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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홍성남 신부님 / 제4회 사람 안에 정말 분노가 없는 것일까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4 조회수1,875 추천수3 반대(0) 신고

홍성남 신부님 행복한 신앙


 


제4회 사람 안에 정말 분노가 없는 것일까?


■ 지난 강의 ... 

 

 

분노는 죄가 아니다. 분노를 죄라 생각해서 고해성사 보시는 분이 많다. 분노는 감정이지 죄는 아니다. 분노가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해서 없애 달라는 기도하시는 분도 많다. 그러나 분노는 없애지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분노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생존의 도구다.


■ 오늘 강의 ... 사람 안에 정말 분노가 없는 것일까 확인하는 시간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한 불편한 감정이 안 생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배설물하고 비슷하다. 배설을 하게 만드는 원인이 무엇인가? 먹는 행위를 통해서 소화가 돼서 배설물이 나온다는 것이죠. 내가 죽을 때까지 무엇을 먹는 한 배설물은 늘 나오기 마련이라는 것. 아무것도 안 먹으면 안 나오죠. 그런데 우리가 안 먹고 살 수 있나요? 뭐라고 먹어야지 사람은 살 수 있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죽을 때까지 살기 위해서 무리는 무엇인 가를 먹고 먹었으면 일단은 소화가 된 나머지 부분이 이제 배설물로 되어서 나옵니다.

 

음식과 몸의 관계가 이런 관계에 있는 것처럼 분노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이 살면서 다른 사람을 안 만날 수가 없잖아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요. 만나면 이렇게 서로 쳐다보죠. 쳐다보면 감정이라는 게 생기잖아요. 내 마음 안이 굉장히 다이내믹한 감정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내 마음 안이 굉장히 복잡한 감정의 덩어리인데 이게 굉장히 예민해요. 또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사람도 그렇다는 거예요.

 

아, 저 사람 속 되게 편해 보여! 그런 사람들도 다 감정이 예민한 상태에 있어요. 그러니까 예민한 감정끼리 딱 마주치면 정전기가 발생한다는 거죠. 서로 만났을 때. 그런데 내가 상대방을 만났는데 아, 저 사람이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야. 그러면 내 마음 안에 어떤 감정이 생길까요? 호감, 사랑, 애정 이런 정말 알록달록한 무지개 같은 감정들이 발생을 합니다.

 

그런데 원수 같은 놈을 만나면 뭐가 생길까요? 마음 안에 짜증과 분노와 막 이런 것들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늘 좋은 사람만 만날 수 없잖아요. 싫은 사람도 만나야 되고 좋은 사람도 만나야 되고, 그거는 성당에 나와서 신앙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성당에 나왔다고 해서 다 내 마음에 들고 나를 만나면 다 환영해 주고 그러는 건 아니거든요.

 

성당도 바깥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다 예민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그러니까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싫은 사람 있고, 좋은 사람 있고 그럴 수밖에 없단 말이죠. 그러니까 내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싫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 마음 안에 분노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는 거죠. 나는 내 마음 안에 분노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마 사람을 안 만나고 있다는 얘기하고 똑같아요.

 

내 마음 안에 분노가 없다는 말은 사실은 아, 나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그 얘기 하고 똑같아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말로 도의 경지에 들어서 가지고 내 마음 안에 분노가 전부 사라졌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확인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그분들은 따로 취급을 하고 우리는 그렇게 거룩한 게 아니고, 건강한 사람들도 아니고, 마음에 상처를 받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분노가 있다는 거를 전제로 한다는 거죠.

 

 

■ 사람의 마음 안에 분노가 없을 수가 없는 이유 설명


   ㅡ 사람의 마음은 얽혀 있는 실타래와 같다.

