한 신앙인들이 있는데, 보통 여러분들이 들으시는 강의는 건강한 분이 좀 더 거룩한 삶을 위한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는데 제가 해드리는 얘기는 이제 병든 분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것인가를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이게 거룩한 삶을 사는 거 하고 많이 달라요. 화를 참는 게 아니라 화를 내라, 이런 식으로 가르치니까 듣는 분들 입장에서는 아, 이게 뭐 지금까지 들었던 얘기하고 반대니까 파격적이다. 그렇게 얘기를 하시는데 사실은 파격적인 거는 아니고, 이미 심리 치료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쓰는 방법들인데 이게 종교계 안에 비법이 들어와서 통용되다 보니까 이제 낯선 것을 만난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렇게 문화적인 작은 충격이라고 할까, 그런 걸 느끼셨던 거 같습니다. 파격적이라고 했는데 파격은 아니고, 그냥 내 마음의 병을 고쳐 가지고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이 제 강의의 핵심이죠. 그중에서 이제 분노가 제일 많이 걸리는 주제입니다. 분노에서 주로 설명을 할 것인데 지난 번에도 분노는 죄가 아니고 감정이다 얘기를 했고요. 두 번째 시간은 분노가 왜 필요한가?

 

■ 2.  분노가 왜 필요한가?


많은 신자분들이 마음 안에서 화를 없애 달라고 기도를 하세요. 편안함을 얻게 해 달라고, 내 마음 안에 화를 갖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분은 거의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화가 없었으면 좋다는 생각을 할까요? 화가 내 마음 안에 들어오면 어떨까요? 되게 불편하죠. 사람은 본능적으로 불편한 거 싫어합니다. 그래서 화가 없으면 참 편안한 삶을 살 거 같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런데 참 불행하게도 분노라는 것이 내 마음 안에 하나도 없으면 그렇게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 중에 설사 한 해 본 분 없으시죠? 설사하신 경험 다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설사하고 나면 어떻게 되나요? 탈진하죠. 그럴 때 우리가 느끼는 게 옛날 어른들이 속된 말로 똥심이라고 하는데. 아, 우리 뱃속에 일정량 그게 있어야지만 이게 버티는구나. 이게 다 나가버리면 그냥 탈진해 버리는 거예요. 그래 우리는 늘 뭐 변에 대해서는 뭐 아이, 더럽다. 그거 뭐 내 몸 안에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특히 사춘기 아이들 같은 경우는 아예 캠프 같은데 가면은 화장실 안 간대요. 그러니까 변 보는 것도 싫고, 변을 배설하는 것도 싫다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사실 사람의 장기 안에 그런 배설물이 일정량이 없이 다 나가 버리면 탈진한다는 거죠. 그것과 마찬가지로 분노도 그렇다는 거예요. 이 분노도 완전히 다 내가 분노가 하나도 없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내 마음에 분노가 하나도 없으면?

 

내 마음 안에 분노가 하나도 없어요. 누가 와 가지고 뭐라고 그래도 늘 이렇게 빵끗빵끗 웃고 히죽히죽 거려요. 그러면 사람들이 날 보고 뭐라고 그럴까요? "아, 저 사람 성인이다." 그럴까요? 아니면 "아, 저 사람 바보 아냐?" 그럴까요? 예, 바보라고 그럴 거예요. 한문으로 무골호인(無骨好人) 그러죠. 무골호인이 뭐죠? 뼉다귀가 없어서 흐느적 거리는 사람을 무골호인이라라고 그러죠? 무골호인 그러면 되게 좋은 말 같지만 사실은 그 뒤에 있는 말은 비양거리는 의미가 숨어 있어요. 아, 저 바보 아냐? 그런 뉘앙스가 숨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분노가 하나도 없게 되면 뭐가 제일 안 되냐 하면 자기방어가 안 된다는 거예요. 만약에 내가 장사를 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와서 물건을 집어가는데 웃으면서 "그거 가져가시면 안 돼요!" 그러면 그 사람이 돌려줄까요, 가져갈까요? 가져간단 말이죠. 못 가져 가게 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죠? 화를 내야죠. 그러니까 내 마음속에는 그 화가 있어야지만 나를 보호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화라는 것은 자기방어를 해주고 자존감을 지키게 해 주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해 주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분노라는 것이 쓸데없는 것이 아니고, 가지면 안 되는 것이고, 주님이 주신 게 아니다. 악한 데서 오는 것이고. 이런 생각들은 사실은 틀린 생각이라는 거예요. 이걸 갖고 있어야 돼요.

