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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0 조회수1,621 추천수14 반대(0)

종교(宗敎)라는 한문의 뜻은 으뜸가는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종교(Religion)라는 영어의 뜻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거라고 합니다. 교리와 신학, 교계제도와 교회는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안내하는 이정표입니다. 그 이정표를 따라가기 위해서 이성(理性)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계율과 율법, 전례와 성사는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이정표입니다. 그 이정표를 따라가기 위해서도 이성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운전 교본을 공부한다고 해서 운전을 잘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운전해야 합니다. 요리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요리해야 합니다.

 

교리와 신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으뜸가는 가르침을 다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교리와 신학에서 제시하는 삶을 실천해야 합니다. 전례와 성사에 참여한다고 해서 엉킨 실타래를 다 풀 수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전례와 성사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종교는 깨달음, 해탈, 영성, 침묵, 성찰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각자가 살아야 할 삶입니다. 악보는 연주되지 않으면 그저 종이에 불과합니다. 악보는 목소리로, 악기로 연주가 되어야 비로소 가치가 드러납니다. 연주가 되어야 기쁨, 슬픔, 고통, 사랑, 절망, 희망의 노래와 음악이 됩니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성의 도움으로 많이 알지만,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빈 수레입니다. 율법과 계명을 알지만, 그것을 삶으로 실천하지 않는 종교인 역시 영적으로 빈 수레입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사무엘은 이성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외모와 나이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조각품을 볼 때는 이리저리 살펴봅니다. 혹시 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대할 때는 겉모습만 볼 때가 많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적으로 보셨습니다. 마음을 보셨고, 가능성을 보셨습니다. 마음을 보고,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는 영적인 혜안이 필요합니다.

 

어제 예수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어제 새 포도주는 정결, 청빈, 순명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이 새 부대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이 복음 삼덕이고 향주 삼덕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선포를 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이는 교회의 전통과 가르침을 어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전례와 성사를 소중히 여기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위한 전통과 가르침이니, 사람을 위한 전례와 성사이니 더 잘 지키고, 더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로운 안식일과 새로운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새로운 안식일과 새로운 가르침을 충실하게 지키는 사람이 부활의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행복선언은 우리가 따라야 할 새로운 안식일입니다.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삶,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삶, 자비를 베푸는 삶,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삶, 마음으로 가난한 삶,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삶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시는 안식일을 사는 삶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부르심을 받은 저희의 희망을 알게 하여 주소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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