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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1.1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14 조회수2,088 추천수8 반대(0) 신고

 


2020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1사무 1,9-20

그 무렵 9 실로에서 음식을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섰다.

 그때 엘리 사제는 주님의 성전

문설주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10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면서 주님께 기도하였다.

 11 그는 서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만군의 주님, 이 여종의 가련한

 모습을 눈여겨보시고 저를

기억하신다면, 그리하여 당신

여종을 잊지 않으시고 당신

여종에게 아들 하나만 허락해

주신다면, 그 아이를 한평생 주님께

바치고 그 아이의 머리에

면도칼을 대지 않겠습니다.”
12 한나가 주님 앞에서 오래도록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 엘리는

그의 입을 지켜보고 있었다.

 13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는 그를

 술 취한 여자로 생각하고

14 그를 나무라며, “언제까지

이렇게 술에 취해 있을 참이오?

술 좀 깨시오!” 하고 말하였다.
15 그러자 한나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6 그러니 당신 여종을 좋지 않은

여자로 여기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너무 괴롭고 분해서 이제껏

하소연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17 그러자 엘리가 “안심하고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당신이 드린 청을 들어주실

것이오.” 하고 대답하였다.
18 한나는 “나리께서 당신 여종을

 너그럽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는 그길로 가서 음식을 먹었다.

 그의 얼굴이 더 이상

전과 같이 어둡지 않았다.
19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일찍

 일어나 주님께 예배를 드리고

라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엘카나가 아내 한나와 잠자리를

같이하자 주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다.

 20 때가 되자 한나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한나는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다.

복음 마르 1,21ㄴ-28

카파르나움에서,

 21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22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며

24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2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26 더러운 영은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갔다.
27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새롭고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저이가 더러운 영들에게 명령하니

그것들도 복종하는구나.”

 하며 서로 물어보았다.

28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곧바로 갈릴래아 주변 모든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어렸을 때 제일 싫었던 것은

성당 가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어린이 미사는

 주일 아침 9시였는데,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만화영화 ‘은하철도 999’를

방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화를 보고 가면 성당 미사에

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본 적이 없고 항상

1부가 끝나는 30분에 성당으로

뛰어가야만 했습니다. 지금처럼

지난 방송 보기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성당으로 가야 했던 것이지요.

이러니 어떻게 성당 가는 것이

 좋았겠습니까?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볼 수 없으니 말이지요.
그래도 성당에 가고 나서는

너무 좋았습니다. 미사 하는 것이

 좋았고, 미사 후에 친구들과 함께

노는 것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만화영화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당으로 가야 할 때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싫었습니다.

이렇게 싫었음에도 열심히 성당에

다니다 보니 믿음이 생겼고, 신학교에

들어가 지금 신부로 살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하십니다. 성당에 가면

정말로 좋다고 하십니다.

문제는 성당에 가기까지의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성당 가기가 왜 이렇게 힘든지,

 왜 이렇게 바쁜 일들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은 이렇게

사랑하는 다른 것들을 뒤로할 때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세상 것이 더 먼저가 되면서

주님이 항상 뒤에 있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틀린 말입니까? 아니지요.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라고

꾸짖으십니다. 이 꾸짖음의

이유는 그리스도를 고백했지만,

그 안에 사랑이 없었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말하고 있지만, 사랑이

없으므로 주님의 꾸짖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이 좋으신 분이라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랑

그 자체이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아닌 세상의 다

른 것을 더 사랑하면서 말하고

 있다면 주님께 기쁨을 드릴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역시 주님의

꾸짖음에서 제외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만 년 동안이나

살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그대가 살 수 있는 시간은

그대가 어찌할 수 있는게 아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3개월만 참아보십시오

저는 수영을

신부가 된 후에야 배웠습니다.

그러니까 30대가 되어서 처음으로

 수영을 배운 것입니다.

사실, 이 나이에 수영을 새롭게

배운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수영을 배우고자 한다면,

하루라도 빨리 배우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근처 수영장에 등록했습니다.
첫날, 너무 어색했습니다.

특히 제 또래의 남자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킥보드에 몸을

 맡겨서 ‘음파’를 반복하며

발장구치는 것도 얼마나

민망했는지 모릅니다.

 첫날의 수업을 모두 마치고서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겨우 하루를 마치고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후, 3개월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영장을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실력이

향상하지 않아서 걱정되었지만,

어느 시간이 지나자 실력은 향상되었고,

자유형, 평형, 배영, 접영까지 배우면서

그 재미가 점점 커졌습니다.
이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 딱 3개월만

참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재미가 있고, 만족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 신앙도

그렇다고 봅니다.

처음 성당에 나오신 분들은

상당히 낯설어하십니다.

왜 이렇게 앉았다

일어났다를 시키는지, 미사는

왜 이렇게 지루한지, 교리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그러나

딱 3개월만 참아보십시오.

분명히 그 안에서 기쁨을 얻고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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