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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7주간 월요일 복음 이야기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24 조회수99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복음 이야기는 벙어리 영이 들린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온 아버지와 예수님 사이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벙어리 영이 들린 것은 어릴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이런 아들을 둔 아버지의 마음은 참으로 괴롭고 힘들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고치시는 기적을 베푸셨다는 소문을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자기 아들의 병을 낫고자하는 마음에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근데 이 아버지는 먼저 제자들에게 이런 아들을 치유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제자들은 이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이 아버지는 많은 실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던 차에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보다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다시 한 번 더 예수님께 아들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간청을 드립니다.

 

이런 사정을 예수님께 말씀을 드리니 예수님께서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제자들을 향해 돌직구를 날리십니다. 바로 복음의 표현을 달리하면 이런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쯤이면 이젠 너희들도 이 정도는 너희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되지 않느냐? 내가 언제까지 이런 것조차도 계속 내가 해야 한단 말이냐? 하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런 현실에 놓인 예수님께서는 안타깝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병자를 위해 예수님께 데려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아들이 예수님 가까이 오는데 그 속에 있는 벙어리 영이 예수님을 보자 마구 격렬하게 아이를 흔들어댑니다. 아마 이 벙어리 영은 복음 25절 이하를 보게 되면 더러운 영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니 더러운 영이 예수님을 보는 순간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예수님의 모습에 겁을 먹었나 봅니다.

 

바로 예수님의 영을 보면 자신이 죽는 줄 알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예수님의 그 위엄에서 나오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더러운 영을 압도했을 겁니다. 그러니 자기가 죽게 될 운명을 알아차린 모양이라 그런지 자신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해 아이까지 마구 흔들어댑니다.

 

자기 혼자만 죽기 싫다고 하는 듯합니다. 그러자 이 아이는 땅에 쓰러져 뒹굴며 거품을 흘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일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물어보십니다. 어릴 때부터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의 지금의 상태는 병으로 말하자면 오래된 고질병과 같은 것이 되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걸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애간장이 타 들어갔을까요? 많은 기적을 행하신 걸 알고 왔기에 이 아버지는 예수님께서는 고칠 수 있을 수도 있지 않냐고 말을 합니다. 이런 말에 예수님은 다소 놀라시는 듯합니다.

 

이건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믿음이 어떠냐에 따라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아이 아버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이제는 예수님께서 확실히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사실을 굳게 확신한다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믿음이 없는 자신을 도와주십사하고 외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꾸짖어시고 드디어 더러운 영이 나가 아이가 병에서 회복되는 이야기를 복음사가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여쭈어봅니다. 왜 자신들은 이런 일을 할 수 없는지를 말입니다. 이 말에 예수님께서는 단칼에 해답을 말씀하십니다. 바로 그 비결은 기도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가 아니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될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해서 마무리가 됩니다. 이제 하나씩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복음에서는 단순히 육체의 병을 낫게 하는 것과 예수님의 그 비결이 기도에 있다고 하는 말씀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다른 측면에서 한번 보려고 합니다.

 

복음 서두에서는 벙어리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근데 다시 이 영의 특징을 언급하십니다. 바로 복음에서는 더러운 영이라고 하십니다. 저는 더러운 영이란 말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을 하고자 합니다. 저는 오늘 복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기도와 믿음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듯합니다.

 

더러운 영은 어디 있었습니까? 바로 아이의 몸 안에 있었습니다. 근데 그 영이 예수님을 봤다는 장면에서 저는 이런 걸 상상해봅니다. 바로 우리가 기도를 할 때의 상황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말로써 할 수도 있고 많은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보면 우린 예수님을 향해 하기 때문에 그 뿌리에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을 쫒아내는 게 바로 기도의 힘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기도의 근원은 먼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게 제일 우선이라는 메시지가 이 말씀 속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바로 자신 속에 있는 더러운 영이 소스라치게 놀라 자연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그 관상의 힘으로 나간다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한 더러운 영은 복음에서는 벙어리 영으로 묘사를 하지만 여기서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바로 오늘 독서에도 나오듯이 마음속에 있는 모진 시기와 이기심과 자만해서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것은 현세적이고 악마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게 오늘 복음에 나오는 더러운 영이라고 봅니다. 결국 이런 게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기도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면서도 어떨 때는 하기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기도를 한다고 지금 기도하는 게 이루어질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아버지의 말과 같습니다. 하실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온전한 믿음이 있을 때만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그게 부족하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바로 복음에서도 그 해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는 말씀을 하게 됩니다. 이 말을 저는 이렇게 봅니다. 예수님께 믿음이 부족하면 부족한 믿음을 채울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라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라고 하는 걸 암시적으로 가르쳐주시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고 그대로 되리라는 마음을 먹은 후에 아들이 완치되는 걸 보면 이런 사실이 맞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편으로 달리 생각을 해보면 기도로 청하는 게 오늘 독서에 나오는 내용으로 묵상을 해보면 바로 기도는 위에서 오는 지혜로 표현을 할 수가 있을 겁니다. 위에서 오는 지혜가 바로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바로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게 되면 우리 속에 있는 더러운 영이 순수해지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다고 하며 이렇게 되었을 때 그 의로움의 열매가 평화를 가져온다고 독서에서 마무리합니다.

 

결국 오늘 복음과 독서의 내용을 서로 연관지어 묵상을 하게 되면 우리가 기도를 하면 어떤 복을 바라고 하는 그런 게 아니고 기도로 열매 맺어지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최종적으로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시는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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