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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야고2,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20 조회수88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0년 2월 20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야고2,1~9)

 

"나의 형제 여러분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1~4)

 

야고보서 2장 2~13절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성도는 사람을 외적 조건에 따라 차별 대우를 해서는 안되며진심으로 자비심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메 엔 프로소폴렘프시아이스; me en phrosophlempsiais)에서 '차별하다'의 의미로 번역된 '프로소폴렘시아이스'는 '얼굴'(마태6,16), 혹은 '외모'(마태22,16), '용모'(루카9,29)란 뜻의 '프로소폰'(phrosophon)과 '취하다'(마태15,26)라는 뜻의 동사 '람바노'(lambano)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사람의 외적인 모습을 보고 그것만을 중시하여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람의 본질적인 면을 중시하기보다는 그의 신분이나 직업성별경제적 능력 등 여러 외적 조건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재(창세1,26~28)로서 존재 자체로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나 사회적 신분혹은 지위만을 기준으로 삼아 차별하는 편파적인 태도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아마도 야고보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예배에 참석하러 회당에 오거나 법적 소송을 할 때가난한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부자들만 편파적인 특별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야고보는 성도들간의 그러한 태도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부합될 수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영광스러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의 구절은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명시적으로 밝힌다바로 그들이 영광스러운 우리 주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구속 사업을 이루셨다즉 그분의 십자가상 희생은 유다인이나 부자나 고위 관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이나 가난한 자들이나 소외된 계층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를 믿는 자가 사람을 차별해서 되겠는가외적 조건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대우해서 되겠는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믿음의 대상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영광'은 동격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다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는 영광을 누리고 계시지만지상에 계실 때는 자신을 낮추어 인간으로서 억압받는 가난한 자들을 돌아 보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사람을 외모로 평가하고 취하는 가치관과 결코 함께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2)

 

여기서 '모임'으로 번역된 '쉬나고겐'(synagogen)의 원형 '쉬나고게'(synagoge)는 '함께', '더불어'란 의미의 전치사 ''(syn)과 '데려오다'(사도25,6), '인도하다'(요한10,16)란 의미의 동사 '아고'(ag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함께 모이는 집회소'란 의미를 가지지만 유다인들에게 있어서는 회중이 모여서 율법을 읽고 예배드리는 처소인 회당을 가리킨다.

 

유다인들의 바빌론 포로 생활 이후이 회당은 유다인들의 거주지에 생겨나기 시작했으며점차 확산되어 A.D.1C 당시는 유다인 거주지마다 회당을 찾아볼 수 있었다그래서 초대교회 시대 그리스도교의 선교와 예배는 이 회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후에 유다인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의 회당 출입을 금하게 됨으로서 그리스도교 선교와 예배는 회당에서 벗어나 각 개인의 가정에서 이루어지게 되었고이것이 '교회'(에클레시아; ekklesia)의 기원이 되었다.

 

야고보서 2장 2절에서 야고보는 초대교회 모임 안에 두 사람이 들어온 것으로 가정하고 있다.

두 사람은 너무나 극명하게 대조적으로 나타나는데권세있는 관리나 유력한 부자가 금가락지를 손에 끼고 화려한 옷을 입고 모임에 들어와 자신들 지위를 과시함으로써 자신의 그러한 면에 사람들이 압도당하기를 바라는 허세를 부린다반면 또 다른 사람은 가난한 사람으로서 더럽고 낡고 남루한(누추한옷을 입었다.

 

그런데 야고보서 2장 3절에서 야고보는 회당에 들어온 두 사람이 신자인지 아니지를 언급하지 않고모임에 모여있는 성도들이 들어온 자들에게 보인 반응의 차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에서 '여러분이쳐다보고서는'에 해당하는 '에피블렙세테'(ephiblepsete)의 원형은 '에피블레포'(ephiblepho)이다.

 

이것은 '향하여'란 뜻의 전치사 '에피'(ephi)와 '보다'란 뜻의 동사 '블레포'(blepho)가 합하여져 '유심히 보다','주목해서 보다','관찰하다'란 뜻이다.

그러니까 이 동사의 사용은 오로지 금가락지를 손에 끼고 호화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에게만 주목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23장 6절에 나타난 당시 유다인의 관습상잔치상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는 랍비들이 차지하였는데이러한 관습이 초대교회에도 영향을 미쳐서 회중들이 부자들에게는 이런 류의 높은 자리를 권하고반면에 가난한 자에게는 자리는커녕 홀대를 서슴치 않았음을 지적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한다면" (3)

 

지시 부사 '저기'(에케이 ; ekei)는 회당에 모인 자들이 가난한 자가 자신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있기를 원하는 표현이다또한 '발판'(발등상휘포포디온; hypophdion)은 '~아래란 뜻의 전치사 '휘포'(hypo)와 ''(마태4,6)이란 뜻의 명사 '푸스'(phus)의 합성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발 아래 까는 '발판'(footstool)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그 아래 앉으라는 것은 자신이 가난한 사람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의자에 앉아서 발판에 발을 대고 있는 상황에서 그 발판에 앉는다는 것은 굴욕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야고보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대하는 이러한 대조적 행동을 지적함으로써 회당에 모인 사람들의 태도가 야고보서 2장 1절의 언급처럼 사람의 차별대우임을 분명히 부각시키고 있다.

