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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윗 시리즈 13편( 아비가일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게 무엇일까?)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0 조회수810 추천수0 반대(0) 신고

이전 다윗 이야기에서 보시듯이 사람이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과 만날 수도 있고, 자기의 마음에는 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만남을 가져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익을 가져다주는 모임은 유익을 가져다주어서 좋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유익을 주지 않은 만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참 고민이 되는 딜레마입니다. 그러하지만 생각의 관점을 좀 달리 해보면 해결책이라고까지는 하긴 좀 그렇지만 뭔가 답이 있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번 잠시 보시죠.

 

어린 왕자가 어느 노인에게 불쑥 나타납니다. 어린 왕자는 예의에 어긋난 것이 아닐까 하고 정식으로 다시 인사를 깍듯이 합니다. 노인은 어린왕자를 스승으로 여긴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 왕자는 좀 불편했습니다. 불편하게 생각하니 노인은 어린왕자에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자신의 스승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지나가는 바람 한 점도 날아가는 새 한 마리도 자신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분은 학생과 같다고 말을 합니다. 노인은 말을 합니다. 자신은 평생 배우는 학생이라고 말입니다.

 

이 세상은 좋은 스승들이 가득한 학습의 전당 같은 곳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대화 중에도 배우고, 책을 통해서도 배우고, 풀 한 포기에서도 배우며 삼라마상 모든 우주에 어느 하나 스승이 되지 않는 게 없다고 말을 합니다. 이에 어린왕자가 궁금해 하며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풀에서도 배울 수가 있는지 말입니다. 노인은 말을 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하면 배움은 손님처럼 저절로 찾아온다고 말을 합니다. 배우고자하는 열망의 크기만큼 배울 게 보인다고 합니다. 배울 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불타고 있지 않다는 거랑 똑같다고 말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 이야기처럼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에게서도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자신은 그 사람으로부터도 무언가를 배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이 나의 스승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수도원에서 디다꼬라는 신부님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 성 요한 성인이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내용은 알고 있지만 정확한 표현을 옮기지는 못하겠습니다만 우리가 만약에 살면서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이 보내주신 일종의 천사와 같다는 그런 표현을 하셨습니다.

 

바로 그 천사라는 건 제가 오래됐지만 이해하는 바로는 일종의 그런 사람을 통해서 자신을 수양하는 도구로 삼게 해 줄 그런 의미에서 천사라고 아마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다윗에게는 나발과 아비가일 부부가 어쩌면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삶의 스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먼저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이 없었더라면 자신이 가진 분노의 감정을 그대로 발산을 했더라면 하느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모면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측면에서는 그렇습니다.

 

다윗은 이런 사정을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아비가일 여인의 현명한 생각에 탄복을 표시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다윗은 성경 속에 나오는 전체 맥락에서 보면 항상 자신의 갈 길을 하느님께 먼저 묻고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근데 나발에게 도움을 청했다가 나발이 한 말을 전해 듣고는 바로 이성을 잃어버렸는지 하느님께 여쭤보지도 않고 바로 무장해서 나발을 어떻게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만약 다윗이 모든 사람들이 스승이 될 수가 있다는 생각으로 처신을 했다면 그런 나발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도 나름 자신이 좀 더 현명하게 아비가일처럼 지혜를 구해 어떤 행동을 했더라면 어떤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일단 다윗이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또 하느님께서는 아비가일을 통해 다윗이 지혜롭게 처신할 수 있도록 어떤 환경을 만들어주십니다. 이런 것에 대해 다윗은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자신이 그릇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아비가일을 통해 막아주셨다고 말입니다. 이것도 다윗의 심성이 이게 하느님께서 해 주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에 감사하게 생각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된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다윗도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마음이 열려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게 감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비가일이 가지고 온 음식을 먹으려고 받아들이는 걸 보면 속 좁은 사람은 아니라고 보입니다. 보통 속이 좁으면 알랑한 자존심에 거부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아비가일은 집으로 돌아가 이런 있었던 일을 나발에게 말하고 나중에 열흘이 지나서는 나발이 죽게 됩니다.

 

아무튼 이런 결과를 놓고 보면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하느님께서 나발을 물리쳐주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오늘 이야기 전체를 하나로 요약하자면 살아가면서 어떤 환경을 만나더라도 자신이 그런 환경도 생각을 달리 해서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뭔가 배우려고 하는 자세로 배우려고만 한다면 그 어떤 사람도 나의 스승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별도로 하나 생각해볼 논점은 이런 모든 상황이 모두 이런 식으로 적용이 획일적으로 적용되지 않기에 경우에 따라서는 그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좋은 쪽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해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게 현명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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