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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 사도 (마르 3,13-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4 조회수967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124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열두 사도 (마르 3,13-19)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사울을 놓아주며 그에게 자신의 진심을 호소한다. (1사무 24,3-21)

3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쪽으로 갔다.

4 그는 길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5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6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7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이가 아니시냐?”

8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9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1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12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3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5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16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17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18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19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20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해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화답송 시편 57(56),2.3-4.611(2)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제 영혼이 당신께 숨나이다. 재앙이 지나갈 그때까지, 당신 날개 그늘로 피신하나이다.

하느님께, 지극히 높으신 분께, 나를 위하시는 하느님께 부르짖네. 하늘에서 나에게 구원을 보내시어, 나를 짓밟는 자를 부끄럽게 하시리라. 하느님은 자애와 진실을 보내시리라.

하느님, 하늘 높이 오르소서. 당신 영광을 온 땅 위에 드러내소서. 당신의 자애 크시어 하늘에 이르고, 당신의 진실 크시어 구름에 닿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주신다. (마르 3,13-19)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연중 제2주간 금요일 (1사무 24,3-21)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5ㄷ-6).

'겉옷'에 해당하는 '함메일'(hammeil; robe)의 원형 '메일'(meil)대사제나 임금이 입는 긴 겉옷을 가리킨다.

이 명사는 '사울의'에 해당하는 '아셰르 레샤울'(asher leshaul)의 수식을 받는데, 이것은 이 겉옷이 '사울에게 속해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다윗이 '사울에게 속해 있는' 옷자락을 자른 것은 그 옷이 상징하는 '사울에게 속해 있는' 왕권을 잘라 낸 것을 상징한다.

옷을 통한 이런 상징은 이미 사울이 사무엘의 옷자락을 잡다가 찢어진 사건 속에서 드러난 적이 있다.

사무엘은 이 행위가 주님께서 사울의 왕국인 이스라엘을 찢어 내시어 다른 이웃에게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1사무15,27.28).

또한 사무엘서 상권 18장 4절에서 요나탄이 자신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준 사건 역시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가는 것을 인정하는 상징적 행위였다.

여기 본문의 다윗의 행위도 표면적으로는 다윗이 사울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행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이양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잘랐다'에 해당하는 '와이크로트'(waikroth; and cut off)의 원형 '카라트'(karath)는 '자르다'는 뜻으로서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그래서 다윗은 '자른' 사울의 겉옷 자락을 통하여 자신이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다는 무고함의 증거물로 제시한다(1사무24,12).

결국 이 증거물은 사울에게 설득력있게 작용하여 완고하고 사악한 마음을 가졌던 사울의 일시적 회개로 이어지고(1사무24,17-20), 사울이 다윗과 계약을 '맺는' ('카라트'; karath) 놀라운 결과까지 낳는다.

그 계약의 중심 내용이 다윗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더라도 사울의 후손을 '끊어 버리지'('카라트'; karath) 않는다는 것이었다(1사무24,22).

다윗이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잘랐지만, 사울의 후손을 죽여서는 안된다 것이었다.

따라서 본문은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분할될 것을 상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울을 해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치지 않은 다윗의 행위가 하느님의 섭리를 통하여 사울과의 평화의 계약으로 이어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한편 당시 다윗이 사울 모르게 겉옷의 일부를 자를 수 있었던 것은 어두운 굴안이라는 상황 속에서 임금의 겉옷이 길어서 앉아 있을 때에 땅에 끌렸거나 사울이 용변을 보기 위해서 겉옷을 벗어 두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마음이 찔렸다'

임금의 겉옷 자락을 자른 다윗에게 나타난 일차적 반응이다. 여기서 '마음'으로 번역된 '레브'(leb)는 일차적으로 '심장'(1사무18,1), '가슴'(탈출28,29)을 뜻하지만, 더 많은 경우 '지성', '감성'은 물론 전인격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찔렸다'에 해당하는 '와이야크'(waiyak)의 원형 '나카'(naka)'치다'(레위26,24), '매질하다'(신명25,2)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마음을 때리다'라는 의미로 쓰여 '양심의 가책' (conscience-stricken)을 나타내고 있다.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잘랐던 일 자체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의 무고함을 변호하기 위한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지만(1사무24,12),  다윗은 이러한 행동조차도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종에 대한 합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연중 제2주간 금요일 복음(마르3,13~19)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4~15)