사람의 마음 안에 분노가 없을 수가 없는 이유를 설명을 드리면, 사람의 마음 자체가 편한 상태가 아니라는 거죠. 엉킨 실타래 같다고 얘기를 합니다. 걸리버 여행기 책 보셨죠? 영화로도 나오고. 걸리버가 소인국을 가지 않습니까. 난쟁이들이 있는데. 배가 풍랑에 부서져 가지고 바닷가에 걸리버가 갔는데 깨보니까 줄로 다 묶어 놨더라. 그런 얘기들이 있죠. 누워 있다 눈을 떠 보니까 줄로 다 묶어 놓은 거예요. 다리까지. 이 걸리버의 모습이 사실은 우리 마음의 모습을 굉장히 잘 표현한 거예요.


여러분들 어떠세요? 걸리는 거 없으세요? 나를 묶어 놓은 거 하나도 없어요? 다 있죠. 나를 묶어 놓은 게 있다는 걸 제일 절실하게 깨달을 때가 여행 갈 때인데 어디 여행 가지죠. 그럴 때 제일 먼저 걸리는 게 뭡니까? 애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그거 말고도 많단 말이죠. 사람을 묶는 것들 중에서 외적 조건이 있고 내적 조건들이 있습니다. 외적 조건들이 관계예요.

 

내가 어디를 떠나려고 하면 나와 관계 맺은 사람들이 전부 걸리는 거예요. 여행 갔다 돌아올 때는 어떻습니까? 선물을 사야 돼요. 그럼 누구한테 선물을 줘요? 나하고 관계 맺는 사람들. 관계라는 게 줄로 묶였다는 거거든요. 나하고 뭔가 줄이 묶여 있는 사람들한테 뭔가 다 줘야 돼요. 그런데 그걸 갖다 어떤 자매님 보니까 아예 명단을 적어 놓고 다니시더군요. 명단 적고 또 급수가 있더라고요. 상급 반은 가격이 비싸고 밑으로 내려가면서 가격이 좀 그렇고 ^^* 그런데 그분이 그걸 갖고 다니면서 여행 기간 내내 고민을 하는 거예요. 그 물건 사는 거에 대해서.

 

그런데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정말 이렇게 사람의 삶이라는 게 걸리버 하고 정말 비슷하구나. 걸리버를 묶은 줄이 어떤 거는 가는 줄이 있지만 어떤 거는 굵은 줄이 있단 말이죠. 우리들도 굵은 줄과 가는 줄에 묶여서 살아요. 나를 묶고 있는 가장 굵은 줄이 뭘까요? 여러분이 가장 신경 많이 쓰이는 사람. 남편이? 어, 이거 천지가 개벽할 일이 ^^* 대게는 이제 애들 그래요. 남편이 1순위인 분은 지금까지 강의하면서 처음 듣는데. 아, 그 남편 행복하시겠습니다. ^^*

 

지금 내가 제일 관심 있어 하는 그 사람이 사실은 나를 갖다 제일 많이 묶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다른 거를 못한단 말이죠. 이제 그걸 바깥쪽 윤리적인 용어로 하면 가족 관계 원만함, 좋게 포장해서 얘기를 하는데 실제로 내가 움직이는데 제일 걸림돌이 되는 사람이 나하고 제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끊기가 어렵다는 거죠. 내가 움직이려고 해도 그런 줄들이 다 묶여 있는 데다가 밖으로만 묶인 게 아니라 안에서도 이렇게 줄들이 있단 말이죠. 내적 조건들이 있어요.


그중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이제 콤플렉스들이죠. 콤플렉스라는 건 어릴 때부터 어른들이 나에게 여러 가지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그러면 그 말들이 씨앗처럼 내 머릿속에 들어와 가지고 얘네들이 그 안에서 커요. 그리고 나중에 이게 덩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콤플렉스가 되는데, 이게 좋은 콤플렉스가 있고, 병적인 콤플렉스가 있어요.