 

어떻게 보면 우리 몸에 영양분이 일정량들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 마음의 감정들도 다 일정량이 필요한데 그중에 하나가 분노라는 거죠. 이걸 갖고 있어야 돼요. 어떻게 보면 우리 몸의 영양분이 일정량들이 필요한 것처럼 사람 마음의 감정들도 다 일정량이 필요한데 그중에 하나가 분노라는 거죠. 분노도 일정량을 가지고 있어야만 심리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감정은 생존의 필수 요소이며, 따라서 일정한 분량의 분노도 가지고 있어야  심리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  

 

상담 사례 중에 이런 게 있었어요. 어떤 집에서 이제 며느리를 데려가는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고를 때 아주 착한 며느리를 골랐어요. 시어머니는 좀 굉장히 강한 분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제 며느릿감을 딱 보고 착하니까 데려갔는데 이 착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굉장히 공경을 잘했다는 거예요. 남편도 공경을 잘하고, 애도 잘 키우고 그랬는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자꾸 시어머니가 무시를 한다는, 남편도 무시하고, 그리고 애가 머리가 크니까 애까지도 엄마를 무시하더라는 거예요.

 

이 자매님이 이제 하소연을 하는 거예요. 내가 평생 살아오면서 남을 해코지 한 적도 없었고, 화를 낸 적도 없었고, 늘 기도하고, 착하고 온순한 삶을 살려고 했는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졌냐고 그냥 하소연을 하시는데. 문제가 뭐죠? 화를 낼 줄 몰랐던 거예요. 그냥 내가 착하게 살면 다 나를 인정해 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결과가 안 났다는 거죠.

 

그러니까 집에 있을 때는, 친정집에 있을 때는 착하게 행동하면 부모님이 칭찬을 해줬어요. 아, 우리 딸 착하다. 그런데 그렇게 착한 행동을 해서 칭찬을 받는 것이 다른 집 가서도 또 인정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 그게 아니더라는 거죠. 여기서 착하게 행동했더니 처음에는 뭐 "아, 우리 며느리 이뻐." 이러더니 날이 갈수록 "아, 이게 말도 안 하는 게, 건드려도 응도 없는 게." 이러면서 자꾸만 무시를 하더라는 거예요. 남편도 그렇고. 그렇게 된 원인이 뭐냐 하면 이 며느리가 마음 안에 분노의 감정이 너무 양이 부족했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는 늘 적정량의 분노가 있어야 해요. 분노뿐만이 아니라 다른 감정들도 다 같은데 일정량의 분노가 있어야 돼요. 그게 건강한 양이라고 하거든요. 이게 너무 많아도 곤란해요. 너무 많다 그러면 이게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거예요. 그게 미친 사람처럼 화를 내는 거죠. 이게 성격장애자라고 그러고. 이게 너무 없어요. 그러면 착해 빠진 사람이 돼 가지고 신경증 장애자가 생겨요.

 

제가 신학교를 나와 가지고 첫 본당을 나갔는데, 신자분들이 너무 잘해주신 거예요. 그래서 저도 마음이 너무 기뻐 가지고 신자분들이 저한테 원하는 걸 거의 다 해 드리려고 애를 썼어요. 그런데 마음은 굉장히 기쁜데 몸은 지쳐가는 거예요. 잠을 잘 때도 몸이 늘 잠자리에 누워도 뭐 밑이 꺼진다고 하나요? 방바닥이 꺼지는 느낌이 오고 아침에 일어나려고 그러면 몸이 굉장히 무겁고. 저는 그게 아, 내가 신앙이 부족해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를 더 많이 하고 랬죠. 그런데도 점점 무거워지는 거예요. 왜 이럴까?


