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20년 2월 15일[(녹) 연중 제5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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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20-02-15 | 조회수86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2월 15일 토요일 [(녹) 연중 제5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우상 숭배는 주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이 때문에 예로보암 집안은 멸망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빵 일곱 개와 물고기 몇 마리를 축복하시며 모든 군중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신다. ◎제1독서◎ <예로보암은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12,26-32; 13,33-34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돌아갈지도 모른다.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바치러 올라갔다가, 자기들의 주군인 유다 임금 르하브암에게 마음이 돌아가면, 르하브암에게 돌아갈 것이다.’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예배하러 베텔과 단까지 갔다.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열닷샛날을 유다에서 지내는 축제처럼 축제일로 정하고,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제물을 바치고,자기가 만든 산당의 사제들을 베텔에 세웠다. 13,33 예로보암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또다시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산당의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그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직무를 맡겨 산당의 사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이런 일로 죄를 지어, 사라지게 되었다. ◎화답송◎ 시편 106(105),6-7ㄱ. 19-20.21-22(◎ 4ㄱ)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불의를 저지르고 악한 짓을 하였나이다. 저희 조상들은 이집트에서 당신의 기적들을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만들고, 금붙이로 만든 우상에 경배하였네. 풀을 뜯는 소의 형상과 그들의 영광을 맞바꾸었네.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자기들을 구원하신 하느님을 잊었네. 함족 땅에서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갈대 바다에서 이루신 두려운 일들을 잊었네. ◎ 주님, 당신 백성 돌보시는 호의로 저를 기억하소서. ◎복음환호송◎ 마태 4,4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복음◎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복음입니다. 8,1-10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다. 가까이 불러 말씀하셨다.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있겠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하고 대답하였다.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몇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음에 나누어 주라고 이르셨다.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영성체송◎ 시편 107(106),8-9 사람들에게 베푸신 그 기적을. 그분은 목마른 이에게 물을 주시고,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 눈여겨볼 단어가 있습니다. “사흘”입니다. 대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뒤에 부활하시기까지의 기간일 것입니다.이 점을 염두에 둘 때, 오늘 복음에 나오는 군중은 예수님과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다가 예수님의 기적으로 배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다시 살아나게 된 셈입니다. 이 군중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닮은 군중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다음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미리 동참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연중 제5주간 목요일 복음에서 우리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 이야기를 통하여 ‘부스러기 은총’과 ‘빵의 은총’ 에 대하여 묵상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이들에게 내리는 부스러기 은총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빵의 은총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되새겼습니다. 바로 이 점에 비추어 오늘 복음을 묵상할 수 있습니다. 누리려면 ‘사흘’이라는 숫자로 상징되는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신다 하여도 참생명이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동참해야 비로소 빵의 은총에 더하여 일곱 광주리에 가득 찬 은총 또한 누릴 수 있으며, 이 세상에 일곱 광주리의 은총을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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