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주님 봉헌 축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1 조회수3,506 추천수13 반대(0)

예전 광고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원로배우 신구 씨가 한 말입니다. 먹어봐야 그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광고였습니다. 제품이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그 말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기도에 맛을 들인 사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기도합니다. 기도가 지상 최대의 힘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나눔의 기쁨을 아는 사람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나누려 합니다. 나눔을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성지순례를 가는 사람은 기회가 되면 또 가려고 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평화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나누고 싶은 맛은 새벽 묵상입니다. 1995년부터 시작했으니 25년 되었습니다. 성서를 읽고, 기도하고, 글을 쓰는 시간입니다. 25년이 지났어도 질리지 않는 걸 보면 제게는 꿀맛인가 봅니다. 여러분이 이웃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맛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화룡점정(畵龍點睛)’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용을 그림에 있어서 다 중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용의 눈입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숙소에 머물게 됩니다. 침대, 옷장, 책상, 냉장고도 다 좋았습니다. 그런데 샤워기가 작동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세면대에 물이 잘 안 내려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데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았고, 직접 사용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화려한 건물, 오랜 역사, 교계제도, 율법과 계명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필요한 건 성령께서 함께하는 겁니다. 가진 걸 함께 나누는 친교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사랑입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진실한 회개입니다. 성지순례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봉헌과 기도에 대해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와 부유한 바리사이파의 헌금을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는 봉헌은 가난한 과부의 정성어린 헌금이었습니다. 부유한 바리사이파의 봉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겸손한 기도와 바리사이파의 교만한 기도를 이야기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 주시는 기도는 세리의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바리사이파의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생활의 화룡점정은 무엇일까요? 하느님의 아드님이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겸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늘 겸손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참된 제자는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제자라고 하셨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생전에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긴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입니다. 더 멀고 힘든 여행은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추기경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먹은 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봉헌 축일입니다. 많은 본당에서 오늘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성합니다. 봉헌 축일에 초를 축성하는 것은 초가 가지고 있는 3가지 특성 때문입니다. 초의 3가지 특성은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삶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첫째, 초는 밝은 빛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진리의 빛을 가려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둘째, 초는 따뜻함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었습니다. 나의 멍에는 가볍고, 편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외로운 이들, 슬퍼하는 이들은 모두 나에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돌아온 탕자를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아버지의 마음은 곧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셋째, 초는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서 세상을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십자가의 희생은 가장 숭고한 봉헌입니다. 그것이 우리 구원의 시작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의 잔을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매달고 조롱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솔직하게 아프다고, 원망스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주님께서는 이제 모든 이를 위한 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신앙이 있는 곳에, 당신의 몸을 성체의 모습으로 나누어 주십니다. 봉헌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봉헌은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봉헌은 나의 허물과 잘못까지도, 나의 원망과 실망까지도 하느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봉헌은 나의 삶을 이웃들을 위해서 나누는 것입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슴에서 발까지의 긴 여행을 기쁜 마음으로 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