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1월 14일[(녹) 연중 제1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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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1-14 | 조회수1,43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0년 1월 14일 화요일 [(녹) 연중 제1주간 화요일] 말씀의초대 엘리 사제는 한나의 진실한 마음을 보고 안심하고 돌아가라며 위로한다(제1독서). 사람들은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진 예수님의 가르침에 몹시 놀란다. ◎제1독서◎ <주님께서 한나를 기억해 주셨기에 한나는 사무엘을 낳았다.> 말씀입니다. 1,9-20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그때 엘리 사제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는 그를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이렇게 대답하였다.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같이하자 주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드려 얻었다.” 하면서,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 ◎화답송◎ 1사무 2,1.4-5.6-7.8ㄱㄴㄷㄹ (◎ 1ㄱ 참조)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주님 안에서 제 얼굴을 높이 드나이다. 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에, 제 입은 원수들을 비웃나이다. ◎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차게 일어선다. 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 배고픈 이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 아이 못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 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저승으로 내리기도 저승에서 올리기도 하신다. 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일으켜 세우시고, 가난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높이시어, 존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복음환호송◎ 1테살 2,13 참조 받아들이지 말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라. ◎복음◎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복음입니다. 1,21ㄴ-28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 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영성체송◎ 시편 36(35),10 참조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회당과 더러운 영의 만남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믿고 깨닫는 공간인 회당에 더러운 영에 짓눌린 이가 들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깨뜨리고 있습니다.함께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함께해서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다. 어울리다 보면, 낯선 이들에 대한 근거 없는 적대감은 이유 없이 커져 갑니다. 더러워서가 아니라, 더럽다고 여기는 세상 사람들의 이유 없는 적대감에 희생되어 왔습니다. 분리하십니다. 더러운 영의 말은 이러하였습니다.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 더러운 영입니다. 날카롭다면 우리는 더러운 영에 취하여 사람다움을 잃어 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이 사람다움의 회복이었고, 사람다움은 이 세상에 함께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무한한 자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사상의 다툼들, 그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제 목소리 하나 내지도 못한 채 사람 꼴을 잃어 가는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입니다.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공간(회당)을, 낯선 ‘코드’도 함께 나누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넓디넓은 공간으로 만들 줄 아는 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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