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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2.04)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4 조회수1,38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2월 4일

연중 제4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사무 18,9-10.14ㄴㄷ.

24-25ㄱㄴ.30―19,3

그 무렵 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다. 그 노새가

큰 향엽나무의 얽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10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 요압에게

알려 주었다. “압살롬이 향엽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4 요압은 표창 셋을 손에 집어 들고,

압살롬의 심장에 꽂았다.
24 그때 다윗은 두 성문 사이에 앉아

 있었다. 파수꾼이 성벽을 거쳐 성문

위 망대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다.

25 파수꾼이 소리쳐 이를 임금에게

알리자, 임금은 “그가 혼자라면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

하고 말하였다. 달려온 그에게

30 임금이 “물러나 거기 서 있어라.”

하니, 그가 물러나 섰다.

 31 그때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

 말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임금님께 맞서 일어난 자들의 손에서

오늘 임금님을 건져 주셨습니다.”
32 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대답하였다.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19,1 이 말에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
2 “임금님께서 우시며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신다.”는 말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3 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

 그날 임금이 아들을 두고 마음

 아파 한다는 소식을 군사들이

들었기 때문이다.

복음 마르 5,21-43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건너편으로 가시자

많은 군중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계시는데,

 22 야이로라는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23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곡히 청하였다. '

24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나서시었다.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며 밀쳐 댔다.
25 그 가운데에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하는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숱한 고생을 하며

많은 의사의 손에 가진 것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아무 효험도 없이

상태만 더 나빠졌다.

27 그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에 손을 대었다

 28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9 과연 곧 출혈이 멈추고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30 예수님께서는 곧 당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군중에게

 돌아서시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반문하였다. “보시다시피 군중이

스승님을 밀쳐 대는데, ‘누가 나에게

손을 대었느냐?’ 하고 물으십니까?”

3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누가 그렇게

하였는지 보시려고 사방을 살피셨다.

33 그 부인은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기 때문에, 두려워 떨며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아뢰었다

. 34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리고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져라.”
35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는, “따님이

죽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스승님을 수고롭게 할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말하는

것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 외에는 아무도

당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장의 집에 이르렀다.
예수님께서는 소란한 광경과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며

탄식하는 것을 보시고

 39 안으로 들어가셔서 그들에게,

 “어찌하여 소란을 피우며 울고 있느냐?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내쫓으신

다음,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와

당신의 일행만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녔다. 소녀의 나이는 열두

살이었다. 사람들은 몹시 놀라

 넋을 잃었다.

43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이 일을 알리지 말라고 그

들에게 거듭 분부하시고 나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이르셨다.

친한 친구가 얼마 전에 점을

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친구는 스스로 불교 신자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

강제로 점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점괘가 아주 안 좋아서 기분이

영 아니라고 하더군요. 이 말을

들은 다른 친구가 말합니다.
“점 같은 것 믿을 것 없어.

 그냥 아무 소리나 질러보는 건데

그걸 왜 믿어? 여기 친구 신부가

 있으니까 물어봐. 신부를 한자로

귀신 아버지라고 하니까

 얼마나 잘 알겠어?”
저 역시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해줬지만,

이 친구는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요즘 안 좋은 일이

계속 이어지면서 점괘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역술인을 찾아간 것은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의 안정이 아니라 오히려

복잡한 마음만 얻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에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미신을 따르는 것만을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위안을

 얻으려 한다면 지금 우상숭배에

빠진 것입니다. 돈에 위안을 얻으려

한다면, 세상 지위에 위안을 얻으려

한다면, 내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위안을 얻으려 한다면

모두가 우상숭배입니다.
순간의 기쁨을 추구하는 마음의

위안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희망을 추구하면서

얻게 되는 마음의 위안은 세상의

 어떤 유혹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회당장이 예수님께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
환자가 의사에게 치료법을 말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고쳐달라고 할

뿐입니다. 그러나 이 회당장은 치료

 방법을 이야기하지요. 즉, 아이에게

손을 얹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손을 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이가 살아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 회당장의 믿음을

보고서 예수님께서 그를

따라나섰던 것이지요. 하지만

집에 가는 도중에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바로 이때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기적은 믿음 덕분에

이루어졌습니다. 믿음이란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것 말고 주님만 믿으십시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두려움이 아닌,

희망과 꿈에 의지하라.

불안이 아닌,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에 대해 생각하라.

(교황 요한 13세)

쉼의 공간

사람마다 자기 나름의

편안한 공간이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침실,

어떤 분에게는 거실이,

또 어떤 분이 화장실이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게 있어서는 어디일까요?
당연히 성당이지만,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곳을 꼽는다면 ‘서재’입니다.

조용한 가운데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재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사실 예전부터 책을 볼 때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책이 가득

꽂혀 있는 책장 앞에서 책을 읽다

보면 행복이 가득해집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책이지만 피곤할

때에는 꾸벅꾸벅 졸기도 합니다.

하지만 힘든 자세로 잠깐 존 것인데도

모든 피로가 풀린 것처럼 개운합니다.
자신의 편한 공간, 모든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이 이런 여유를 갖기

 힘들다고 합니다. 세상일이 너무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나무를 도끼로 쉬지 않고 계속해서

 찍어대는 것보다, 중간에 쉬면서 도끼날을

가는 사람이 더 빨리 나무를

자를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쉼의 공간. 주님께서는 고생하며

수고하는 이는 모두 당신께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실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분명히 더욱더

세상일에 충실할 수 있으며 동시에

효과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의 치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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