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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1.22)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2 조회수1,253 추천수5 반대(0) 신고

 


2020년 1월 22일

연중 제2주간 수요일

제1독서 1사무 17,32-33.37.40-51

그 무렵 32 다윗은 사울에게,

 “아무도 저자 때문에 상심해서는

안 됩니다. 임금님의 종인 제가

나가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과

싸우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사울은 다윗을 말렸다.

“너는 저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마주 나가 싸우지 못한단다.

저자는 어렸을 때부터 전사였지만,

너는 아직도 소년이 아니냐?”
37 다윗이 말을 계속하였다.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저를 빼내 주신 주님께서

저 필리스티아 사람의 손에서도

 저를 빼내 주실 것입니다.”

그제야 사울은 다윗에게 허락하였다.

“그러면 가거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빈다.”
40 그러고 나서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손에 들고, 개울가에서

매끄러운 돌멩이 다섯 개를 골라서

 메고 있던 양치기 가방 주머니에

넣은 다음, 손에 무릿매 끈을 들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다가갔다.

41 필리스티아 사람도 방패병을

앞세우고 나서서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42 그런데 필리스티아 사람은

 다윗을 보더니, 그가 볼이

불그레하고 용모가 아름다운

 소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를 업신여겼다.

43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에게

“막대기를 들고 나에게 오다니,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시 다윗에게 말하였다.

 “이리 와라. 내가 너의 몸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45 그러자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에게 이렇게 맞대꾸하였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나는 네가

 모욕한 이스라엘 전열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주님 이름으로 나왔다.

 46 오늘 주님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나야말로 너를 쳐서 머리를

떨어뜨리고,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진영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주겠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계시다는 사실을

 온 세상이 알게 하겠다.

 47 또한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사실도, 여기 모인 온 무리가

이제 알게 하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필리스티아 사람이 다윗을

향하여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도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향하여 전열 쪽으로

날쌔게 달려갔다.

49 그러면서 다윗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 하나를 꺼낸 다음,

무릿매질을 하여 필리스티아

사람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얼굴을 박고 쓰러졌다.
50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 끈과

돌멩이 하나로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누르고 그를 죽였다.

 다윗은 손에 칼도 들지 않고

그를 죽인 것이다.

51 다윗은 달려가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밟고 선 채, 그의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를

죽이고 목을 베었다.

필리스티아인들은

저희 용사가 죽은 것을

 보고 달아났다.

복음 마르 3,1-6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곳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하시고,

 4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그러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5 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6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곧바로 헤로데 당원들과

더불어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꽤 오래전의 일이 생각납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어릴 때의 일을

 말씀하시는데, 이상하게도

 제가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당시의 일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한동네에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동네에 10년 가까이 함께

살았는데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30년 뒤의 우연한 만남으로

 함께 같은 공간에서 그것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분과의 만남을 통해,

누군가와의 만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보고 또 말도 전혀

나누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지금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어떤 만남도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따라서

그 만남이 소중한 만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과의 만남도 그렇다고 봅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믿고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이를 대수롭지

않은 만남으로 생각하기에 때로는

 불평불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또 좋은

만남이 아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만남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요?
유대인의 회당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손이 오그라들었지만,

거기 있던 사람들은 마음이

오그라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곳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지도 않았고,

그분께서 행하시려는 기적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고

 말씀하시지요. 만약 “안식일에

일을 해도 되느냐?”라고 물었다면

그들은 곧바로 율법을 어기려고

한다고 고발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정신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율법은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허용했고, 그래서 사랑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이 오그라들어

있어서, 예수님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오그라들어 있기에

주님과의 만남을 좋은 만남으로

 만들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부정적인 마음, 세상 것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이라면, 마음이 오그라들어

있는 상태가 될 것입니다.

당연히 주님과 좋은 만남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 마음을 쫙 펴고 주님과

좋은 만남을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파울로 코엘료)

천생연분

어느 부부를 만났는데 이들은

스스로 ‘천생연분’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세요?

둘이 그렇게 딱 맞습니까?”
천생연분(天生緣分)이란

하늘이 마련하여 준 인연을

이르는 뜻의 한자성어로

 모든 점에서 딱 맞을 때 이

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아뇨.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달라요.

그래서 좋아요.”
“왜요?” “치킨 먹을 때 이이는

다리를 좋아하고,

 저는 날개를 좋아해요.

그래서 다투지 않게 되고,

이렇게 달라서 좋은 점이 많기에

서로 잘 만났다 싶어요.”
천생연분을 우리는 성격이나 생각이

같아야 할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다르다는 것이 천생연분의

이유도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천생연분이 아닐까요?

혹시 천생연분이 아니라고

고정을 해놓아서 최악의 커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이라는 말에 맞고 틀리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 사랑이 내게 정답입니다.

(원앙새처럼 천생연분을 만드세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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