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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1.2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4 조회수1,349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1사무 24,3-21

그 무렵

3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가려 뽑은 삼천 명을 이끌고,

다윗과 그 부하들을 찾아

‘들염소 바위’ 쪽으로 갔다.

4 그는 길 옆으로 양 우리들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사울은 거기에 들어가서 뒤를 보았다.

그때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그 굴속 깊숙한 곳에 앉아 있었다.

5 부하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몰래 잘랐다.

6 그러고 나자,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자른 탓에 마음이 찔렸다.

7 다윗이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내가 주님의 기름

부음받은이인 나의 주군에게 손을

대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어쨌든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이가 아니시냐?”

8 다윗은 이런 말로 부하들을

꾸짖으며 사울을 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사울은

굴에서 나와 제 길을 갔다.

9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와

 사울 뒤에다 대고,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하고 불렀다.

사울이 돌아다보자, 다윗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다윗이 임금님을 해치려 합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곧이들으십니까? 1

1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 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

12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임금님을 해치거나 배반할 뜻이

 없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살펴

주십시오. 제가 임금님께 죄짓지

않았는데도, 임금님께서는 제

목숨을 빼앗으려고 찾아다니십니다.
13 주님께서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시어, 제가 임금님께 당하는

이 억울함을 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4 ‘악인들에게서 악이 나온다.’는

 옛사람들의 속담도 있으니,

제 손으로는 임금님을 해치지

 않겠습니다.

  15 이스라엘의 임금님께서 누구 뒤를

쫓아 이렇게 나오셨단 말씀입니까?

임금님께서는 누구 뒤를 쫓아다니십니까?

죽은 개 한 마리입니까,

아니면 벼룩 한 마리입니까?

16 주님께서 재판관이 되시어 저와

 임금님 사이를 판가름하셨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송사를 살피시고

판결하시어, 저를 임금님의 손에서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
17 다윗이 사울에게 이런 사연들을

다 말하고 나자, 사울은 “내 아들

다윗아, 이게 정말 네 목소리냐?”

하면서 소리 높여 울었다.

18 사울이 다윗에게 말하였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

 19 주님께서 나를 네 손에 넘겨

주셨는데도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으니,

 네가 얼마나 나에게 잘해 주었는지

오늘 보여 준 것이다.

20 누가 자기 원수를 찾아 놓고

무사히 제 갈 길로 돌려보내겠느냐?

네가 오늘 나에게 이런 일을

준 것을 주님께서 너에게

후하게 갚아 주시기를 바란다.

21 이제야 나는 너야말로 반드시

 임금이 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너의 손에서 일어설 것이다.”

복음 마르 3,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시어,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들을 가까이

부르시니 그들이 그분께 나아왔다.

14 그분께서는 열둘을 세우시고

그들을 사도라 이름하셨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15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18 그리고 안드레아,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19 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작년 12월부터 평화방송

 라디오를 하지 않습니다.

올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방송할 수가 없었고, 동시에

신학교에서의 강의도 올해부터는

할 수 없다고 알려야 했습니다.
제게 있어 큰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두 가지 일을 정리하고 나니

정말로 아쉽습니다. 그러나 이 둘을

 정리해야 여유 있게 새로운 일에 전념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이렇게 결정했지요.
이렇게 방송과 신학교 강의를 하지

못하겠다고 알린 다음,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방송을 위한 장비들이

 책상 위에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고,

신학교 강의 때에 사용하는 물건과

강의를 위한 참고도서들도 제 방 곳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커다란

상자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단지 몇 개 정리했을 뿐인데도 책상 위가

한산하고, 책꽂이에도 빈자리가 보입니다.

솔직히 ‘이것들을 정리한다고 티가 날까?’

라는 생각으로 잘 정리하지 않고 살았는데,

충분히 티가 날 수 있음을 이번에 깨닫게

되면서 그동안 정리하지 않고 살았던

저의 게으름을 꾸짖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십니다.

솔직히 우리가 사람을 뽑을 때는

어떻게 뽑습니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뽑지

않습니까? 능력을 보고, 학문을 보고,

 또 성품을 보면서 뽑을 것입니다.

그밖에 좋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뽑기 위해 여러 가지 기준을

만들어서 점검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를

뽑으셨을까요? 당신의 일을 하는 데

힘에 부쳐서 그랬을까요? 예수님의 

 주님께 짐이 될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해 줍니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주님 자신을 위해서

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제자들 각 개인을

 위해서 그리고 구원받아야 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제자들을 뽑으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를 뽑으시는 모습 자체로도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랑으로 지금을 사는

우리를 뽑으십니다. 그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누구는

‘나 하나 따른다고 티가 날까?’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나 자신을 위해서도 또 내 이웃을

위해서도 티가 많이 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다.

이처럼 잘 사는 것에 전념하면 미래는

신경이 쓰이지 않게 된다.

(소크라테스)

편안함을 거부하십시오.

바다거북은 봄이 되면 해변으로

 올라와 구멍을 파고 진통을

겪으면서 알을 낳습니다.

해양학자들은 거북이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그 먼 거리를 헤엄쳐서 와서

 힘들게 알까지 낳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산란하는 거북이에게

진통제를 놔주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편안하게 알을 낳았으니 이제 알을

더 정성껏 돌볼 것만 같습니다.

아니었습니다. 글쎄 자기가 낳은 알을

 모조리 먹어 치운 것입니다.

고통 없이 알을 낳아 모성 본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련과 고통이 있어야 탄생과

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끄는 혁신가들은

모두 편안함을 거부했습니다.

 비행기를 만든 사람은 MIT

연구원들이 아니라 자전거포에서

자전거를 팔던 라이트 형제였고,

상대성 이론은 스위스 특허청에서

 일하던 수학을 못하던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평범한 기존 시스템에

 안주했다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익숙한 것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 순간이 물론 너무 힘듭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평범함에서

벗어날 때 새로운 나를 만들게 됩니다.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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