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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2.20)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20 조회수1,170 추천수7 반대(0) 신고

 


2020년 2월 20일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1독서 야고 2,1-9

1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2 가령 여러분의 모임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누추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온다고 합시다.
3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

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한다면,

4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5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억누르는 사람들이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7 여러분이 받드는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8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복음 마르 8,27-33

그때에 2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 근처

 마을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그리고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28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29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하여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31 예수님께서는 그 뒤에,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2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히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3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각하는구나.” 하며 꾸짖으셨다.

어떤 노신사가 길을 가다가 한

행려자를 만났습니다. 이 노신사는

 행려자에게 “자네는 가진 것이 없어

불쌍하군.”이라고 말하자, 행려자는

버럭 소리를 치며 반박합니다.
“나는 오늘 먹을 것이 있고,

또 잘 곳도 있는데 뭐가 불쌍해요?

나는 길에서 살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사는 게 행복하오. 겉모습만 보고

 불행하다고 말하는 당신이

더 불쌍해 보입니다.”
먹고 잘 곳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우리 각자는 행복해야 할

각종 조건을 만들고 그 조건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집안 조건, 직장 조건, 경제 조건,

친구 조건, 신앙생활 조건... 한도

 끝도 없는 조건들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말하면서 좌절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한 가지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기원후 70년, 로마로부터

멸망된 후 전 세계를 떠돌이 생활을

하며 큰 고통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근대에는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6

백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신의 하느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주시는 하느님 역시

나의 하느님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힘차게 살 수가 있었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하느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다른 조건들을

내세워서 이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제외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을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누구이고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에 대해 제자들에게

묻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예수님께서 자신의

인기를 알아보기 위한 것일까요?

그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느님 안에서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대답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주님이

누구인지를 잘 몰랐습니다.

 단순히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만 주님을 평가하면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 사도가 나서서 말합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베드로 역시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세속적인 판단을 내리며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라고

말씀하시지요. 하느님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누구신지 알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참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아프다는 것은 이겨내야

 할 것이 아니라

지혜롭게 겪다,

보내야 하는 것이다.

(박연준)

멋진 친구

신학생 때, 친구와 함께

서울에 있는 용산전자상가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에는 조립 컴퓨터를

구하기 위해 용산전자상가를

많이 찾았지요.

그때도 친구가 컴퓨터를 구입

한다고 해서 함께 갔던 것입니다.
몇 군데의 가게를 둘러보다가

가격과 컴퓨터 사양이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았습니다.

 결정하고 계산을 하려는 순간,

이 친구가 주머니를 이곳저곳

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갑이 없어졌다면서

 당황해합니다. 이 지갑 안에

컴퓨터를 구매할 현금이

들어 있었는데 말입니다.

(당시에는 신용카드를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돌아다닌 동선을 역으로

따라가면서 바닥만을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의 지갑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번을 왔다 갔다 하다가

 이 친구가 말합니다.
“됐다. 잊어버렸으면 끝이지 뭐.

”하면서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큰돈을 왜 포기해?

경찰에 신고하자.”
이때 이 친구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내게는 정말로 큰돈이지만,

이곳 용산에서 거래되는

돈을 생각하면 내 돈은

그냥 푼돈이잖아.

다시 찾을 수 없다면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낫지.”
이 친구의 집이 그렇게

부유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돈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이 꽤 멋져 보였습니다.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은 베드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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