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월 11일[(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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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1-11 | 조회수1,26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1월 11일 토요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말씀의초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시다. 우리는 그분 안에 있다(제1독서). 요한은 예수님께서는 커지셔야 하고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화답송◎ 시편 149,1ㄴㄷ-2.3- 4.5-6ㄱ과 9ㄴ(◎ 4ㄱ) 새로운 노래. 충실한 이들의 모임에서 찬양 노래 불러라.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고, 시온의 아들들은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손북 치고 비파 타며 찬미 노래 드려라.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시고, 가난한 이들을 구원하여 높이신다.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그 자리에서 환호하여라. 그들은 목청껏 하느님을 찬송하리라. 그분께 충실한 모든 이에게 영광이어라. ◎ 주님은 당신 백성을 좋아하신다. ◎복음환호송◎ 마태 4,16 큰 빛을 보았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네.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복음입니다. 3,22-30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나는 작아져야 한다.” ◎영성체송◎ 요한 1,16 참조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 ◎오늘의묵상◎ 공관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사라집니다. 요한이 세례를 중심으로 함께 등장합니다. 대개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하게 합니다. 뜻이 달라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경우입니다. 후자는 함께하는 것이 경쟁이나 대립, 또는 질투의 감정을 불러오고는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어떤 경우일까요?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와야 할 곳은 ‘여기’이지, 예수님께서 계시는 ‘저기’가 아니라는 그들의 시선에서 경쟁과 질투로 얼룩진 적개심마저 느껴집니다. 질타하기보다, ‘기쁨’을 이야기합니다. 이 기쁨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결합을 상징하는 혼인에 빗대어 해석되기도 합니다만(호세 2,19-20; 에페 5,31-32 참조), 오늘 복음은 신랑과 신부의 결합보다 신랑의 등장에 대한 기쁨에 집중합니다. 등장을 기뻐합니다. 유다 전통에 따르면, 신랑의 친구 가운데 믿을 만한 친구 둘이 신랑과 신부의 결합을 지켜봅니다.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선포와 같습니다.신랑의 친구로서 요한은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만나 한 몸을 이루는 친교를 기뻐하는 셈입니다. 서로가 하나 되는 것을 거부하고 한자리에 있는 것조차 불편해하는 오늘의 세태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보여 주는 경쟁의 결과입니다. 하느님의 일에서조차 경쟁할 필요가 있을까요?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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