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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2.19)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19 조회수1,208 추천수8 반대(0) 신고

 


2020년 2월 19일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제1독서 야고 1,19-27

19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20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하지 못합니다.

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22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23 사실 누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는 거울에

자기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는 사람과 같습니다.

24 자신을 비추어 보고서 물러가면,

 어떻게 생겼었는지 곧 잊어버립니다.

 25 그러나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26 누가 스스로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아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신심은 헛된 것입니다.

 27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깨끗하고

흠 없는 신심은, 어려움을 겪는

아와 과부를 돌보아 주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입니다.

복음 마르 8,22-26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22 벳사이다로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그에게 손을 대어 주십사고 청하였다.

 23 그분께서는 그 눈먼 이의 손을

잡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시고 그에게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는 앞을 쳐다보며,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걸어다니는

나무처럼 보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그분께서 다시 그의 두 눈에

 손을 얹으시니 그가 똑똑히

 보게 되었다. 그는 시력이 회복되어

 모든 것을 뚜렷이 보게 된 것이다.

26 예수님께서는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말씀하셨다.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

다른 신부의 사제관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서재입니다.

이 서재를 보면 이 신부님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단순히 책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이슈가 되는 책을

보고 있는지, 또 공부하고 있는

책이 있는지가 보입니다.
사실 예전에는 저 자신도 책을

그렇게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책만 많아도 ‘와 열심히

공부하시는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러면서 다른 사목에도 열심히

 하시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많은 책을

다 보니 이제야 보입니다.

자신이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내 눈이 가는 곳이 곧

나의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관심에 대해서

 묵상을 해봅니다. ‘주님, 주님!’

하며 매일 기도하고는 있지만,

그분 뜻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아서

세상 안에서 주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책이

눈에 곧바로 들어오듯이,

주님께 관심을 두는 사람은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눈에 곧바로 들어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눈먼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는 손을 대 주십사고 청합니다.

앞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의 염원대로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사물을 똑바로

볼 수도 있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앞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제대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차례에 걸쳐서 그에게 손을

얹으셨습니다.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주님을 제대로

바라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우리도 주님의 손길에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주님을 알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누군가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저 마을로는

들어가지 마라.”고 하십니다.

조금 이상한 말씀입니다.

그를 집으로 보내시면서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시다니요.

여기는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의 집에 연연하는 삶이 아니라,

이제는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힘으로는

치유될 수 없었지만, 복음의

은총으로 치유될 수 있었음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품에

머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눈에는 눈이라는 자세로 나간다면

온 세상의 눈이 멀어버릴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

죄에서 벗어나기

요즘에는 우울증이 마치

감기처럼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삶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겠지요.

언젠가 어떤 형제님을 만나

자신이 느끼는 우울한 감정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해서는 안 될 일,

남이 알면 부끄러운 일,

그런 일을 하고 나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었고

우울한 감정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졌고,

만사가 시들해지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추락하는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하시더군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하느님을 피해 숨은 것도

이런 감정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순간에서도 하느님은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알아도 찾으십니다.

회개해서 다시 돌아오는 한 사람을

더 원한다며, 사랑으로 우리를 찾으십니다.
죄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대신 내 죄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고

부르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 안에서 힘차게 살 수 있습니다.

(회개의 불을 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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