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열며(2020.01.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0 조회수1,29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제1독서 1사무 15,16-23

그 무렵 16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그만두십시오.

 간밤에 주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가 사무엘에게 응답하였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17 사무엘이 말하였다.

“임금님은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실지 몰라도,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아니십니까? 주님께서

임금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이스라엘 위에 임금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18 주님께서는 임금님을

내보내시면서 이런 분부를

하셨습니다. ‘가서 저 아말렉

죄인들을 완전히 없애 버려라.

그들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과 싸워라.’

19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전리품에 덤벼들어,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였다.

“저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따라 걸으며, 아말렉 임금

아각은 사로잡고 그 밖의 아말렉

사람들은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

21 다만 군사들이 완전히 없애

버려야 했던 전리품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만 끌고 왔습니다.

그것은 길갈에서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습니다.”
22 그러자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23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

복음 마르 2,18-22

그때에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단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할 수야

 없지 않으냐?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1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중학생 때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우연히 보면서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저를 충격에 빠뜨린 책은 ‘Life’라는

시사 화보 잡지였습니다.

이 잡지 안에는 많은 사진이 있었는데,

그중에 벌거벗은 채 울면서 도망치는

한 소녀의 사진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이 사진은 AP통신의 사진 기사 닉 우드가

찍은 것으로 ‘네이팜탄 소녀 사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진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베트남전의 참상을 전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사진을 보기 전에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 서로 다른 나름의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진을 보고 난 뒤에는

전쟁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또 아무런

죄 없는 아이에게 전쟁이 얼마나 큰 상처로

 다가오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전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실제로 전쟁을 멈출 수가 있었습니다.
알아야 자신의 말과 행동이 변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를

더 알기 위해 인간과 똑같은 육체를

취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주님께서 우리가 변하길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주님을 알고

있을까요? 또 주님을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께 요한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사실 당시의 단식은 하느님을 열심히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실천해야 할

덕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도

또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끊임없이

단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은 단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먹보요 술주정뱅이처럼

먹고 마셨습니다. 단식이란 무엇일까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참된 단식은 악습을 멀리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머리에 재를 뒤집어

쓰고서 인상을 쓰면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단식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보다 자신의 악습을 모두

끊어버리는 삶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참된 단식입니다. 진짜 죽음은

 빵에 굶주리거나 물을 마시지 못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굶주린

 결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단식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때를 맞이하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집중해야 했던

것입니다. 늘 새롭게 다가오시는

주님의 모습에 맞게 살고 있습니까?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당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결심하는 그 순간이다.

(앤서니 라빈스)

의사와 예수님의 차이점

병원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가기 싫은

병원을 뽑으라고 한다면 아마

 ‘치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치료할 때 들리는 기계음은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 병원에 가길

꺼리는 이유로 충분합니다.
작년 말, 예전에 치료했던 치아에

문제가 생겨서 가기 싫은 치과병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 미처 몰랐던 이상이 생긴 치아도

함께 잘 치료할 수가 있었습니다.

몇 주 동안 치료를 하면서, 어느 날 문득

 병자를 치유해주신 예수님에 대한

묵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의사처럼 그저 질병을

제거하심으로써 환자를 낫게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사람들을 만나셨고, 그들 스스로

자신의 상처를 보게 하셨으며,

그들이 오늘 당신과 만남을 통해

 어떻게 나을 수 있는지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주님께서는 구원의

 길로 가는 것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병만을

치유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병으로 인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내게 어떤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지를 묵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안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참 기쁨의 순간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묵상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