 

그러니까 좋은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건강한 삶을 사는데, 병적인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은 열등감, 지나친 우월감, 죄책 콤플렉스 이런 걸 가진 사람들은 평생 굉장히 힘들게 살아요. 그래서 이렇게 병적인 콤플렉스를 갖고 사는 사람들을 일컬어서 속 말로 꼴통이라고 하거든요. ^^* 콤플렉스가 그 사람을 통제하게 하는데 그 행동하고 나면 "아, 저거 꼴통이야!" 그러는데 그 꼴통의 원어가 바로 콤플렉스라는 거죠. 병적인 콤플렉스를 가졌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콤플렉스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단 말이죠. 여러 가지 콤플렉스 덩어리들이 내 몸속에 돌덩어리들 같이 이렇게 들어와 있어요. 무겁죠. 어떤 사람은 머리에 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어깨에 지고 있고, 여러 군데 지고 있는데 이 콤플렉스만 해도 무거운데 또 하나가 뭐냐 하면 상처가 있어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상처를 안 받고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아무리 공주같이 대접을 받는다고 그래도 상처는 다 받고 살죠.

 

부부지간에도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고, 또 자식과 부지간에도 그렇잖아요. 신부들과 신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말을 주고받다 상처를 받고 그렇습니다. 그런 상처들이 내 마음 안에 있어요.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이런 얘기를 합니다. "사람은 평생 한 사람의 걸리버처럼 산다." 인생에 부침(浮沈)이 많다. 일단. 인생을 살아가는데 순풍에 돗 단 듯이 이렇게 사는 게 아니라, 역풍을 만나기도 하고, 태풍을 만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맞으며 산다. 또 가느다란 줄, 굵은 줄로 묶여서 산다. 또 열등감, 좌절, 불안 등의 여러 가지 콤플렉스 덩어리를 안고 산다. 사람의 마음은 그래서 엉킨 실타래 같다 그랬어요.

 

 

그걸 그림으로 그린 게 이겁니다. 이제 쑥스럽게 제 책 자랑을 해야 되는데, 여기 보시면 ㅅ ㅆ 이 있잖아요. 이게 눈썹입니다. 0 이게 입입니다. 웃는 얼굴이에요. 그런데 고 뒤에 하얗게 뭐가 뭉친 게 있죠. 그게 콤플렉스 덩어리예요. 내 마음 안이 그렇게 복잡하다는, 엉킨 실타래 같다는 거죠. 그래서 얼굴은 웃고 있는데 머릿속은 복잡해 가지고 늘 열받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뻘건색으로 해 놨습니다.^^* 그렇게 해 놨는데 책이 나가자마자 일본 도색 잡지냐? 제목이 벗어야 산다는데 뭘 벗기란 말이냐? 이렇게 나오자마자 지금까지 욕을 먹고 있어요.

 

 

옛날 시골 아주머니들 보면 길 가는데 양손에 애 손잡고, 머리에 짐 얹고, 허리에 띠를 둘렀는데 띠 끝에 소가 묶여 있어요.^^* 그런데 이 소가 따라오는 게 아니라 반대로 가려고 그럽니다. ^^* 고집스럽게.이런 그림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 그림이 아까 설명드린 것을 아주 요약한 그림이에요.


머리에 이고 있는 게 콤플렉스입니다. 콤플렉스가 심하면 머리가 아프거든요. 그다음에 양손에 있는 건 나 하고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 양쪽으로다. 싫은 사람, 좋은 사람. 그런데 그 사람들도 나하고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내가 돌봐야 되는. 그래서 손 잡고 있어야 되고. 이 세 가지만 해도 힘든데 문제는 내 마음 안에 어른스러운 내 마음 말고 굉장히 아이 같은 마음이 있어요. 내가 이리 가자고 그러면 저리 튀어나가는, 안 끌려가려고 반대로 가요. 그걸 이제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고.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이다 하는 것이죠.

