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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1.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1 조회수2,029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1월 11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

제1독서 1요한 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복음 요한 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2,000년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인간의 집중력에 대해 실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평균 인간이 집중력을

지속하는 시간을 12초라고 발표했습니다.

참고로 금붕어가 집중력을 지속하는

시간이 9초라고 합니다. 비록 3초의

차이지만 그래도 인간의 집중력이

금붕어보다는 낫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2013년의 다시 했던 실험을 통해

집중력 수치가 8초로 떨어진 것입니다.

 금붕어보다도 못한 모습입니다.
대화하면서도 계속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해서 제대로 생활하기

힘들어하는 모습, 특별히 할 일 없으면

인터넷에 들어가 그냥 시간을 소비하는

모습 등을 떠올리면 인간의 집중력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신앙인 안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얼마나집중을 하고 있나요?

기도할 때, 미사를 봉헌할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온전히 집중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다른 생각들이 주님께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집중에 방해하는 것의 대부분은

 이 세상의 것입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에 관한 생각들이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힘들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요한의 제자들이

 흥분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 세례를 주었고 그리스도께서도

 세례를 주셨습니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생겼고,

요한에게도 사람들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자기에게 온 사람들을

예수님께 세례를 받으라고 보냅니다.

그에 반해 그리스도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요한에게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점이 요한의 제자들이

화났던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요.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바로 세상의 관점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입니다.

요한의 세력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불만,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던 예수님의 세력이 더 커지고

있다는 불만 등으로 스승인 요한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주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은 주님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뿐이고,

 주님은 커지시고 자신은

작아져야 한다고 말입니다.

세상이 아닌 주님께 온전히

집중하고 있기에 겸손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주님께

집중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나를 슬럼프에 빠지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안 된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박찬호)

의미 찾기

소중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 안에 어떤 기억이 담겨 있을 때입니다.
제게 있어 특별한 무엇은 ‘수단’입니다.

이 수단은 신학교 3학년 때

 착의식을 앞두고 맞춘 것입니다.

벌써 25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이 수단을 입고 있습니다.

 25년 전의 몸보다 훨씬 비대해진

지금의 몸이지만, 당시에 워낙

크게 맞춰서인지 지금 딱 맞습니다.
낡고 오래된 수단이지만, 불 쬐다가

태워서 기운 자국도 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수단입니다.

왜냐하면, 신부 되기 전의 첫 마음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누구는 오래되었으니 이제 버릴 때도

 되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이 안에 소중한 의미가

담겨 있기에 버릴 수 없는

특별한 것이 되었습니다.

다른 옷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의미의 옷입니다.
옷도 이렇다면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 역시 의미를 찾으면 너무나도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때가 많습니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대상으로만 생각하면 절대로

의미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때 그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커지시고 자신은 작아져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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