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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윗 시리즈 7편 ( 시련은 위장된 축복일 수 있다.)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3 조회수1,792 추천수0 반대(0) 신고

이 세상에는 수많는 종교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아니면 이 세상의 삶 다음 생이 있지 않을까 해서 하는 등 많은 경우의 수가 있을 겁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해서든 이유야 어찌 됐든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 기대를 하며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겁니다. 근데 막상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처음 생각했던 거랑 다르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오히려 평안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괜한 고생을 하는 거 아닌지 하고 후회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고민을 한 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솔직히 고백하면 저를 인도한 자매님이 원망스러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악의적인 원망이 아니고요 그냥 힘들다 보니 푸념 섞인 그런 원망입니다.

 

사람은 원래 간사한 존재입니다. 어떤 때에는 마음속으로 저를 천주교로 인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해서 자매님께 식사 대접도 하고 나름 도움을 드리기도 하고 했지만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고난이 없고 항상 형통할 날만 있는 게 아니고 오히려 비바람 같은 고난이 지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세례를 받고 나서는 호랑이 꼬리를 마치 잡은 거랑 진배 없는 신세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바로 그 꼬리는 하느님의 손과도 같을 겁니다. 놓을 수도 없고 잡자니 힘드는 겁니다. 놓으면 죽게 되고 잡고 있으려니 힘들고 해서 그렇습니다. 재미있게 표현하자면 그냥 쥐약 먹은 것입니다. 결국 자기 무덤 자기가 파는 형국입니다.

 

근데 이 무덤은 세상적인 시각으로는 무덤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천국의 문을 노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게 고난의 문으로 보이지만 언젠가는 그게 천국의 문이였다는 걸 알게 되면 묵시록에서도 표현이 되어 있지만 그땐 정말 기뻐 날뛸 겁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의 힘든 시련을 보지 않고 그때의 기쁨을 생각하고 희망하며 가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걸 원하실 겁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를 한번 잠시 볼까요?

 

이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이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찾아서 자기 나름의 가치관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운명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하는 증언을 보면 우리는 하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고통과 시련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에 대한 해석을 올바로 가진다면 힘든 신앙생활이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인내하고 견뎌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고난 뒤에 하느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요.

 

지금은 신앙이 잘 바로 서지 않아서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언젠가 반석 같은 신앙으로 자리매김 한다면 가슴으로 그걸 이해하는 날이 오게 될 겁니다. 바로 그런 게 은총이 될 겁니다.

 

다윗에게도 이런 시련과 고난이 너무나도 많이 찾아왔습니다. 다윗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런 게 은총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번민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다윗은 이런 고통의 시간을 바라보는 눈이 보통 여느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바로 의인에게는 고난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반드시 그런 고난 뒤에는 하느님께서 구해주실 거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게 하느님의 원대한 계속 속에 자신이 그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역사에 한 페이지이다 라고 생각을 했을 겁니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사울왕의 증오로 하루아침에 그만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목숨이 뭔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적국으로 투항하는 그런 일까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적국도 적의 장수가 투항한 것을 이용해 뭔가 이점을 얻을 셈으로 이걸 수용했지만 어느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다 보니 그런 다윗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다윗은 또 한 번 살아남기 위해 심지어 미친 사람처럼 쇼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는 그런 추한 모습까지 보이면서까지 하면서 한때는 명장이라는 위치에까지 있었지만 이런 명예는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습니다. 다윗이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희귀한 소식까지 온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다윗의 신세가 처량하기 그지없는 그런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윗은 뭔가를 깨닫게 됩니다.

 

의인에게는 고난과 시련을 많이 겪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자신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위장해서 위기는 모면을 했지만 하느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그나마 자신이 기지를 발휘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주신 것도 하나의 은혜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보통 평범한 사람 같으면 이런 상황을 은혜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자신에게 이런 위기가 닥치면 하느님을 바라보기보다는 인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낙심하고 하느님을 등질 생각만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이런 부분에 대해 이글을 쓰면서 많이 반성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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