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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속한 공동체의 시력이 나의 시력을 결정한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8 조회수1,674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20년 가해 연중 제6주간 수요일

 

 

<내가 속한 공동체의 시력이 나의 시력을 결정한다> 



 

 복음: 마르코 8,22-26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을 때 라이언 긱스라는 전설적인 공격수가 있었습니다. 전성기 때는 그를 막을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없었습니다. 박지성 선수도 한국 대표팀에 한 명만 데려오라면 누구를 데려오고 싶으냐는 질문에 라이언 긱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긱스는 월드컵에서 뛰는 것을 한 번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의 조국 웨일스가 월드컵 예선을 단 한 번도 통과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축구는 아무리 혼자 잘 해도 나머지 10명의 평균을 넘을 수 없습니다.

 

 

오는 복음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믿음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눈먼 이를 치유해주시는 사건과 장소의 이동이 겹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오자 예수님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치유해주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분명 눈의 치유와 소경이 머무는 장소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을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도 공동체를 이루셨습니다. 교회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동체에 머물러야 바로 볼 수 있고, 또 시력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선택하여 속한 가톨릭교회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나무를 예수 그리스도로 봅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를 먹어 영원히 살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그들을 에덴동산 밖으로 쫓아내십니다.

, 사람이 선과 악을 알아 우리 가운데 하나처럼 되었으니, 이제 그가 손을 내밀어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되지.”(창세 3,22)

 

그렇다면 에덴동산의 생명나무는 영원히 살게 하는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당신이 곧 생명나무임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사람을 나무로 볼 수 없다면 성탄트리를 보면서도 그것이 예수님임을 알아볼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소경의 첫 번째 눈을 띄워주시는 것은 바로 이 상징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성령의 힘이 필요한데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는 행위나 그에게 안수하시는 행위가 다 성령을 주시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그러자 그는 눈이 밝아져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어보시는 예수님께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성탄절에 이 생명나무를 성탄트리로 장식하며 우리가 이 상징을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졌음을 입증합니다. 예로부터 성탄트리 맨 위에 별을 달아 다윗의 별인 그리스도를 상징했고, 불을 밝혀 빛으로 오신 예수님임을 보여주었으며, 둥그런 밀떡을 달아 이 나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게 영적인 눈을 뜨게 된 사람이 죄의 동네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어떤 공동체에 속하던 그 속한 사람은 그 공동체의 시력을 물려받게 되어있습니다. 만약 개신교라는 공동체에 속해있다면 성탄트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성체와 성혈로 볼 수 있을까요? 그 공동체는 성체성혈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 공동체에 속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가졌던 믿음의 눈을 다시 잃게 됩니다. 그 영적인 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믿음이 있는 공동체에 머물러야 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는 레드우드라는 공원이 있습니다. 심한 더위와 가뭄 때문에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사막에 어떻게 수령이 2,3천년쯤 되며, 높이가 100m를 넘고 둘레도 8-9m나 되는 큰 참나무 숲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이 덩치 큰 나무들이 깊이 뿌리를 박고 그 뿌리로 다른 나무들과 서로서로를 연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공동체란 이와 같습니다. 서로서로 연결되어 그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각자의 믿음이 있습니다. 혼자 새로운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려면 그 공동체를 떠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공동체에 머물면 그 공동체의 평균정도는 자랄 수 있습니다.

 

한 오케스트라에 속해있으며 혼자 다른 곡을 연주할 수는 없습니다. 그 공동체에 속하면 다른 믿음엔 다다를 수 없습니다. 각 공동체가 제공하는 시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그 공동체에서 벗어난다는 뜻과 같습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의 시력, 내가 속한 공동체의 믿음이 결국 나의 영적인 시력을 결정함을 잊지 맙시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눈의 치유와 그가 속한 공동체의 변화를 함께 이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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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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