 

이렇게 마음이 이런 상태에 있으니까 늘 우리는 어떻게 보면 인생을 살면서 기본적으로 지쳐 있어요. 이 지친 상태에서 나하고 싫은 사람을 만나면 당연히 화가 난다는 거죠. 만약에 내가 분노가 하나도 없다. 평상심을 갖고 산다는 거는 양손에 잡은 거와 머리에 이고 있는 거, 이게 다 없다는 거예요. 나 혼자 정말 홀가분하게 됐다. 이런 경지가 있을 수 있을까? 저는 늘 의아해요. 그렇게 주장하는 분이 정말 진실을 말하는 걸까?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도 분노가 있다고 그래요. 세상이 내 뜻대로 안 된다고. 그래서 인간적인 노력으로 그런 경지에 정말 들어갈 수 있을까? 어떨 때는 나는 화가 하나도 없어. 그런 분들 찾아가서 한 번 찔러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들이 들 때도 있습니다.

 

* 마음 안에 일어나는 분노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므로 일어나는 분노에 대해서 불편해할 필요가 없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편안해진다.


"나는 화가 하나도 없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 중에서 가끔 이렇게 사람을 만날 때마다 빵끗빵끗 웃는 분들이 계세요. 누구한테나 다 친절하게 대하고, 늘 웃고 그러니까 화난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분들을 보면 꼭 얼굴에 가면을 쓴 느낌이 들어요. 이 가면이라는 게 persona(페르소나), 희랍어로 가면이란 뜻이에요. 이런 분들이 꼭 웃는 가면을 쓴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이런 분들 만나면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아요. 왜요? 뭔지 모르지만 뒤끝이 있는 거 같아요.^^*  "난, 화가 없어요." 그런 분들은 화를 갖다 이쪽(아래)으로 눌러 놨다는 거예요. 눌러 놓은 화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느끼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정말 이 사람이 도인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내가 그 사람을 만났을 때 정말 편안하냐, 아니냐로 판단하시면 돼요.

 

만났는데 뭔가 느낌이 불편해. 그러면 그 사람이 가짜인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경지에 들어가면 좋은데 그냥 우리는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그냥 적정량의 분노를 갖고 어떤 때는 화를 내고, 어떤 때는 깔깔대고 웃고 그렇게 사는 것이 가장 이렇게 건강하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해야 되는 게 자기 분노를 인정하셔야 돼요. 아, 내가 화가 나 있구나. 그걸 인정하는 훈련을 먼저 하셔야 돼요. 그리고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내가 이해를 하셔야 돼요. 그냥 아, 화를 냈다고 고해성사 볼 일이 아니라, 내가 왜 화를 냈는지, 내 안에 있는 화라는 감정하고 대화를 하고 이해를 해 주셔야 됩니다. 그게 내적 성장의 시작이라고 하죠.

 

*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편안해진다.

* 분노가 어디에서 오는지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내적 성장이 시작된다.


만약에 그런 것을 하지 않게 되면, 아 나는 내 마음속에 배설물이 하나도 없어. 그리고 화장실에 한 번도 안 간 사람하고 똑같은 현상이 생겨요. 음식을 먹었는데 화장실에 안 가면 어떻게 될까요? 변비가 걸리죠. 나중에 배설물이 굳어 가지고 나오지 않죠. 배는 부글부글하고. 그러니 편한 얼굴로 못 다닌단 말이죠. 그래서 화는 생기는 대로 배설하면 되는 것이고, 화가 있다는 걸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고, 그 적정량의 화는 또 필요하다는 거를 이해를 하시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거를 말씀드립니다.

 

* 분노를 적절하게 배설하지 않으면 속에서 썩어버리게 된다.


이 분노라는 것이 신앙생활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음 주에도 분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음 주 주제는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이 진실일까? 이거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집에 가셔서 정말 참고 살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인가에 대해서 좀 같이 생각해 보시고 다음 주 한 번 각자 가진 생각을 나눠 보셨으면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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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홍성남신부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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