마르코 복음 3장 14절'세우시고'에 해당하는 '에포이에센'(epoiesen; he appointed; he ordained)원형 '포이에오'(poieo)사람의 행위와 관련될 경우에는 어떤 물건의 외형을 '짓다', '만들다'(마태17,4) 또는 '일하다', '노동하다'(마태20,12)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이 하느님께 적용되면 무에서 유를 '만들다','창조하다'(마태19,4)는 의미가 된다.

열두 제자를 세우신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마르3,11), 제자들 역시 인위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고 신적 권능에 의해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단어가 계약적 관점에서는 '추종자를 지명하다'는 뜻으로 '어떤 것을 다른 성질의 것으로 만들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그러니까 모나고 고집스럽고 우직한 갈릴래아 출신 어부나 탐욕스러운 세리 등을 당신의 제자로 새롭게 변화시키셔서 복음 전파와 선교라는 막중한 사명을 맡기셨다는 뜻도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단어가 구약적 관점에서는 왕이나 사제에게 직책을 부여하는 표현도 되므로,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사람들을 하느님 나라의 대사로 지명하여 세우신 것이 된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본문 이하 본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목적이 본문의 '함께 지내는 것'과 본문 이후에 나오는 '복음 선포''구마 행위'를 추가하여 세 가지로 나누기도 하지만, 원문에는 '~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 '히나'(hina; that ~may)두 번 사용된 사실을 감안하면, 우선 '예수님 당신과 함께 지내는 것''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하는 것'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 옳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제자 선택의 첫번째 목적당신과 '함께 지내는 것'이다.

참된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자야 된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그분의 사상, 정신, 마음, 인품, 삶의 가치관과 방식, 고난을 비롯한 인생 문제를 다루는 방식, 나아가서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것들을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이 제자됨의 일차적인 목적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선택의 두번 째 목적'파견' '복음 선포를 위해 보내는 것'이다. '그들을 파견하시어' 앞에도 '~하기 위하여'라는 뜻을 가진 '히나'(hina) 접속사가 또 사용되었다.

그리고 '파견하시어' 다음에 나오는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케륏세인'(keryssein; to preach)'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에 해당하는 '에케인'(echein; to have)는 모두 부정사 현재형으로서 '파견' 이유를 나타낸다.

즉 이것은 파견된 제자의 사명으로서 '복음 선포' '구마'를 명령하시고 지적하신 것이다.

여기서 '파견하시어'에 해당하는 '아포스텔레'(apostelle; he might send ~out)'사도'에 해당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의 동사형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제자''예수님께서 전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 안에서 선포하는 자들' 이며, 세상으로 보내어지지 않고 교회 안에서 머물기만 하는 자들은 주님의 참된 제자라고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에 해당하는 '케륏세인'(keryssein; to preach)은 특히 진리와 구원을 '선포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므로, 주님의 제자된 자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음을 나타낸다.

 

이제 파견된 제자들의 두번 째 사명'마귀를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는 것'대한 말씀이 마르코 복음 3장 15절에 나온다.

이 구절은 병행 구절인 마태오 복음 10장 1절, 1장 21~28절, 32절, 3장 10~12절참고하면, 병을 고치는 치유 행위와 관련되거나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마르코 복음 3장 15절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가 단순히 관념적 구원을 강조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질적 변화까지 가져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본문을 통해 한 가지 더 강조되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나라의 확장이란 사탄의 세력의 축소라는 사실이다(에페6,12).

여기서 '마귀들'로 번역된 '타 다이모니아'(ta daimonia; devils; demons)명사 복수형으로서 '사탄'의 졸개들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인들은 타락한 천사로서의 마귀들의 존재를 부정해서도 두려워해서도 안되는데, 그것은 복음의 능력을 소유한 자는 그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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