그런데 나중에 신자분 한 분이 의사 선생님이 계셨어요. 당신 병원에 가지고 그래서 갔더니, 검사를한 결과가 뭐냐 하면, 콜레스테롤 부족. 그러니까 우리는 콜레스테롤  때문에 고민들 많이 하잖아요. 콜레스테롤이 많아지면 혈관이 막히고 그러는데 콜레스테롤이 부족했대요. 그때 제가 육식을 거의 안 했거든요. 성인 신부 되려면 채식을 해야 된다고 그래 가지고 고기 같은 걸 안 먹고 맨날 채소만 먹었더니 콜레스테롤이 부족했다는 거죠.

 

콜레스테롤이 부족하면 근력이 떨어집니다. 근력이 떨어지면 일을 하면서 점점 지쳐간단 말이죠. 그러니까 일정량의 콜레스테롤도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게 콜레스테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그처럼 분노도 적정량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이 분노가 또 필요한 이유가 뭐냐 하면 분노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데 이 분노가 필요한 거예요.

 

* 분노는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데 필요하다

 

사회에서 잘못된 일이 벌어졌는데 "아, 뭐 저거야 뭐 다 어떻게 되겠지, 뭐 인간사 다 그렇지. 뭐 저런 거 가지고 내가 화를 내면 안 되지!" 그러면 그 사회가 바뀌겠어요? 안 바뀌죠. 분노가 필요하다는 건 제가 저희 본당에서 아주 제 온몸으로 체험을 했죠. 저희 본당이 재개발에 걸렸는데 이 재개발 과정이 정말 합법적이지 않고 뭐 이렇게 깡패들 동원되고 그 어떻게 보면 이 주민들한테 뭐 "새집 줄게 헌집 다오!" 이런 식으로 이렇게 얘기하면서 사실은 거의 사기 치다시피 그렇게 개발하는 것이 뉴타운 재개발사업입니다.

 

그래서 저희 동네만 해도 거의 90% 이상의 주민들이 다 쫓겨났어요.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그런데 그런 과정을 제가 이렇게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중에  이 친구들이 성당까지 강제 철거하려고 덤벼들어 가지고 제가 서명 운동을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는데, 그런 일련의 과정을 보고 만약에 제가 그냥 착해빠진 신부였다면, 앉아서 그냥 기도만 하고 뭐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고, 내 마음에 평화를 주시고" 요렇게 기도생활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성당이 벌써 먹혔을 거예요.

 

그런데 마음 안에서 화가 막 올라오는 거예요. "아, 이거 그냥 둘 수 없어!" 그래서 나서 가지고 싸웠더니 제 뜻대로 완전히 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항의하고 "이건 아니다!"라고 얘기를 하니까 우리 말을 그래도 듣더라고요. 아, 그때 제가 깨달은 게 아, 이 사회정의를 위해서 분노가 필요하구나. 그거는 예수님도 그러셨죠. 예수님도 성전에 들어가셔서 환전상을 보시더니 다 둘러엎으셨다. 그랬잖아요. 예수님이 화가 없었던 분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일으키셨던 분노를 "거룩한 분노"라고 이렇게 얘기를 하십니다.

 

오사카에 한인 성당이 있어요. 제가 그 본당에 강의를 하러 갔다가 거기 수녀님을 만나서 들었던 얘기인데 오사카에 한인 교포들이 많이 산답니다. 굉장히 많이 산대요. 그런데 우리나라 자매님들이 일본 사람한테 시집가서 사는 사람들이 많대요. 옛날에 시집간 사람들이 많이 사는데 그중에 한 분이 일본인 야쿠자하고 결혼했답니다. 깡패하고. 그런데 이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오면은 그냥 부인을 때린대요. 때리고 어떤 때는 칼을 뽑아 가지고 협박을 하고.

