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하느님의 말씀 주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강론[2020.1.26.주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31 조회수1,618 추천수0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

[교황님 강론 날짜]2020126일 주일[연중 제3주일 (해외 원조 주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이사야서 8,23―9,3

화답송 : 시편 27(26),1.4.13-14(◎ 1)

2독서 : 코린토 1  1,10-13.17

복음 : 마태오 복음 4,12-23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597&gomonth=2020-01-26&missatype=DA

-------------------------------------------------


 

하느님의 말씀 주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전

2020 126일 수요일

 

예수님께서는 (…) 선포하기 시작하셨다”(마태오 복음 4,17). 이 말씀과 함께 마태오 복음 사가는 예수님의 전도를 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한 분께서 그분 자신의 말씀 안에서 그분 자신의 삶으로 우리와 이야기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이번 첫 번쨰 하느님의 말씀 주일에 그분 선포의 뿌리로 그리고 생명의 말씀의 바로 그 근원으로 갑시다. 오늘의 복음 말씀(마태오 복음 4, 12-23)이 예수님께서 어떻게 어디서 누구에게 선포하기 시작하셨는지 우리가 알도록 돕습니다.

 

1. 그분께서는 어떻게 시작하셨을까요? 매우 단순한 구절로 시작하셨습니다. ,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오 복음 4,17). 이것이 예수님의 모든 설교들의 가장 주된 메시지입니다.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늘 나라는 하느님의 통치, 즉 하느님께서 우리와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서 통치하시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새로움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 메시지가 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우리와 멀리 계시지 않는다, 하늘에 계신 한 분이 땅으로 내려오셨다. , 그분께서 사람이 되셨다. 그분께서 벽을 허물었고 그분께서 거리를 좁히셨다. 우리 자신은 이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만나러 내려 오셨습니다. 지금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과 이렇게 가까우심은 그분께서 태초부터 구약에서조차도 행해오셨던 방법들 중 하나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아라. 내가 너희와 가까운 것처럼 그렇게 가까운 신을 모신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신명기 4,7 참조). 그리고 이 가까움은 예수님 안에서 몸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기쁜 메시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몸소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의무에서 우리의 인간적인 조건을 안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랑으로 안으셨습니다. 사랑을 위해서 그분께서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것을 껴안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우리 혼자서 도우심 없이 얻으리라고 희망할 수 없는 구원을 우리에게 무상으로 주고 싶다고 열망하셔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머물고 싶어하시고 우리에게 생명의 아름다움, 마음의 평화, 용서 받고 사랑 받는다고 느끼는 기쁨을 주고 싶어하십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께서 하신 직접적인 이 요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회개하여라다른 말로 네 삶을 바꾸어라”. 삶의 새로운 방식이 시작되었으니 너의 삶을 바꾸어라. 네가 혼자 힘으로 너 자신을 위해서 살던 때는 끝났다. 지금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사랑과 함께 사랑을 위해서 사는 때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와 함께 있다, 내가 들어가게 하면 너의 삶이 바뀔 것이다”.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당신에게 주시는 이유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에게 쓴 러브레터처럼 그분의 말씀을 당신이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분께서 당신 곁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도록 돕기 위해서. 그분의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에게 용기를 줍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우리 이기심의 속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우리를 회심으로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말씀에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끄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분 말씀의 힘입니다.

 

2. 예수님께서 어디에서 그분의 선포를 시작하셨는지 잘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분께서 그때 어둠 속이라고 여겨지던 바로 그런 장소에서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독서와 복음 두 말씀 모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사람들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즈불룬 땅과 납탈리 땅,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건너편, 이민족들의 갈릴래아”(마태오 복음 4,15-16, 이사야서 6,23-9,1 참고)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민족들의 갈릴래아, 예수님께서 선포 전도를 시작하셨던 이 지역은 이러한 이름이 주어져 왔습니다. 왜냐하면 그 지역은 다른 인종들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리고 다양한 민족들 언어들 그리고 문화들의 고향이었습니다. 그 지역은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 교차로였습니다. 어부들, 상인들 그리고 외국인들이 모두 그곳에 살았습니다. 그곳은 선택된 자들의 종교적인 순수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 앞뜰에서 시작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고장의 반대 쪽에서,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에서, 경계 지역에서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예수님]께서는 주변부에서 시작하셨습니다.

 

여기에 우리를 위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구원의 말씀은 손상되지 않고 깨끗하고 안전한 장소들을 찾으러 가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고 구원의 말씀은 우리 삶 속에 있는 복잡하고 어두운 곳으로 들어갑니다. 그때처럼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서 결코 가지 않으시리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곳을 찾아가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혼란과 우리의 어두운 면과 우리의 이중성을 숨기기를 더 좋아하면서 얼마나 자주 문을 닫는 사람들인지요. 우리는 약간의 기계적인 기도들로 주님께 다가가면서 그분의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휘젓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안쪽에서 그 문을 잠가 둡니다. 그리고 이것이 숨겨진 위선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 말씀이 이렇게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오 복음 4,23). 그분께서는 저 다양하고 복잡한 지역의 모든 곳을 두루 다니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분께서는 우리 마음의 지형을 탐험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우리 삶의 가장 험하고 가장 어려운 곤경 속으로 들어오시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자비만이 우리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고 그분의 현존만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그분의 말씀만이 우리를 다시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의 굴곡진 통로들을 열어 놓읍시다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거나 우리가 숨기는 우리 내면에 갖고 있는 통로들 – “바다로 가는 길을 걸으시는 그분께. 우리의 마음 안으로 그분의 말씀을 맞이합시다 그분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리서 4,12).

 

3.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까? 복음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오 복음 4,18-19). 부름 받은 첫 번째 사람들은 어부였습니다. 그들의 능력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된 사람들이거나 성전에서 기도하는 독실한 사람들이 아니라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에 대해서 생각합시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분께서는 어부들이 이해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에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의 삶은 바로 그 자리에서 바뀌었습니다. 그분[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을 그분의 사명을 나누는 사람들로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마태오 복음 4,20) 왜 곧바로입니까? 그저 그들은 마음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명령을 받았기 때문에 서둘러 떠났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사랑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단순히 좋은 일들을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일 그분의 부르심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만이 홀로 우리를 아시고 우리를 온전히 사랑하시는데 바로 그분이 우리를 출항시키셔서 우리를 삶의 깊은 곳으로 이끌고 가십니다. 그분을 듣는 제자들과 함께 그분께서 하셨던 바로 그대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수 천 가지의 다른 말들 가운데서 우리에게 물건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 말해주는 저 하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말씀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내면에 자리를 마련합시다! 매일 성경의 한 구절이나 두 구절을 읽읍시다. 복음으로 시작합시다. 우리의 탁자 위에 성경을 펼쳐 놓읍시다, 우리의 주머니나 가방에 성경을 가지고 다니고 우리의 핸드폰으로 성경을 읽고 그리고 매일 우리에게 성경이 영감을 주도록 합시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가까우시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어둠을 쫓아내시고 위대한 사랑으로 우리의 삶을 깊은 물로 이끄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20/documents/papa-francesco_20200126_omelia-domenicadellaparoladidio.html

교황님 미사 동영상 & 사진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20/1/26/domenica-paroladidio.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