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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2.2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21 조회수1,25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0년 2월 21일

연중 제6주간 금요일

제1독서 야고 2,14-24.26

14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15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16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7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18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19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20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실천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까?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칠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22 그대도 보다시피,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23 그렇게 하여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것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느님의 벗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24 여러분도 보다시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26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복음 마르 8,34―9.1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35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36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37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38 절개 없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9,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가

권능을 떨치며 오는 것을

 사람들이 더러 있다.”

유명한 맛집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크지 않은 가게인데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음식 하나 먹겠다고 줄까지

서야 하나 싶었지만, 함께 간

사람이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기다려서 먹고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게는 소위 목이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또 가게의 실내장식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신없어 보이는

옛날 중국집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맛’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은 장소의 불편함,

실내장식의 촌스러움을

모두 극복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맛’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이

몰리는 맛집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품 안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모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그리스도인의 고유한 ‘맛’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원칙만으로는 주님의 ‘맛’을

 세상에 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처럼,

세상 안에서 고유한 ‘맛’을 내는

특별한 삶을 살아야만 가능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의 삶을 포기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주님의 십자가보다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맛’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사랑을 받는 사람은 행복을 느낍니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그와 함께하려는 것이지요.

그 사랑의 ‘맛’이 너무나도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한 모습이 아니라,

사랑을 주는 것에 익숙한 모습을

갖추는 것이 바로 사랑의 ‘맛’을 간직하고

 세상에 펼치는 이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뜻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랑을 아무런 사심 없이 실천하는 사람,

이웃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 칭찬,

 인정, 지지를 잘해주는 사람.

이러한 사람의 ‘맛’은 특별하고

훌륭하므로 사람들이 모여들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밑으로

모여서 모두가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순간마다 주위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용기를 얻으면 된다.

모두 그렇게 힘을 내고 살아간다.

(오쿠다 히데오)

사랑은 가장 좋은 치료제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갑자기 발바닥에 큰 통증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발을 떼니

 글쎄 바닥에 버려진 못을

밟은 것입니다.

신발에 못이 박혀 있습니다.

때 이 사람은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당연히 신발에 박힌 못을

뽑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못을 뽑지 않고,

‘누가 여기에 못을 놓은 거야?’

 하면서 범인 찾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면 발바닥의

고통을 계속해서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들로부터 상처를 받았을

때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고

 치유하려는 것을 먼저 하지 않고,

 복수하려는 마음, 미움의 마음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계속해서 아프고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상대방을 미움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자기 상처의 치유를 위해서

필요하므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 상처를 고치기 위해서는

사랑의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나 자신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치료제입니다.

이 치료제를 버리고 칼을

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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