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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1.3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31 조회수1,516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제1독서 2사무 11,1-4ㄱㄷ.5-10ㄱ.13-17

1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2 저녁때에 다윗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옥상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다.

3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았는데,

어떤 이가 “그 여자는 엘리암의 딸

 밧 세바로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가 아닙니까?” 하였다.

4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

그 여인을 데려왔다. 그 뒤 여인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5 그런데 그 여인이 임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윗에게 사람을 보내어,

“제가 임신하였습니다.” 하고 알렸다.
6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나에게

보내시오.” 하였다. 그래서 요압은

우리야를 다윗에게 보냈다.

 7 우리야가 다윗에게 오자,

그는 요압의 안부를 묻고

이어 군사들의 안부와

전선의 상황도 물었다.

8 그러고 나서 다윗은 우리야에게,

“집으로 내려가 그대의 발을 씻어라.”

 하고 분부하였다. 우리야가

왕궁에서 나오는데 임금의

선물이 그를 뒤따랐다.

9 그러나 우리야는 제 주군의

모든 부하들과 어울려

왕궁 문간에서 자고,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10 사람들이 다윗에게

“우리야가 자기 집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보고하자,

13 다윗이 그를 다시 불렀다.

우리야는 다윗 앞에서 먹고

마셨는데, 다윗이 그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녁이 되자 우리야는 밖으로 나가

 제 주군의 부하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14 다음 날 아침,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우리야의 손에 들려 보냈다.

15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16 그리하여 요압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17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웠다. 군사들 가운데

다윗의 부하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

복음 마르 4,26-34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26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27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

 28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데, 처음에는 줄기가,

다음에는 이삭이 나오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낟알이 영근다.

29 곡식이 익으면 그 사람은

곧 낫을 댄다. 수확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30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31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32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33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이처럼

많은 비유로 말씀을 하셨다.

34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당신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풀이해 주셨다.

자존감이 높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이 말에 크게

동의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존심이 너무 세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자존심만 센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별로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세서 실속 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래서 ‘근자감’이라는 말도

있나 봅니다. 즉,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는 뜻입니다.
과도한 자기중심적 태도나

이기심에서 비롯된 자존감은

진짜가 아닙니다. 그런 자존감은

 당장 버려야 할 것입니다.

진짜 자존감은 그 누구의 말과

행동에 대해 전혀 흔들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를

통한 감정 기복이 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포옹하고 받아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근자감’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닌,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갖춘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귀하게 만드신 하느님의 창조물이라는

자존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자존감, 다른 이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존감, 그밖에

자존감의 근거들을 하나씩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어떠한지를 가르쳐주십니다.

우선 씨가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고 하시지요. 하느님 나라가

 다가오는 것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곡식이

익듯이 우리 역시 그 나라에

수확되어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겨자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작은

씨이지만,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합니다.

그 겨자씨처럼 우리 역시 처음에는

작고 볼품없지만,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여 하늘에 닿도록

성장해야 함을 말씀하시지요.
이렇게 우리 모두 예외 없이

성장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라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이 마음을 받아들이면

이 세상을 더욱더 충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쓸데없는 것에 온 마음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그래서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힘차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에 흔들려서

지금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우리가 아닌,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의지하면서

참 행복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렿게 행복하세요♡

정말로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동그란 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공 모양을 인정하는 것이다.

(오카다 사오리)

불안한 미래, 무엇을 해야 할까?

2017년 서울대의 유기윤 교수팀은

충격적인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2090년의 한국 사회는 인공지능 로봇이

직업 대부분을 대체한 결과 한국인의

99.997%가 ‘프레카리아트’가 된다는

 발표였습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한’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프레카리오’와 노동계급을 뜻하는

독일어 ‘프롤레타리아트’의 합성어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된답니다.
1) 꿈과 열정이 없다.
2)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
3) 먹고 사는 문제로 평생 고통받는다.
지금 현재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노숙인, 난민, 불법 외국인 노동자입니다.

그렇다면 2090년 우리나라 국민의

 99.997%가 난민 수준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은 큰 충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2090년이면 아직 많이 남았으니,

나와는 상관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지는 않겠지요.

이 모습이 언제부터 진행되냐면

 2030년부터 피부로 느낄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불안한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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