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을 믿는 삶이 희망입니다. (마르 9,2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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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 | 작성일2020-02-24 | 조회수1,003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20년 2월 24일 월요일
자신을 믿는 삶은 짐이지만 대속의 주님을 믿는 삶이 희망입니다. (마르 9,20-29) 20 벙어리 영이 들린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 빛이신 예수님을 보자 어둠인 벙어리영이 곧바로 반응합니다. 더러운 거짓영입니다. 하느님의 말슴, 계명을 사람의 뜻, 사람의 일로 듣고 말하게 하는 거짓영입니다. 앞 7장과 8장에서 귀먹고 말더듬는 이와 눈먼 이는 처음에 반응이 없었습니다. 오늘 벙어리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발작으로 반응을 합니다. 앞 7장과 8장에서 귀먹고 말더듬는 이는 귀가 열리어 말씀을 진리로 듣고 그 진리를 볼 수 있는 눈으로 열린후 나타나는 반응임을, 본 9장에서 성경은 의도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올바른 하느님의 뜻으로 보고 들으면 죄 성이 드러나는 그 반응은 용서(치유)를 위한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죄 성이 드러나야 십자가의 대속으로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 어려서부터 사람의 욕망을 위한 신앙으로 잘못 가르침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 하느님의 물, 불, 곧 죄의 대속 그 죄의 덮으심의 말씀(물, 불)은 용서 희망으로 생명을 주지만 땅의 물, 불 선악의 그 사람의 말은 죄의식에 시달리게 하는 죽음입니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 하셨음을 믿는 그 주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 주님에 대한 믿음 없음을 고백하고 ‘다 이루어졌다’하신 그 주님의 믿음을 청합니다. 25ㄱ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 제자들을 포함한 믿음이 없는 모든 사람들 그 군중입니다. 25ㄴ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 그들 모두를 포함한 구마의 말씀입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도~아멘. 우리 주위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욕망, 그 사람의 뜻을 위한 일로 듣도록 하는 거짓 예언자들(가르침)이 너무 많다 하십니다.(1요한4,14참조) 그래서 다시 들어가지 마라, 다시 유혹에 빠지지 마라 하시는 것입니다.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 땅에서 죄의식이라는 그 죽음에서 일어남입니다. 창조의 손이, 또 그를 위해 못 박히실 손이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땅에서 하늘의 존재로 하느님의 지혜, 진리의 말씀(물 불)으로 재창조되는 위로부터 태어남입니다. 요한3,3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 오늘날 제자(교회)인 우리의 모습을 보라 하십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마태6,10) 라고 기도하면 아버지의 뜻인 땅의 구원이~ 땅인 그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기 위해 당연히 그 거짓영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 프로쉬콤마이는 ‘흘려주다’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 하느님의 뜻 대속의 십자가를 진리로 올바로 흘려주어야 용서(치유)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사람의 뜻을 위한 일로 율의 치유만을 위해 제자들이 기도했기에 그 거짓영이 나가질 않았던 것이지요.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지말라 하셨던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하는 용서(구원)가 없는 빈말, 헛된 기도인 것입니다.(마태6,7) 그래서 하느님의 뜻인 땅의 죄인들을 위한 구원의 일, 그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말씀이~30절에 이어집니다. 진리를 똑바로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 그 내 죄를 위한 용서(치유)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1코린15,19)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2코린7,10)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세적 슬픔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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