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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곁을 떠난, 너무나도 초라한 예수님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8 조회수945 추천수0 반대(0) 신고

오늘 아침에 인터넷에서 기사를 하나 봤습니다. 묵상글을 하나 올린 후 잠시 봤습니다. 기사 내용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기사였습니다. 워낙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지만 오늘은 좀 기분이 달랐습니다. 기사 내용은 부산에서 지하철 역 주변에서 한 노숙자가 저체온증으로 동사를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마태오복음 최후의 심판이 생각났습니다. 오늘은 이 노숙자가 그냥 노숙자가 아니고 바로 예수님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만약 오늘 이 기사를 보신 분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요?

 

기사 내용 중에 약간 옥의 티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약간 기사의 내용을 반감시키는 부분이 있긴 했습니다. 노숙자가 술을 먹었다는 그런 부분도 있었습니다. 기자가 이런 내용을 언급한 이유도 알 수가 있지만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저도 처음엔 노숙자가 술을 먹다니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을 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 추위에 몸이 춥다보니 노숙을 하면서 어쩌면 술기운을 빌려서 잠시나마 추위를 견뎌보려고 먹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번 해봅니다.

 

아무튼 이런 맥락으로 기사를 보면 단순히 노숙자이면서 술을 먹고 자다 그런 변을 당했으니 별로 동정이 가지 않는다고 하는 그런 말을 쉽게 하지는 못할 겁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일단 한 생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이 노숙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그건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을 겁니다. 일단 우리는 신앙을 가진 사람이기에 신앙인의 관점에서 한번 바라봤으면 합니다. 일단 확실하게는 알 수는 없지만 단순히 봐서 이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인 사람임은 틀림없을 겁니다.

 

그가 종교를 가졌는지 여부도 여기서는 불문에 붙이고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일단 지금 그가 가진 세상에서의 신분 그런 것도 초월해야 이 문제의 본질을 볼 수가 있을 겁니다. 우리 사회에서 일단 노숙자라고 하면 그냥 좋은 시각으로 보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크게 나누자면 둘로 나눌 수 있을 겁니다. 하나는 인간적으로 너무 안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열심히 뭐라도 해서 살면 살 수 있는데 게을러서 그런 결과를 초래를 했다고 생각해 일말의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보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가타부타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힘들 겁니다. 저는 이 노숙자를 예수님이라는 시각에서 한번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일단 복음적인 기준에서 본다고 해도 그는 이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걸 자신이 자초했든 그와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런 관점에 초점을 맞춘다면 바로 이 사회가 그 사람을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보호권을 받을 수 있도록 보호해 줄 수 있는 사회적인 인프라를 제공해 주지 못한 면을 본다면 사회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넓게 봐서는 제도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한번 이 건을 바라보겠습니다. 바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성경의 기준인 가장 작은이라는 기준입니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바로 이 노숙자는 예수님이 아니라고 절대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사건을 보면서 정말 많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한 인간으로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난 거에 대해서는 정말 가슴 아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복지제도가 발달된 선진국이 아닌 이상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저는 여기서 어떤 해결책을 강구하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뜻에서 이런 걸 공론화하는 게 아닙니다. 오늘 이걸 보면서 우리가 실제 마태오복음 2531절 이하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에 나오는 그 심판 기준에서 이 노숙자를 한번 고찰해보고자 하는 게 제 의도입니다.

 

가장 작은이를 이 사건에 한정시켜서 바라보지 말고 더 넓은 의미에서 가장 작은이가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옛날 강우일 주교님께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신 게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하지만 실제 우리는 교회에서 예수님을 찾을 게 아니라 정말 이런 자들 속에서 예수님을 찾으려고 우리가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는 취지로 말씀하신 게 지금 너무나도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오늘 이 노숙자의 영혼이 부디 하느님의 자비로 이 세상에서는 힘든 삶을 살았지만 영혼만은 하느님의 위로 속에 머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화살기도를 올리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우리 모두 부디, 이 불쌍한 영혼을 하느님의 자비로 거두어주시고 위로를 받으시길 빌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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