 

그런데 이 자매님은 자기가 천주교 신자니까 참아야지, 참아야지. 매일 성당에 가서 울면서 기도하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얘기를 갖다가 거기 수녀님이 들으신 거예요. 그런데 다행히 이 수녀님이 착해빠진 수녀님이 아니라 뭔가 한 성격하시는 수녀님이셨어요. 그래서 이 수녀님이 자매님한테 조언을 해줬대요.  "날 잡아 가지고 칼을 숨겨 놨다가 남편이 술 먹고 들어왔다가 칼 빼면 자매님도 칼같이 빼라." 그랬대요. 

 

 

그런데 이 자매가 마음이 약하니까 못하고 두들겨 맞고, 두들겨 맞고 그러다가 어느 날 정말 못 참겠더래요. 그래서 어느 날 남편이 들어와 가지고 또 술 먹고 칼을 빼들고 뭐라고 그러려고 그러는데 이 자매가 칼을 잡고서 "너 죽고 나 죽자!" 그랬대요. 이 남편이 어떻게 했을까요? 남편이 "너도 그런 거 할 줄 아냐?" 그리고 그다음부터 절대로 부인을 때리지도 않고 칼도 안 빼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분노라는 것이 자기방어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죠. 동네 개들 중에 우리가 소위  똥개라고 부르는 애들 있잖아요. 뭐 건드려도 와 가지고 깽깽거리면서 이렇게 반갑다고 꼬리 흔들면서 그러고. 이놈이 차도 그냥 좋다고 그러고, 저놈이 차도 꼬리 흔드는 애들이 있어요. 그렇게 착해 빠진 강아지들은 늘 얻어터져요. 애들이 돌 던지고. 그런데 이놈이 어느 날 돌 던지는 놈 손등을 꽉 물어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아, 절대로 돌 못 던집니다. 예, 사람이나 동물이나 사는 방법은 똑같은 거예요.

 

일정량의 분노를 갖고 있으면 날 못 건드립니다. 그런데 이게 하나도 없으면 이놈 저놈이 와서 다 건드려요. 그런데 우리는 착각하기를 아,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셨다. 어린 양처럼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반항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셨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된다. 마음에 분노가 없어야 된다고 이렇게 배워서 "아, 천주교 신자는 무조건 참고 마음에 분노를 없애야 돼!"라고 그렇게 믿고 살아오셨다는 말이죠. 그런데 그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거죠.

 

천주교 신자들도 성깔이 있다는 걸 좀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것은 천주교 신자가 화를내면 사람들이 그런대요. "천주교인들이 왜 저래!" 천주교는 사람이 아닌가? 당연히 화낼 줄 알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분노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분노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존의 도구라고 이렇게 생각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 분노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생존의 도구 중 하나이다.

* 마음 안에 일어나는 분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일어나는 분노에 대해서 불편해 할 필요는 없다.

 

아마 이 방송을 보고 계신 연세가 많으신 신자분들 같은 경우에 제가 해드리는 얘기가 이렇게 아, 그대로 될까?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 계실지 모르는데, 그래도 됩니다. 화를 내고 사셔도 괜찮습니다. 마음 안에 분노를 좀 일정량을 갖고 사셔야지 살맛 나는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분노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짧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다음 주의 강의 내용도 역시 분노라는 것이 짧은 시간에 다 설명할 수가 있는 거는 아니죠.  분노에 대해서만 얘기를 하려고 해도 몇 개월을 해야 되는데 다음 주 강의 내용은 가끔 어떤 분들이 아, 나는 마음에 분노가 없다. 그런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기도를 해서 나는 마음의 분노를 다 없앴다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정말일까?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한 번 이렇게 식별을 해보는 그런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오늘 저녁에 집에 가셔 가지고 자기 자신을 한 번 돌아보세요. 내가 내 감정을 갖다 제대로 표현했을 때와 그

거를 표현하지 못하고 참았을 때에 사람들이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하는 것을 한 번 돌아보신다면 분노가

왜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될 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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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홍성남신부님, 분노가 왜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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