 

비단 이런 태도는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오늘의 교회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돈과 학벌과 권력이 있는 자에게는 좋은 대우를 해 주지만반대로 가진것이 없어 가난하고 무식하고 헐벗은 사람 혹은 신체적으로 결함이 있어 부자유한 자들에게는 무관심인 경우가 허다하다.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 (4)

 

여기서 '차별하는 것'과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은 의미상 일치를 이루고 있다.

또한 '생각을 가진'(디알로기스몬; dialogismon)의 원형 '디알로기스모스'(dialogismos)는 '~을 가지고'란 뜻의 전치사 '디아'(dia)와 그 자체로 이미 '계산하다', '심사숙고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로기조마이'(logizomai)의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같이 숙고하고 추론하여 얻은 생각'을 의미한다.

 

즉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이해 득실을 꼼꼼히 따져보고부자와 빈자를 어떻게 대우해야 할 지를 판단해서 다르게 대우한다는 것을 암시하는데이것은 사악한 행위임에 분명하다.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모든 사람의 영혼은 소중하고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동일하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스스로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행할 태도이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들으십시오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여러분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고 그들이 아닙니까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5~7)

 

야고보서 2장 5~7절에서는 성도들이 가난한 자를 차별하고 멸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로서 하느님 편에서의 가난한 자에 대한 옹호 및 부자에 대한 경계를 권고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5)

 

'세상의'(토 코스모; to kosmo)로 번역된 뜻은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in the eyes of the world)라는 의미이다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가난한 자들은 틀림없이 초라하고 힘없는 자들이며 세상은 그들에게 조그마한 관심조차 가져주지 않는다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선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다.

 

그런데 여기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믿음 안에서 부요해지기 위해서는 심령으로 가난해져야 한다는 점이다(마태5,3).

이런 측면에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할 것이 전혀 없음을 알고전적으로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깨닫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기 쉬우며 또한 믿음에 부요한 자가 되는데 보다 좋은 여건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강조하며야고보는 '가난한 자'를 신앙심이 깊은 경건한 자그리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자로 묘사하였다이러한 사람들은 물질이나 사회적 지위로써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으로 하느님께 구원을 받는다.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여러분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6~7)

 

교회 성도들이 가난한 자에게 치욕적으로 대했음을 표현하고 있다그리고 교회 성도들이 떠받드는 부자들은 실상 그리스도인들을 압제하는 이들이다부자들은 빈번하게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압박했다또한 야고보는 채권이나 채무관계에 얽힌 그리스도인들을 부자들이 잔혹하게 법정으로까지 끌어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있다(예레7,6; 아모4,1; 8,4).

 

여기서 '끌고가는'에 해당하는 '헬쿠신'(helkisin)의 원형 '헬퀴오'(helkio)는 칼을 빼는 것과 같이 '날카롭게 잡아끌다'라는 의미가 있다부자들은 일말의 자비도 베풀지 않고법적인 힘을 빌어서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며 법정으로 끌어내었던 것이다(5,1~3).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부자들을 예수님의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본 단락에 나오는 부자는 불신자라고 볼 수 있다그리스도인의 모임에 참석하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교에 대한 약간의 관심을 가지지만 변화되어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는 자들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8~9)

 

여기서 '지고한 법'에서 '지고한'(바실리콘; basilikon)의 원형 '바실리코스'(basilikos)는 '왕의', '왕에게 속한'(사도12,20), '고상한', '숭고한'이란 뜻으로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고 한 '율법'(노모스; nomos)이 임금이신 하느님에 의해서 주어진 법이며그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법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신적 명령임을 야고보는 분명히 하고 있다이 최고의 법은 레위기 19장 18절을 지칭한다.

 

그리고 '범법자'에 해당하는 '파라바타이'(pharabatai)의 원형 '파라바테스'(pharabates)는 '~에 대항하여', '~에 거슬러'란 의미의 전치사 '파라'(phara)와 '발걸음'이란 뜻의 명사 '바시스'(basis)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정해진 길이 아니라 곁길로 가는 자'란 의미를 지닌다.

율법은 이웃 사랑의 계명을 소홀히 하는 자에 대하여 율법이 정한 길을 걷지 아니하는 자로 유죄 선언을 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고 차별대우를 하는 것은 분명 하느님의 계명을 어긴 범죄 행위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너희는 재판할 때 가난한 이의 권리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라는 탈출기 23장 6절의 말씀과 잠언 14장 21절의 말씀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짓는 사람이고" 라는 구절을 염두에 두면서 그들의 행동이 율법에 비추어 범죄임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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